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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PXE INDEX</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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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Sep 2010 17:59: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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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큐먼트에서 예술로, 다큐멘터리 초상과 풍경의 역사적 변모</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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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명사, 다큐먼트(document)에서 파생된 형용사, 다큐멘터리(documentary)로 명명되는 사진만큼 범주구획에서 혼란스러운 분야도 없다. 혹자는 언론보도 매체에 실리는 사진을 다큐멘터리라 이름붙이기도 하여, 포토저널리즘 사진의 의미와 겹치기도 하며, 또 다른 혹자는 조작을 피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고 여겨지는 사진을 다큐멘터리라 이름붙인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규정은 조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범주규정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모두 한 범죄자의 얼굴에서 주식시장 전광판 사진까지를 포괄하는 언론매체에 실리는 사진들 중 어떤 사진이 다큐멘터리이며, &apos;조작을 피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apos;한다는 19세기 문예사조인 리얼리즘의 이상이 구현되는 사진은 어떤 형식적 요건을 갖고 있느냐를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lt;/p&gt;
&lt;p&gt;다큐멘터리 사진, 즉 다큐먼트로서의 사진에 대한 수긍할 만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1910년, 브뤼셀에서 열렸던 사진국제회의의 보고서는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사진 다큐먼트의 정의를 통보했다. 이에 따르면 사진 다큐먼트는 &quot;다양한 자연의 연구목적에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 여기에서 사진의 미적 아름다움은 부차적이다. 이미지는 아주 선명하며, 세부의 디테일이 잘 드러나고, 시간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도록 정성스레 처리되어야 한다&quot;고 정의했다. 이 규정은 사진 다큐먼트를 &apos;연구목적&apos;을 위한 유용한 &apos;시각자료&apos;로 파악하면서, 자료의 유용성을 보장하기 위한 양상을 명기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1910년의 사진국제회의가 다큐멘터리 사진의 특성을 이렇게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진 다큐먼트가 19세기 후반 이후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상사진의 경우, 정신병 환자의 관상학을 위해, 인간 표정의 유형학 (typology)을 작성하기 위해, 인종학은 유럽의 주변인종의 관상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경찰은 재범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다큐먼트로서 사진초상을 사용해 왔다. 풍경의 경우, 고고학 자료로서의 유적사진, 문화재 보전을 위한 건축사진, 지형과 지질학 탐사와 관련된 사진들이 이미 상당량 생산, 소비되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한 자료사진의 특징적 양상은 무엇보다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만족적이고, 유용성을 멀리하는 예술사진과 구분된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자족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타자에게 제출되는 사진인 까닭에, 미학적 고려 때문에 실증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다. 타자의 비교•검토에 영향을 끼치는 생산자의 미학적 의도, 개성•감성의 표현을 제거한 사진이어야 한다. 또한 어떤 연구를 위한 자료라면 이미 확정된 결론, 이미 결정된 이해관계에 봉사하기 위해 제작된 사진도 자료사진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미학적 배려를 뒤로 미뤘다 할지라도, 이미 설정된 가치체계, 혹은 이념에 맞추어, 조작되고 재단된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일 수 없다. 그것은 중립성•객관성을 가장한 선전•선동 사진일 뿐이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사진이 모든 이념•가치체계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자료사진의 이념적 값과 가치체계의 결부는 생산 이전에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진자료가 소용되는 연구의 목적과 결과에 따라 추후에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자료사진을 요구한 연구가 동반하는 이데올로기에 사후 종속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보이는 선전사진의 한 예로서, 사진의 발명 이후 거의 최초로 감행된 로저 펜턴(Roger Fenton, 1819∼1869)의 한 종군사진을 보자. 대포알들이 퇴석처럼 널려 있는 〈죽음의 그림자 계곡(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은 사진에 대한 당시 대중의 완곡한 믿음, 즉 사진은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재현한다는 믿음을 활용해, 영국이 크림 전쟁(1854∼1855) 개입으로 인해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려는 정치권력의 산물이었다. &quot;선명하고 세부 디테일이 잘 드러나고&quot;, 미학적 고려를 뒷전으로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참전에 대해 영국 국민들이 품은 극도의 불안감을 불식하는 권력의 목적에 부응하고자 주검 없는 전장, 고통 없는 전쟁, 정적인 전투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로저 펜턴의 전장 사진은 &apos;다양한 자연의 연구목적&apos;, 다양한 현실의 연구과정에 편입되기 전에 이미 그 결론적 값이 정해진 사진이었던 것이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용이한 시각적 비교와 검토를 위한 선명한 세부 기록, 미학적 의도의 포기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정의하는 필요충분조건일 수 없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범주구획에는 다큐먼트의 어원인 documentum, 즉 교육에 소용되는 예증•증거라는 의미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교육적 목표, 연구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의 성격에도 부합해야 할 것이다. 사진의 발명과 함께, 19세기 후반부의 여러 지식 분야는 엄격하게 코드화된 재현형식을 활용하여 사진초상을 활용하는바, 학문의 자료로서 생산된 이 다큐멘터리 초상은 어떤 실제 개인을 재현하는 초상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현상을 수립했다. 그것은 영생과 사후 구원에 대한 염원과 같은 종교적 문맥은 물론이고, 한 개인의 형상, 삶을 기념하고 모델을 이상화하는 해묵은 초상의 전통과 단절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초상의 출현은 우선 과학적 증명방식의 변모와 관련을 맺는다. 근대유럽과 더불어 과학적 설명은 &apos;납득할 만한 해제&apos;에서 &apos;검증 가능한 증거의 제시&apos;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세기의 거의 모든 과학 분야는 논지의 과학적 증명을 위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현상을 그 반사광을 통해 있는 그대로 재현하며, 재현하는 주체의 상상력•주관성을 배제한다고 믿어지는 사진을 이용했다. 19세기의 여러 인간학 분야는 사진초상을 통해 자기 영역의 논지를 귀납하고, 그 결론의 정당성을 제출하는 작업을 행했다. &lt;/p&gt;
&lt;p&gt;테오도르 제리코(Th. Gericault)는 다큐멘터리 초상의 도상학적 원류에 위치한다. 1822년경에 제작된 그의 〈편집광 환자(Monomane)〉 시리즈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19세기 초엽에 인지되고 명명된 &apos;편집광&apos;이라는 정신병의 관상학적 특징을 제시하는 &apos;자료(document)&apos;로서 생산되었다. 그것은 의학적 시선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비교와 검토를 원활하게 하는 형식적 규범을 확립하고 있었고, 편집광의 세부적 특징인 &apos;생기있게 빛나는 눈&apos;을 일관성 있게 4분의 3의 각도에서 바라본 것이다. 여기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미학적 우려가 아니라 과학적 자료의 요구에 부합하는 객관적 재현의 의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객관적 재현 의지의 발현&lt;/strong&gt;&lt;/p&gt;
&lt;p&gt;제리코에서 발현한 다큐멘터리 초상의 형식적 특성은 19세기 유럽의 학문체계를 지배했던 유형학에 부합하려 했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 초상은 복잡다단한 인간 얼굴을 세부 특징과 형태별로 분석하고, 분류하는 유형학적 사고에 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연구표본을 간편하게 채집할 수 있고, 비교와 검토를 원활하게 하는 형식적 규범을 채택했다. 일련 생산방식을 위한 규격화와 연구 목적에 관계된 부분의 충분한 가시영역을 허용하는 클로즈업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형식적 규범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났으며, 가장 전형적인 분야는 인종학이었다. &lt;/p&gt;
&lt;p&gt;1850년 후반부에서 1860년대에 걸쳐 필립 포토 (Phlippe Potteau)는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서 유럽 주변부 사람들에 대한 인종학적 특성을 분류하는 초상작업을 했다. 그는 정면 인물사진과 측면 인물사진을 병치하는 촬영을 체계화함으로써 인종학적 인체측정술(anthropometry)을 완성하는데 기여했다. 도면의 엄정함을 갖춘 포토의 인상기록 방식은 그 이전의 다큐멘터리 사진초상의 형식을 극단화했다. &lt;/p&gt;
&lt;p&gt;초상 연출에 소용되는 모든 소도구를 제거했고, 모델의 얼굴은 무표정을 지향한다. 촬영의 신체범위와 각도는 수미 일관성을 유지한다. 모델은 중성의 배경 앞에 앉으며, 균일한 확산광을 받는다. 비교와 분류의 정확성과 편리함을 보장하기 위해 모델은 어떠한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촬영의 규격화•표준화에 복종한다. 모델들은 &quot;언제나 렌즈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위치하며, 정면•측면 순으로 포즈를 취한다.&quot; 인물의 정면과 측면을 병치하는 인종학의 인체측정 사진술은 파리 경시청의 알퐁스 베르티옹 (Alphonse Bertillon, 1853∼1914)의 범죄용의자 신원확인 초상과 함께, 더 규격화되고 일반화된다. &lt;/p&gt;
&lt;p&gt;아 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는 19세기 다큐멘터리 초상의 형식적 접근방식을 통해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사는 인물의 가식 없는 실체에 도달하려 했다. 모델을 이상화하고 유미화하는 해묵은 초상의 전통과 단절한 자료로서의 초상을 본떠, 그는 모델에 대해 사회학적 객관성, 비개성적 접근을 시도했다. 정면 촬영의 선호와 증명사진에 요구되는 포즈, 세부를 밝히는 거친 조명은 19세기 후반의 다큐멘터리 사진초상이 확립한 초상코드를 참조한 것이다. 그것은 다큐멘터리 초상의 형식을 통해, 모델들의 정체성과 그가 사는 시대를 우회 없이 접근하려는 시도의 방법론이었다. 잔더는 베토벤 교향곡 해석의 최고 권위자인 푸르트뱅글러에게조차 19세기 다큐멘터리 초상이 발명한 형식적 코드를 차용하여 모델에 대한 호의적 감정을 상승시키려는 시도를 배격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과학적 엄격함 속의 &apos;진정한 증빙자료&apos; &lt;/strong&gt;&lt;/p&gt;
&lt;p&gt;증기기관과 사진의 발명은 시각적 경험이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유럽에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리는 동방취미, 동방연구에 불을 당겼고, 사진으로 기록된 동방풍물은 오리엔탈리즘을 더욱 부추겼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대학에 학문으로 편입된 고고학은 1850년 이후 본격적으로 사진을 유적과 유물의 조사•연구를 위한 실증적 자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오귀스트 살츠만은 솔로몬 왕의 통치시기에 대한 고고학자 솔시(F. de Saulcy)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사진을 찍었고, 펠릭스 테이나르(Felix Teynard), 영국의 프랜시스 프리스(Francis Frith), 존 그린(John B. Greene)도 고고학 연구의 범주에서 성지 예루살렘과 이집트의 유적들을 촬영했다. 서구 근대 회화의 장르구분을 따르면, 풍경 외에는 달리 분류될 장르가 없는 이 유적 자료들은 디테일이 선명하며, 자료적 실용성이 미학적 의도를 압도하는 특징을 가진다. &lt;br /&gt;19세기의 다큐멘터리 풍경사진은 학술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공공 행정기관 역시 자료 로서 풍경사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lt;/p&gt;
&lt;p&gt;우 선 프랑스의 문화재 관리국 (la Commission des Monuments historiques)은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를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파괴와 19세기 내내 계속된 정치적 격변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달리즘(vandalism)에 대처하기 위해 &apos;사진단(la Mission holiographique)&apos;을 조직하여 120여 곳의 주요 문화유산을 &apos;어떠한 세부도 빠짐없이&apos; 기록했다. 보전과 복원을 목적으로하는 이 다큐 먼트 작업은 5명의 사진사가 1851년 여름 동안 진행했는데, 예술사진에 헌신하던 앙리 르 섹(Henri Le Secq), 귀스타브 르 그레(Gustave Le Gray)조차, 이 다큐먼트 작업에서 어떠한 미학적 개성이나 감성의 발현을 억제했다. 사실, 모든 사진사의 작업은 너무 비개성적이어서 사진사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는 한, 사진의 작가 귀속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들의 미학적 우려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기록을 요구하는 사업의 취지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lt;/p&gt;
&lt;p&gt;프랑스의 다큐멘터리 풍경의 또 다른 예는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다. 1853년에 오스만(Georges E. Haussmann, 1809∼1891) 남작이 센강 지역의 도지사가 되어 1860년대 중반부터 파리를 &quot;유럽의 수도 중 가장 화려하고, 가장 위생적인 도시&quot;로 개조시키려 했을 때, 도시계획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위원회는 샤를르 마르빌에게 파리의 근대화 이전과 이후를 사진으로 기록하게 했다. 900여 장에 달하는 30×40cm 크기의 유리원판 사진들은 빈틈없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도시 풍경이었다. 그것들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사진의 작은 역사》(1931)에서 앗제(E. Atget)의 사진에 대해 정의한 &quot;진정한 증빙자료&quot;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lt;/p&gt;
&lt;p&gt;그의 다큐멘터리 도심 풍경은 앗제의 사진에 30년 앞서서 이미 사진적 &quot;대상을 아우라로부터 해방&quot;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quot;진정한 증빙자료&quot; 그리고 &quot;아우라의 소독&quot;은 의심할 여지없이 앗제 사진들의 특징이지만, 사실 그 역사적 의미는 결코 앗제만의 몫은 아니었다. 그에 선행한 많은 다큐먼트 사진사들이 객관적 기록에 대한 의지, 비개성적 재현, 깊은 심도와 디테일이 선명한 대형 포맷의 사용 등을 통해 앗제가 20세기 초엽에 생산한 자료사진의 특성을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 &lt;/p&gt;
&lt;p&gt;&quot;진정 한 증빙자료&quot;로서의 다큐멘터리 풍경사진은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apos;서부의 정복&apos;과 더불어 지형학과 지질학 연구를 위한 풍경사진을 티모시 오설리번 (Timothy H. O&apos;Sullivan, 1840∼1882)을 통해 남겼다. 오설리번은 클래런스 킹이 지휘한 &apos;위도 40도 지질 탐사대&apos;의 사진사로 1867∼1869년, 그리고 1872년,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시에라 네바다를 거쳐 솔트 레이크를 횡단했다. 1871년 그리고 1873년과 1874년에는 조지 휠러(George M. Wheeler) 중위가 지휘한 &apos;미 공병 경도 100도 지질•지리학 탐사대&apos;의 일원으로 또다시 서부지역을 종단했다. 그의 풍경사진은 지형•지질학 탐사대와 관련된 까닭에 다큐먼트의 객관성, 투명한 지질학적 사실 기록에 전념했다. 한마디로 과학적 엄격함이 미학적 우려를 압도했다. 한 예를 들어 보자. &lt;/p&gt;
&lt;p&gt;1867년에 찍은 〈스팀보트 스프링스의 균열 틈〉에는 유령과도 같은 형체가 흐릿하게 나타나며, 이것은 어떤 기이한 불안감이라는 미학적 효과를 야기한다. 그러나 이 사진의 생산은 어떠한 미학적 의도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지질학•지형학 연구를 위한 사진이라는 생산 문맥에서, 흐릿한 사람의 형체는 새어나오는 뜨거운 수증기의 밀도와 &apos;균열 틈&apos;의 크기를 암시하기 위해 탐사대원 중 한 명을 임의로 세워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 흐릿한 인간 형상이 없다면, 후에 사진만을 보는 지질학의 시선은 &apos;스팀보트 스피링즈의 균열 틈&apos;의 정도와 수증기의 방출량을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lt;/p&gt;
&lt;p&gt;오설리번의 지질학 탐사사진에 종종 나타나는 사람과 수행 마차, 혹은 배는 미학적 장식 목적이 아니라•지리 지질학적 연구의 편의성을 도모하려는 섬세한 배려로 간주해야 마땅하다. 으젠느 앗제의 &apos;자료&apos;사진도 생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을 때는 인용한 사진의 주제가 기이하게 매달린 구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건축 보수업자, 혹은 예술가의 작업을 보조하기 위해 2층의 철제 발코니를 기록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1940 년대 이후 &apos;자료&apos;에서 &apos;작품&apos;으로&lt;/strong&gt;&lt;/p&gt;
&lt;p&gt;1920년대 후반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은 자신의 생산문맥과 유통조건을 벗어나 어떤 미학적 해석을 허용했고, 미학적 관점에서 수용되기 시작했다. 재현 대상에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고 투사하는 낭만주의 미학이 20세기에 접어 들며 급격히 쇠퇴하자, 생산자의 주관성과 감성의 개입을 배제하는 19세기 다큐먼트 사진의 생산코드가 새로운 미학 형식으로 고려되었다. &lt;br /&gt;사진 초상과 풍경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하나의 미학적 프로그램 양상으로 구체화 된것은, 1933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최초로 사진 개인전을 연 워커 에반스 (Walker Evans)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순전한 예술적 의도에서, 1931년부터 미국 동부에 잔존하는 빅토리아 건축 양식을 객관적 초연함 속에서 엄정하고 냉정하게 &apos;기록&apos;했고, 1938년부터는 뉴욕의 지하철 승객의 얼굴을 어떠한 감정이입 없이 무작위적으로 &apos;채집&apos;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워커 에반스 이후&lt;/strong&gt;&lt;/p&gt;
&lt;p&gt;더욱이 사진의 역사가 미학사와 미술사의 일부로 취급되기 시작한 1940년대 이후, 정확히 언급하면, 뉴욕 현대미술관이 1940년 세계 최초로 사진부를 창설하고, 예전의 사진을 미술관의 공간 속에서 미술작품의 방식대로 전시를 계획하고, 1946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 &apos;자료&apos;를 주제별로 분류하던 것을 그만두고 사진 &apos;작가&apos;별로 분류하자, &apos;자료&apos;로서의 사진은 점차 사진 &apos;작품&apos;으로 인지되어 특히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전시되고, 연구 분석되었다. 이미 워커 에반스에 의해 &apos;자료&apos;가 아닌 사진 &apos;작품&apos;의 새로운 형식 코드로 가동된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적 규범은 사진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lt;br /&gt;현대의 중요한 초상 사진작가들은 19세기의 서구사회가 배제하고, 정복한 인종들이나, 부르주아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한 규범에서 벗어난 유형의 인간을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한 형식적 코드를 주변부의 인물, 비정상적이고 소외된 인물들에만 적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상인으로 여겨지는 인물들, 심지어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계층에게도 엄격한 시각적 검토를 위해 19세기가 발명한 다큐멘터리 초상의 형식을 냉정하게 적용했다. &lt;/p&gt;
&lt;p&gt;《미 서부에서(In the American West)》의 리차드 아베든(Richard Avedon),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대형 증명사진 작업은 그 대표적 위업이다. 반면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는 소외되고 주변적이고 비정상적인 개인들의 기록에 집착했다는 점에서 19세기가 발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초상의 유형학적 작업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lt;/p&gt;
&lt;p&gt;19세기의 다큐멘터리 풍경사진의 형식코드 역시 1970년 이후 자신의 감정을 풍경 속에 이입하고, 위대한 자연이라는 낡고 진부한 개념을 보듬는 상투성에서 벗어나려는 작가들의 생산 형식으로 고려되기 시작했다. 엄정하고 냉정한 풍경사진의 미학을 수립하려는 그들은 건축물과 인공시설물을 의학적 초연함, 객관적 엄정함으 로 기록했다. &lt;/p&gt;
&lt;p&gt;인 공시설물의 기록에 증명 초상사진의 제 형식을 적용한 베허(Becher)와 파리시의 근대 화 이전과 이후를 찍은 마르빌을 돈독히 참조한 베허 스쿨의 토마스 스트루스, 에반스의 풍경사진에 의거한 윌리암 크리스텐베리(William Christenberry)의 앨라배마 주의 〈블랙 벨트 컨츄리(The Black Belt Country)〉작업들은 다큐멘터리 풍경사진의 모범적 예들이다.&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8 May 2010 04:01: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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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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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strong&gt;1 서론&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이미지(image)라는 용어는 사전적 의미로 어떤 평범한 표면이 대상을 반사시키는 역전적 생산물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이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다소 정확한 대상의 복사 즉 재현을 지칭한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미지는 단지 대상의 외관적 복제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나 환상 혹은 기억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산물, 다시 말해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한 감각과 인상의 정신적 재현에도 관계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미지는 복사적, 상징적, 환상적 그리고 미적 이미지의 크게 네 가지 개념적 형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복사적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재현일 때 상징적 이미지는 보이는 시각세계와 안 보이는 정신세계를 연결하는 의미적 측면인 아이콘(icon)에 관계하고 있다. 그러나 환상적 이미지와 미적 이미지는 모두 정신적 생산물로, 전자는 꿈이나 환상과 같은 비현실적 세계의 재현을 말할 때 후자는 특별히 예술에 있어 표현적 가치를 주는 재현적 생산물로 시각적, 청각적 혹은 시적 작품 속에 나타난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마치 언어학에서 말하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의 대응 관계처럼 자신의 외적 메시지&lt;/p&gt;
&lt;p&gt;(dénotation)와 앞서 언급한 내적 메시지(connotation)들 사이에 존재하는 특수한 관계가 성립한다. 특별히 여기서 이미지가 사실주의에 관계할 때 이러한 대응적 관계는 더욱 확실해 지는데 전통적으로 사람의 손에 의한 그림적 사실주의는 복사적, 상징적, 환상적 그리고 특히 미적인 모든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예술적 활동에 탁월한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진적 사실주의(렌즈뿐만 아니라 손이 아닌 기계적 방식에 의해 생산되는 모든 사실주의의 총체)는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복사적 이미지와 상징적 이미지에만 관계한다. 왜냐면 이러한 사실주의는 우선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의 증거 즉 절대적 과거의 재현(Ça a été)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진적 사실주의는 시각적 현실의 영역 밖의 상상적 사물이 아닌 단지 &quot;진술적 재현&quot;에만 관련하고 그때 응시자는 재현된 대상에 대한 절대적 믿음(앙드레 바젱André Bazin의 자동생성 La genèse automatique)을 갖는데 이러한 사실은 사진적 사실주의를 그림적 사실주의와 달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또한 대상에 대한 번역적 재현에 관계하는 그림과는 달리 사진은 과거사실의 진술적 재현만 하기 때문에 사진의 시제는 언제나 과거이고 특히 그 대상이 과거적 경험일 때 사진은 기억적 재현이라 볼 수 있다.&lt;/p&gt;
&lt;p&gt;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이론적으로 알려진 &quot;스푸마토(sfumato)&quot;라는 그림의 흐린 효과는 오랫동안 티시앵(Titien), 푸동(Prud&apos;hon), 와토(Watteau)와 같은 거장들에 의해 그림에 있어 중요한 기법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런 효과의 중요한 이용 목적은 전설의 그림이라는 프렌호프(Frenhofer)의 그림처럼 형체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는 흐린 이미지가 주는 멜랑꼴리한 분위기나 조형의 투시적 효과(원근의 구별)에 있다. 그러나 흐린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대상을 관객의 상상력을 통해 비물질적이고 비현실적인 출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이러한 그림의 흐린 효과는 과거 사실의 재현이 아닌 현실의 비물질적 표현을 위한 조형적 방법으로 이해된다. 사진적 사실주의에서 나타나는 흐린 효과(연초점, 심도, 기술적 원인에서 오는 모든 흐린 효과) 역시 객관적 대상에 대한 불확실한 형상에서 자유로운 상상과 그림의 환상적 분위기를 재현할 수 있다(예를 들어 19세기의 회화주의의 사진 그림들). 이러한 효과는 시각적으로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나 미래주의자들이 표현하는 움직임에 대한 형태적 자국(filé)에 관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진적 흐린 효과는 그림적 효과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quot;과거의 물리적 혹은 진술적 재현&quot;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흐린 효과에 의한 사진적 이미지는 시공간에 사라진 혹은 사라져 가는 어렴풋한 시각적 재현 즉 &quot;레미니센스&quot;로 이해된다. &quot;우리들 기억은 단지 사진으로만 재현될 수 있을 뿐이다&quot;L´acte photographique, Edition Nathan, Paris, 1990, p. 266. &apos;)라 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진적 사실주의는 일종의 기억 이미지(image-souvenir)-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용어-이며 그때 흐린 효과는 레미니센스의 표현이 되고 또한 그 재현의 대상이 공동체적 경험적 사실일 때는 집단적 망각의 지시(index)로 간주된다. 이러한 은유적 이유에서 현대미술의 몇 몇 작가들이 사진적 흐린 효과를 예술적 도구로 그림에 이용하고 있다. &quot;기억은 단지 사진일 뿐이다 (Philippe Dubois)&quot;라고 하는 것처럼 특별히 사진을 기억의 은유로 간주하는 것은 사진은 과거 사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충실한 재현 즉 반박할 수 없는 과거 사실을 말하는 &quot;∼존재했던 것(Ça a été)&quot;에 그 출현 조건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진적 사실주의가 주는 절대적 신빙성 속에서, 우리는 외관이 뚜렷한 사진적 이미지는 곧 선명한 혹은 진실한 기억의 장면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윤곽이 흐린 사진은 지난 사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나 망각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또한 필름 속에 잠상으로 남아있는 현상(développement)되기 전까지의 음화들이 우리들의 무한한 기억창고에 저장된 무의식적 기억 이미지들(뒤봐는 이것을 &quot;폼페이&quot;라고 한다)에 비유될 때 현상되어 출현한 이미지(print)들은 의식 세계에 출현한 기억 이미지들(&quot;로마&quot;)에 비유되기도 한다2) : 프로이드 역시 자신의 무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진의 잠상을 그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억은 역사가들이 짜놓은 서술만큼 분명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기억은 발생하는 순간 근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의 종착지로 출발되며 언제나 외적 요소에 의해 쉽게 왜곡되고 변형될 가능성 즉 기억의 불확실성과 애매성(기억적 &quot;조형성&quot;Anthropologie de la memoire, col. que sais-je ? PUF, Paris, 1996, p.58. &apos;)으로 인한 다변적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짜여진 역사적 기억은 항상 불확실하고 의심스런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엄밀히 말해 기억은 단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사라진다고만 할 수 없다. 대부분의 기억환기나 망각은 우리들 의식에 있어 기억적 고착 상태 혹은 기억들의 상호 유대 상태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망각 현상은 시간적 경과에 달려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quot;논리적 사고(기억)&quot;는 언제나 연속적 서술 속에서 흔히 기억을 소설화시키며 최근의 기억은 과거의 기억보다 더 선명하다고 믿게 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기억적 착각일 뿐이다.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이용하는 사진적 흐린 효과는 우리들의 의식에서 기억 고착의 결핍 즉 망각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간주되지만 이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에 의한 필연적 망각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 후기 산업사회, 특히 메디아에 의한 정보 홍수가 주는 정보의 복잡성, 다양성 등의 외부적 원인에서 야기되는 우리들의 공동체적 망각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은유적 표현을 통해 작가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의 맹신 위에서 또 그로 인한 오늘날 우리들이 당면한 자아상실의 위기에서, 그리고 공동체적 기억과 망각의 딜렘 위에서 의미심장한 의문(&quot;음영 세계 ombres&quot;에 관계하는 현대 프링스 철학의 주요한 담론들 중 하나)을 던지고 있다. &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br /&gt;&lt;strong&gt;2 표현적 도구로서의 사진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원래 사진의 발명은 19세기의 과학적 산물로서 그 사진적 이용은 근본적으로 전달과 보존의 활용적 측면에 있었고 또 그러한 활용은 &quot;전파(diffusion)&quot;라는 큰 명제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 물론 사진은 미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가끔식 조형예술의 보조적 언어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진은 그 기능적 측면에서 오늘날 거의 모든 시각적 이미지의 대중화에 지배적 역할을 했음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0년대 몇 몇 아방가르드의 사진과 미술과의 접맥적 시도로 간주되는 포토몽타주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진이 미술장르에 조형적 언어로서 통합되는 것은 1950년대를 지나면서였다. 이는 당시 사진적 내용물을 종이나 캠퍼스 혹은 설치적 재료 위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는데 말하자면 &quot;도용&quot;의 시도였다. 이러한 접맥은 당시 사진의 보도적 역할의 절정기에 새로운 사진의 예술적 활용을 말하는 것으로 메디아에 의한 영상매체의 급속한 발전과 같은 맥락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사실상 시각 예술 영역 속에 오랫동안 독점해온 회화적 혹은 그림적 사실주의는 사진적 사실주의의 예술적 입성을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현대 사진사에서 50년대의 사진이 자신의 독점적 역할인 보도적 기능에서 표현적 매체(영상 사진)로의 새로운 역할을 가질 때 미술의 영역에서도 전통적 규범으로부터 탈피하는 새로운 시도를 가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메디아의 확장과 더불어 가장 특징적인 것은 미술의 영역에서 사진적 사실주의의 도입 즉 사진을 표현적 도구로 이용하는 혼합적 표현의 시도4)를 말하고 있다 : 한편으로는 사진을 개인적 표현매체로 작업하는 사진가들과 또 한편으로는 사진을 작품의 최종적 목적을 위해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화가들5)의 이분법적 양상이 나타나고 그때부터 전통적 전시공간인 화랑이나 박물관에서도 거의 사진으로만 구성된 작품(혹은 사진적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사진을 이용하는 작가들은 그들의 예술적 시행에 있어서 각각 다양한 개성과 경향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사진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그들은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리될 수 있다.Ils se disent peintres, ils se disent photographes,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0, preface. 80년대 초 당시 누리드자니는 화가-사진가의 분류를 세 부류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해 70년대의 개념미술과 7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진의 개념적 역할까지 고려한다면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amp;nbsp; 첫 분류의 작가들은 사진적 사실주의를 그들의 작품에서 그림적 구성에 통합하면서 사진을 구성적이고 물리적 요소로서 이용하는 그룹을 말하는데 그들의 작업 형태는 콜라주(collage), 포토몽타주(photo-montage), 콤바인 페인팅 (combine painting)혹은 아셈블라주(assemblage)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때 사진적 내용물은 단지 &quot;언급(citation)&quot;으로 간주되고 작품에 있어 상징적이고 사회적이고 또 문화적인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표현적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분류의 작가들은 그들의 그림적 시행에 있어 사진을 현실의 거울로 이용하는 경우인데 그때 사진은 참조적 사진으로 그 예술적 의도는 19세기에 흔히 회화적 실행의 경감을 위해 은밀히 참조되었던 사진의 보조적 이용과는 달리 원칙적으로 전통적 그림의 규범에 반(反)하는 선동적이고 도전적인 맥락에서 새로운 회화적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 다비드 호크네(David Hokney) 혹은 극사실주의자들(Hyperréalistes)의 예를 들 수 있다. 세 번째 카테고리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사진을 그들의 예술적 시행에서 작품의 증거 혹은 작품의 실체로 이용하는 작가 군으로 사진은 그때 시간 속에 사라지는 예술의 존재조건으로 이용되며 신체미술, 퍼포먼스, 헤프닝 등의 소위 &quot;외관예술 또는 태도예술(L&apos;art d&apos;attitude)&quot;La photographie plasticienne, Regard, Paris, 1998, chapitre I &apos;) 7)과 대자연을 소재로 하는 대지미술 속에서 예술적 모험의 &quot;기록&quot;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진의 증거적 이용은 결과적으로 70년대 사진이 독자적 표현매체로서 예술적 입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또한 오늘날 조형사진의 출발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8) 마지막 분류의 작가들은 그들의 사진 이용이 앞서 언급한 세 그룹처럼 사진적 사실주의 즉 사진의 내용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작품의 진행과정에서 예술적 개념에 있는 경우인데 현대미술에서 사진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특히 개념 미술가) 사실상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사진의 이용은 예술적 메시지의 전달을 위한 수레적 역할 혹은 표현적 도구에 있으며 그때 대부분의 경우 사진은 물질세계를 비 물질세계로 혹은 현실의 시각을 형이상학적 시각으로 번역하는데 탁월한 예술적 매체로 간주된다. 또한 사진은 과거 사실의 시각적 재현이라는 사실에서 작품의 출발점으로 하는 개념미술의 한 분류 소위 &quot;기억 미술&quot;9)에 있어 중요한 표현도구가 된다 :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 엔디 와홀(Andy Warhol), 자크 모노리(Jack Monory), 안네트 메사쥬(Annette Messager), 게랄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장 르각(Jean Le Gac), 레 푸아리에(Les Poiriers),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 등.&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사진을 표현적 도구로 이용하는 작가들의 경우, 그들의 작품에 사진적 사실주의의 도입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에서 시행된다. 한편으로 사진의 내용물이 사회적 문화적 코드로 간주되는 아마추어 사진과 대중사진의 활용이다. 와홀이 &quot;사진은 현실을 번역하는 기계&quot;라고 말하듯이 사진이 함축하는 문화적 에토스(éthos)와 사회적 지표(sociogramme) 그리고 사진적 판박이(stéréotype)가 의미하는 절대적 평범성은 아마추어 사진을 개념적인 도구로서 작품에 도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또한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에 실린 사진은 그 외시적 진술이 언제나 사회적 상징적 그리고 문화적 코드로서 또는 공동체적 의식이나 경험적 지표로서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사진적 내용물을 작품에 도입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러한 &quot;발견된 사진(image trouvée)&quot;의 활용 이외 사진이용의 또 다른 조건으로는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물 그 자체의 미학에 이용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사진을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 즉 &quot;사진적 레이디-메이드(The photographic Ready-made)&quot;10)로 인식하는 개념적 활용이다. 작가와 사인 그리고 박물관의 삼위일체로 설명되는 &quot;뒤상적 레이디 메이드&quot;는 근본적으로 그 진행과정의 역전성(Reversibility)에 의해 성립된다. 그러나 60년대를 전후로 뒤상의 상속물로서 미술의 거의 모든 영역에 나타난 레이디-메이드적 활용은 사실상 단순한 오브제의 이동을 따르지 않는다. 그때 그 역전성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고 완성된 작품은 대부분의 경우 작품 진행의 과정으로 간주되는 예술적 처리에 의해 재창조된 레이디-메이드로 생각할 수 있다. 사진적 레이디 메이드의 경우에도 로버트 로젠버그(Robert Rauschenberg)의 비그림화 작업과 자스펠 존스(Jasper Johns)의 비개성화 작업을 통해 설명되어지듯이 완성된 작품은 일종의 &quot;모조적 혹은 인공적 레이디 메이드&quot;로 변형되는데 이러한 재 창조적 행위는 작가들의 예술적 의도에 따라 각 각 달리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와홀의 기계적 그림(수 작업에 의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개념의 총괄적 의미)에 보여지는 사진적 이미지는 &quot;변형적(trans)-레이디-메이드&quot;11)로 간주될 수 있고 볼탄스키의 재활용된 사진들은 &quot;재입력(réhabilité)-레이디-메이드&quot;12)로 볼 수 있다. 또한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Photobilder)에서 출현하는 사진적 형상들은 개념적으로 존슨의 모조적 레이드 메이드와 유사한 &quot;반(anti)-레이드-메이드&quot;13)로 이해될 수 있다. 도용된 사진에 적용되는 각각의 예술적 처리 방법에서 공통적으로 작가들은 사진적 흐린 효과(광학적, 인쇄적, 기계적 등)를 이용하는데 이는 19세기의 회화주의자들이 표현한 시각적 흐린 효과를 통하여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확립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왜곡된 과거사실에 대한 은유적 재현을 목적으로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3 기억 오브제와 사진&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거 사실을 재현하는데 있어 사진을 이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quot;사진은 기억의 은유&quot;라는 공통된 인식에 있다. 또한 예술적 시행에 있어 작가들이 익명의 대중 사진을 하나의 표현적 도구로 도입하는 이유는 사진의 본원적 특징인 전파적 기능 즉 무한 복제의 가능성에 있다. 이러한 재현은 곧 한 개체의 주관적 경험이 아닌 공동체적 과거 사실의 증거(&quot;∼존재했던 것&quot; Ça a été)로서 일종의 공통된 문화적 코드에 관련한다. 그때 사진은 사진적 사실주의의 인덱스적(지시적 혹은 생성적)인 자국으로서 관객의 연상적 확장을 유도하며 결과적으로 각자 교차되는 경험을 갖도록 하는 기억 오브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들의 사진적 도용은 사실상 사진적 사실주의가 관객에게 강요하는 과거 사실(재현된 대상)에 대한 절대적 신빙성과 또 그것으로부터 관객의 연상적 참여를 유도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 많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사진을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레적 도구로 이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진의 환기적 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진적 사실주의의 이용에 있어 예술적 의도는 재현으로부터 관객으로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닌 관객의 기억적 환기 혹은 연상적 참여에 있고 그때 흐린 사진효과에 의해 야기되는 연상은 주관적이고 환유적이고 또한 인덱스적이다.&lt;/p&gt;
&lt;p&gt;연상적 메카니즘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면 인간의 기억은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실체로 과학적 대상 밖의 비논리적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14) 그러나 일반적으로 연상은 크게 대상과의 시각적인 닮음이 원인이 되는 닮음연상과 시각뿐만 아니라 경향, 무의식 등의 심리학적 측면까지도 포함되는 유사연상(대상과의 상관적 연상)으로 나눌 수 있다. 연상법칙에는 언제나 연상의 자극물로서 유도체와 그것에 의해 환기되는 피 유도체가 있고 이런 관계는 연속적으로 하나의 기억사슬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피 유도체는 감각에 의해 유도되는데 그때 유도된 이미지를 앙리 베르그송은 &quot;기억-이미지 (souvenir-image)&quot;라고 부르고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기억-이미지는 은유적 재현으로 사진적 이미지와 동일시 될 수 있다. 기억적 사슬구조를 이루는 연쇄적 연상에서, 어떤 공통 분모에 의해 유사한 기억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마치 영화의 장면들처럼 출현할 때 이를 &quot;이미지 블록&quot;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기억의 틀(cadre)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연상된 기억 이미지들은 대부분의 경우 형태가 분명하고 채색된 생생한 이미지들과는 달리 흔히 흑백 이미지를 갖는 레미니센스의 형태로 출현한다. 왜냐면 우리들 기억은 사실상 연속적 영화의 장면들이 아니라 단지 단편으로만 출현하는 몇 장면의 불확실한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오브제(기억 오브제)위에서 또한 우리가 갖는 모든 감각으로부터 기억 연상은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각에 의한 연상이 지배적인데 특히 사진으로 나타난 대상은 관객에게 탁월한 연상효과를 주면서 자료적이고 유물적인 증거로서 쉽게 인식된다. 이러한 이유로 흐린 사진적 이미지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분실과 망각을 암시하는 일종의 레미니센스를 느끼게 한다. 바로 여기에 현대미술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사진의 흐린 효과를 이용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사진을 이용하여 과거사실을 재현하는 많은 작품들은 대부분의 경우 관객의 연상적 효과에 관계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를 예술적 의도로 하는 대표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는 설치 형태로 제작된 사진 픽션인,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amp;lt;어둠의 교훈(Leçon des Ténèbres) (1984)&amp;gt;시리즈를 들 수 있다. 기억 환기의 관점에서 이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기억 오브제들의 아셈블라주로 간주되며 그 예술적 의도는 근본적으로 관객의 연상에 있다. 작품의 주제는 어린(혹은 묘령의)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축성이고 재현된 사진이 외시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그들의 초상과 또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죽음이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진적 출현이 강요하는 절대적 신빙성과 설치적 형태가 말하는 기념비적인 형식은 사실상 관객의 연상적 작용에서 모순적인 논리를 야기 시킨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기념 제단은 누구나 오랫동안 기억하는 성인의 죽음에 대한 축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종교적 죽음은 엉뚱하게도 우리들의 공통된 어린 시절의 레미니센스(즉 공동체적 망각의 은유)를 말하는 익명의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나타나며, 반박할 수 없는 사진의 출현으로 어린이들의 영혼과 순수함의 죽음은 관객의 눈에 현실로 나타난다. 그때 관객은 자신의 경험에 의한 고유의 주관적 연상을 통해 우리들 사고의 무질서 혹은 우리들 이성이 도달치 못하는 설명할 수 없는 혼동(음영 Ombres)을 갖는다. 이러한 역설적 방법은 결국 사진이 관객에게 주는 절대적 신빙성에 의한 증거의 확실성(순수성)과 사진의 주제(죽음)에서 야기되는 모순된 추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이성의 딜렘을 암시하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시리즈의 연속적인 작품(예 : 도판1)에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많은 기억 오브제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사진, 철상자, 램프 등과 같은 작품 구성상의 물질적 오브제를 내부적 오브제라고 할 때 전시장소와 분위기는 비물질 유도 연상체 즉 외부적 기억 오브제로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설치된 기억 오브제들은 &quot;경향&quot;과 &quot;관심&quot; 등의 주관적 연상작용에 관계한다. 예를 들어 모래위의 말 발자국을 본 군인은 곧 바로 전투용 기마를 상기할 것이고 또 연속적으로 전쟁을 생각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농부는 말의 모습에서 쟁기를 연상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경주용 경마를 연상할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연상은 기쁨, 슬픔, 사랑, 증오 등의 감상적 연상 혹은 추상적 연상까지도 가능할 것이며 어떤 감정의 중재에 의해 연상되는 무의식적 인력 쉽게 말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종의 프루스트적인 기억도 생각할 수 있다. 사실상 프루스트에게서 과거는 시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에 의해 자극된 생생한 과거의 경험에 관계하며 결국 이러한 완전한 기억은 현재를 보장하는 &quot;자아&quot;의 연속으로 이해되고 또한 진정한 레미니센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볼탄스키의 작품에서 관객을 질식시키는 침묵과 멜랑꼴리한 분위기가 야기 시키는 기억적 환기는 더 이상 과거 사실의 생생한 프루스트적 기억 이미지가 이니다. 왜냐면 흐린 사진적 효과가 관객에게 주는 레미니세스는 즉각적이지도 의도적이지도 않은 추상적인 어떤 애석함에 관계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무의식에 침전된 프로이드적 기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볼탄스키의 작품에서 기억 오브제의 외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전시장소는 관객의 환기적 작용을 작품에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에서 작가는 언제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구석진 곳이나 혹은 과거 어떤 내용물이나 사건을 담고 있는 창고나 지하복도 같은 특별한 장소를 전시공간으로 선택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작가의 예술적 의도는 그러한 장소에서 우리들 기억으로부터 격리된 무엇 즉 망각된 사실을 들추어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잔 스트와르트(Susan Stwart)는 일상생활에 자리를 내 주기 위해 창고나 다락같은 구석진 곳으로 추방된 평범한 기억 오브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quot;집에서 부엌이나 욕실 등의 다른 공간들은 기능적인 장소이고 거실이나 복도 같은 또 다른 공간들은 상용적 자리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장소들은 일상생활의 시간성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다락이나 창고는 과거의 시간성에 관계된다. 이런 장소들은 과거를 시간의 동시성으로 변형시키며 기억은 회상자의 마음대로 재구성 될 수 있다. 기억 오브제의 운명은 망각이다. (...)&quot;On Longing : Narrative of the Miniature, the Gigantic, the souvenir, the Collection,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4, pp. 150-156. &apos;) 창고의 뒤죽박죽 된 물건들처럼 우리들의 기억은 무시간적이다. 모리스 프라딘(Maurice Pradines)의 기억 연상법칙에서 유도체에 의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수직연상(현재에서 과거로)후 기억 연쇄사슬의 수평연상(과거에서 과거로)은 동시성이다.Traite de psychologie generale, Tome II, section III, les ressorts associatifs de 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Tome II, section III, &quot;Les ressorts associatifs de l´activit é mentale élé mentaire&quot;, PUF, Paris, 1946, p. 578. &apos;) Traite de psychologie generale, Tome II, section III, &quot; 이러한 기억연상의 동시성에 관해 앙리 베르그송은 &quot;시공간의 거리(La distance du temps-espace)&quot; Matiere et Memoire, PUF 6eme edition, Paris, 1987, p. 158-159. &apos;)로 설명하고 또 모리스 알바쉬(Morice Halbwachs)는 &quot;같은 부력의 물체들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과거라는)물 속에 던질 때 먼저 던져진 물체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quot;Les cadres sociaux de la memoire, edition Albin Michel, Paris, 1994, p. 90. &apos;)라 는 사실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lt;/p&gt;
&lt;p&gt;연상의 확장은 사진을 도구적 매체로 이용하는 작가들에게 그들의 예술적 시행의 중요한 전략적 요소가 된다. 과거의 무시간으로 확장하는 기억 연상의 연쇄적 확장은 거의 대부분 유사연상에 관계하는데 유도체와 피유도체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서 시행되는 주관적 확장과 반대로 피유도체의 대상이 공동체적 경험이나 사건에 관계되는 객관적 확장이 있다. 방법적으로 볼 때, 연상의 확장은 환유적 확장과 이미지 블록 혹은 틀에 의한 확장이 있다.La memoire, Col. La mémoire, Paris, 1969, chapitre I. &apos;)La memoire, Col. 전자는 유도체로부터 확장되는 다소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일종의 자유연상으로, 여러 카테고리를 지나면서 물리적 원인관계 혹은 환유적 연상을 가지는 확장을 말한다. 이는 사진인덱스의 &quot;푼크툼(Punctum)&quot;으로부터 연상적 확장을 가지는 푼크툼의 확장 즉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하는 &quot;환유적 확장&quot;이 여기에 속한다. 후자의 경우는 공통 분모를 이루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서 물리적 관계가 아닌 상황적 확장으로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틀에 의해 시행된다. 또한 이와 유사한 비트겐슈타인의 &quot;원형이론&quot; 즉 언어학에서 단어의 계열별 확장을 말하는 유사한 대상들에 대한 카테고리적 연상도 역시 같은 틀에 의한 연상적 확장이라 볼 수 있다. 모리스 알바슈의 유명한 『기억의 사회적 틀 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은 찾고자 하는 기억은 기억의 구조적인 골격을 말하는 그룹적인 틀에 의해 탐지되고 또 연속적으로 탐지된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기억탐지(엘렌베르제 Ellenberger의 이론)는 기억의 싹과 틀 그리고 확장으로 이어지는 크게 세 단계의 진행과정을 가지는데 여기서 연상은 우선적으로 기억의 틀을 찾게 하는 최초의 유도적 자극물 즉 &quot;기억의 싹&quot;으로부터 확대된다고 할 수 있다.20) 이때 싹은 전체의 한 부분(혹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인덱스 혹은 징후와 같은 맥락)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사진적 이미지는 관객의 입장에서 기억의 싹으로 볼 수 있고, 결국 이러한 기억탐지는 사진의 분명성에 따라 그 시행이 쉽게 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기억적 재현으로 이용되는 사진의 주제는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공동체적 사건에 대한 부분적 기억 이미지로 이해된다. 와홀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전기의자, 자동차, 콜라 병, 통조림 캔, 달러, 등의 문화적 아이콘들, 볼탄스키의 작품소재로 나타나는 앨범사진, 장난감, 버려진 옷, 그리고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에서 진술된 피살된 시체, 유명인의 초상, 나찌의 유니폼 등의 기억 오브제들은 기억탐지 과정에서 사회적 틀에 의한 연쇄적 연상을 가능케 하는 기억의 싹으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적 흐린 효과의 출현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관객의 기억적 재구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와홀의 코카콜라 병이나 먼로의 얼굴은 문화적 코드로서 이미 엄청난 광고 이미지와 영화산업에서 경험한 상징적 아이콘이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적 모호성도 없이 즉각적으로 읽혀진다. 그래서 이런 아이콘들은 더 이상 관객의 주관적 기억 연상의 대상(신비나 우상)이 아닌 단지 물질사회의 상품 이미지 그 자체의 일종의 무감각한 기억 브랜드일 뿐이다. 이때 흐린 기계적 효과는 이러한 무감각한 기억의 은유로 간주된다. 또 다른 예는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 시리즈 중 &amp;lt;루디 아저씨(1965)&amp;gt;(도판2)에 재현된 독일 나찌 장교유니폼이다. 이러한 형상은 전쟁과 역사에 관계되는 전체적 기억 이미지 중 하나의 상징적 단편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기억의 싹으로 간주되는 불명확한 사진적 이미지는 부인할 수 없는 과거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마치 잊혀진 레미니센스처럼 독일 역사의 기억을 쉽게 탐지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이런 이미지를 오늘날 독일사회에서 슬며시 자취를 감추는 불쾌한 기억들의 망령으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와 진실의 관계는 기억의 싹과 그 사회적 틀의 분명함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또한 사진은 공통체적 기억 전체를 탐지하게 하는 기억적인 &quot;지시소(deïctique)&quot;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이러한 흐린 사진적 이미지들은 결국 기억의 불확실성 즉 공동체적 건망증을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br /&gt;4 사진과 현실의 이중성&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억의 환기는 싹과 틀 그리고 확장의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반대로 기억의 변질은 이러한 환기적 구성요소들의 부재와 왜곡에 그 원인을 들 수 있다. 이론적인 맥락에서 망각과 건망증은 서로 다른 경우로 설명되어 진다. 우선 건망증은 병리학적 용어인 반면 망각은 병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 용어는 결과적으로 기억 분실이라는 점에서 동의어로 간주된다. 건망증은 그 개념상 어떤 기간에 일어난 사건 전체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동공적 기억현상이라고 할 때 망각의 경우는 흔히 사라져 가고 있는 레미니센스처럼 기억의 유출이나 쇠약으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망각은 완전한 기억의 부재가 아닌 단지 탐지할 수 없는 환기의 무능력을 말한다. 앙리 베르그송은 자아의 모든 상태와 기억은 무한히 간직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진술은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된 기억이 차후에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특별한 상황 없이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 기억이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 반증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망각의 시각적 표현으로 간주되는 흐린 사진 영상은 완전히 사라진 동공적 기억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과거사실 혹은 마치 침수된 빙하의 거대한 무의식에 잠재된 기억에 관계한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의 변질, 쉽게 말해 망각이나 왜곡의 원인은 여러 가지 경우에서 온다. 가장 큰 원인은 시간의 경과로 인한 기억의 불확실성이지만 사실상 시간의 흐름이 유일한 원인만은 아니다.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맥락에서 망각의 은유로 재현되는 흐린 사진영상은 우리 모두의 공동체적 기억의 변질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 원인성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 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기억 변질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기억적 재구성에 있어 언제나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기억의 천성적 불확실성에 기인하고 둘째로는 오늘날 정보사회의 기억적 간섭 현상에 원인이 있고 셋째로는 기억의 사회적 틀의 붕괴나 급변에 있고 넷째로 대중 심리학적 측면에서 집단적 기억의 억압과 검열에 주된 원인이 있다.&lt;/p&gt;
&lt;p&gt;첫 번째 이유로, 기억의 변질은 엄밀히 말해 우리들의 논리적 기억에서 온다. 우리가 어떤 과거사실에 대하여 기억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는 행위인데 이때 재구성된 이미지들은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한 단편처럼 연속적으로 나타나야하고 또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서 온 착각이다. 사진을 기억적 재현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실상 사진적 이미지가 과거사실의 증거로서 기억의 정확한 사실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온다. 그러나 기억은 사진적 장치와 같은 정확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기계 장치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에 대한 두 가지 착각이 있다. 한편으로는 사진이 흐리고, 색이 바래고 혹은 변형된 사진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이런 이미지를 일반적으로 자료적이고 회고적이고 또는 향수적인 레미니센스로 쉽게 동화시킨다. 이를 경우 시간의 경과는 기억 변질의 원인이고 반대로 흐린 사진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경과를 말해 주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기억은 사진처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지워진다고만 할 수 없다. 예컨대 십 년전 기억이 몇 일전 기억보다 더 선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 준다. 또 한편으로 볼 때, 진정한 기억은 서류처럼 정확하고 확실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오는 착각이다. 사실상 그 누구도 우리들의 기억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확실한 거대한 자료창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사진 이미지로 쉽게 동화되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기억은 사진처럼 정확히 출현해야한다는 우리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억의 착각은 우리가 분명하고 선명한 사진은 진정한 기억 이미지로 생각하며 또한 흐린 이미지는 레미니센스 혹은 망각의 은유로 쉽게 받아들이는데 있다. 이런 착각은 사실상 사진 이미지 앞에서 기억 환기가 시작 될 때 기억 탐지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학적 사고 즉 &quot;논리적 기억 (La mémoire logique)&quot; 때문이다. 논리적 기억은 기억의 싹이 출현하자마자 &quot;역사를 꾸미는 서술적 작업&quot;을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언제나 불확실한 우리들의 기억에서 온다. 사실상 완벽한 기억적 재현은 불가능함에도 볼구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논리적 기억 덕분이다.21) &quot;(법정에서) 모든 증인은 자신의 기억적 동공에 자신 스스로의 창작에 의해 보충하려고 하는데 (....) 증인은 있음직한 자신의 창작에 의해 망각을 메우려고 한다&quot;(M. Borst)22)라 고 하듯이, 과거 사실의 재구성은 사실상 기억의 불확실성과 망각에 많은 추리적 창조 다시 말해 과학적인 논리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재구성은 프루스트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레미니센스에 의해 짜여진 긴 서술, 일종의 반-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 이미지로서 특히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사진(보고서, 도감, 진술서 등)이 출현 할 때 우리는 그 사진 주위에 기입된 주석이나 설명 등의 텍스트를 근거로 하여 논리적 연상을 하도록 강요되는데 그때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일치는 &quot;텍스트-이미지(texte-image)&quot;라고 하는 논리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결에 의하여 우리는 쉽게 소설적 측면으로 역사를 꾸밀 수 있다. 그러나 사진과 텍스트는 엄밀히 말해 다른 메시지이고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한 인위적 연결 즉 코드화 된 것(롤랑 바르트의 사진적 메시지)일 뿐이다. 바로 여기서 근본적으로 메시지의 조작과 왜곡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텍스트가 붙여지면 이러한 서로 다른 메시지들간에 어떤 미묘한 분쟁(진실과 가짜)이 생기는데 한편으로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Ça a été)와 또 한편으로는 조작과 왜곡을 은밀히 허락하는 언어학적 &quot;지시&quot;사이의 갈등이 야기된다. 현대미술의 몇 몇 작가들이 &quot;텍스트-이미지&quot;의 형식으로 사진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예술적 의도는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논리적 사고 다시 말해 맹목적인 논리추구 혹은 과학적 맹신으로 인한 인식적 허구(오늘날 정보 사회의 진실과 가짜의 혼동)를 개념적으로 들추어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적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재구성 시리즈 중에서 앨범형태로 제작한 사진작품 &amp;lt;1946에서 1964년까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의 10개의 인물사진(1972)&amp;gt;이다. 이 작품은 &quot;우리에게 강요하는 감각의 자국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한 개인에게 교부하는 기억 속에서 진실과 가짜를 구별하는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quot;Ecrits timides sur le visible, armand Cdlin Editeur, Paris, 1992, p. 225. &apos;)라고 비평가 질베르 라스코(Gilbert Lascault)는 말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들 기억의 재구성은 언제나 서로 다른 메시지로부터 원인적이고 추론적인 관계의 논리적 사고에 의존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오늘날 메디아 사회가 야기 시키는 사진(영상 이미지 전체)에 대한 우리들의 맹신 즉 현실과 환상 혹은 진실과 가짜의 모호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술적 의도는 작가의 또 다른 설치작품 &amp;lt;그림자 Ombres(1984)&amp;gt; 시리즈에서 더욱 더 함축적으로 말해지고 있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5 정보사회와 기억적 간섭&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통적 사회는 구전에 의해 진술되는 기억사회로 특징지어 진다면 현대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기억에 의존하는 사회가 아닌 기계적 방법 즉 대중매체에 의한 정보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전 사회의 망각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인 기억분실에서 올 때 오늘날 정보사회에서의 망각은 근본적으로 대중매체에 의해 전파되는 엄청난 정보홍수에 그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홍수는 우리에게 사실상 인간의 기억종이(고대 사람들은 인간의 기억 메카니즘을 쉽게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quot;팔렝프세스트 Palinpsestes&quot;종이에 비유함) 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식과 정보의 분실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엄청난 정보사회에 당면한 기억과 망각에 대한 우리들의 딜렘을 말함과 동시에 현대미술에 도입된 사진적 이미지가 우리에게 던지는 공동체적인 의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때 흐린 사진적 이미지는 이러한 원인에서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 망각의 시각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공동체적 건망증은 우선 오늘날 현대인의 과도한 정신 활동 정확히 말해 메디아에 의해 끝없이 전파되는 새로운 정보들에 의해 강요되는 기억적 무능력에서 비롯된다. 또한 누적되는 사회적 사건과 연속적인 쇼크들로 인한 무감각은 오늘날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망각 현상은 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quot;기억적 간섭현상&quot;24)에 의해 설명되어 진다. 망각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경우 기억고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quot;구조적 조직(혹은 골격)&quot;의 결핍으로 인한 결과이며 생생한 기억이란 이런 골격의 완전함을 말한다. 우선 기억 고착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 한편으로는 의도적인 고착인데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으로 관심과 집중 그리고 반복에 의존하면서 구조적인 골격 형성을 최대화시키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교육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특히 관심과 집중을 증대시켜 기억고착의 골격 형성을 완전히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어떤 쇼크나 천재지변의 기억처럼 즉각적이고 자연적인 고착을 말한다. 그때 구조적 골격은 거의 자동적이고 완전한 형태를 가진다.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쇼크와 같은 큰 충격을 주는 잊을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반응은 갈수록 무감각으로 나타난다. 의심할 바 없이 사회현상으로서 나타나는 이러한 집단적 무감각이나 망각은 정보홍수에 의한 기억 간섭현상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기억적 재현으로 이용된 사진적 이미지들의 몇 몇 경우는 기억고착에 관계하는 조건들을 표명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런 이미지들은 과거의 평범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기억 속에 이미 견고히 고착되었던 잊지 못할 사회적 정치적 사건에 관계하고 있다. 이런 문맥에서 가장 좋은 예는 앤디 와홀의 많은 (보도)사진적 그림인데 거기서 분명히 외시하는 주제는 당시 사회 문화적 중요한 사건들이다. 사실상 와홀은 이러한 주제의 사진적 재현에 있어 관객의 기억 속에 다시 강압적으로 각인 하는 방법(골조구성)을 시각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된 이미지들은 더 이상 생생히 기억되는 기억 이미지들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마치 기억에서 붕괴되고 탈구된 기억 이미지처럼 느끼게 하는 기계적 흐린 효과의 출현 때문이다. 기억고착을 조장하는 첫 번째 골격조건은 &quot;인상이 강렬하면 할수록 보다 더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quot;26)라 는 사실에 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경우는 기억 고착에 있어 사건 그 자체인 구조적인 골격을 이미 가지고 있는 쇼크 사진의 경우인데 와홀의 &amp;lt;129명의 죽음(1963)&amp;gt;이나 혹은 &amp;lt;원자폭탄(1965)&amp;gt;(도판3)에서 보여지는 대중적인 쇼크 사진 이미지는 이런 경우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게랄트 리히터의 역사그림 &amp;lt;1977년 10월 18일(1988)&amp;gt;시리즈에서 도용된 아마추어 사진 이미지(당시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사건) 역시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기억고착의 골격을 짜는 두 번째 요소는 &quot;단순성&quot;이다. 특히 시각적 기억에서 단순화되고 축약되고 상징화된 이미지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미지들보다 구조적인 골격을 짜는데 더 유리하다. 또한 이미지의 단순성은 부분으로부터 연상적 확장에 의해 전체를 탐지하고 재구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미술에서 공동체적 기억을 재현하는데 이용한 많은 사진에서 이러한 단순성은 분명히 나타나는데 특히 와홀의 그림에 나타난 많은 상징적 언어에서 이러한 경향은 지배적이다. &amp;lt;루디 아저씨(1965)&amp;gt;혹은 &amp;lt;48명의 유명인 초상(1972)&amp;gt;과 같은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에서도 이러한 단순성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단순성은 독일 역사의 기억적 틀에서 축약되고 상징화된 이미지 즉 상징적 오브제로 나타난다. 세 번째 요소는 기억할 내용이 단조롭지 않은 변화 즉 리듬화되고 구조화된 형태를 가질 때 기억고착은 더 용이하다. 역시 가장 좋은 모델을 보여 주는 작품은 와홀의 그림인데 여기서 보여지는 리듬적 구조는 특별히 반복적 체제 속에서 &quot;내부적 다양성(The interior variation)&quot;이라는 형태로 출현한다. 또한 이것은 와홀적 그림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quot;그림화 작업&quot;에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볼탄스키, 리히터 혹은 키퍼의 연속적 사진적 이미지에서도 엄밀히 말해 같은 기억적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네 번째로, 반복은 의도적이고 강압적인 측면에서 기억고착의 가장 탁월한 방법일 것이다. 특징적으로 기계적이고 연속적인 면을 갖는 반복은 흔히 현대미술에서 사진적 시퀀스 방법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와홀의 &amp;lt;원자폭탄&amp;gt;에서 보여지는 구조적인 반복은 잊지 못할 역사적 사건을 강압적으로 기억시키는 방법으로서 가장 좋은 경우로 나타난다. 기억고착의 마지막 요소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quot;경향&quot;과 &quot;관심&quot;은 쇼크사진 만큼이나 강한 기억고착의 골격을 형성시킨다. 프로이드는 비록 평범한 인상이나 사건이라 할지라도 직감적인 경향에 의한 몇 몇 유아기적 시절의 기억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의식과 무의식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가를 보여 주며 특히 무의식적 경향들은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기억고착에 즉각적으로 골격을 짜기도 하고 또한 반대로 억압적 매카니즘을 이용해 기억적 골격을 해체하기도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와홀의 그림에 나타나는 스타얼굴, 달러, 자동차들은 바로 이러한 당시의 공동체적 관심을 나타내는 경향을 말해 주며 반대로 리히터의 &amp;lt;루디 아저씨&amp;gt;는 억압(Refoulement)에 의해 망각되는 공동체적 심리 경향을 잘 말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lt;/p&gt;
&lt;p&gt;이와 같은 기억고착의 몇 몇 조건들은 사실상 일반적 기억이론에 관계하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 표현된 이러한 요소들은 기억고착의 상태를 은유적으로 말해주는 사진과 관계를 하고 있고 또 대다수의 사진들은 사회-문화 혹은 정치-사회의 공동체적 기억에 관계하고 있다. 적어도 여기서 재현된 사진적 이미지들은 잊지 못할 공동체적 사건에 대한 시각적 재현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진에 나타난 흐린 효과는 우리로 하여금 진술된 사진적 내용이 아주 오래되고, 어렴풋하고, 환상적이고 또한 비현실적인, 말하자면 레미니센스적 감정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심리적으로 사진과 기억이미지 사이의 동화현상 속에서 야기되는 환상일 뿐이다. 의심할 바 없이 과거사실의 재현에 있어 흐린 사진의 출현은 망각의 표현이며 더 정확히 말해 점진적으로 붕괴되는 기억 고착상태에 대한 시각적 재현인 것이다. 이는 곧 특히 오늘날 메디아 시대의 정보 홍수가 야기 시키는 공동체적 건망증(특히 기억적 간섭현상으로 인한)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6 레미니센스와 기억의 사회적 틀&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quot;사진은 기억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자국이다&quot;27)라 고 필립 뒤봐는 말하고 있다. 이는 기억고착의 측면에서 볼 때, 단순성에 의해 축약된 모든 기억 이미지는 사진적 장면 위에서 재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러한 기억 이미지는 단순한 기억적 자국으로만 간주되지 않는다. 사진적 방법에 의해 재현될 수 있는 기억 이미지는 두 가지 타입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사진적 이미지(image-cliché 음화)이고 또 한편으로는 의미적 이미지(image-signfication)이다.28) 전자는 일반적인 사진의 개념(The photography)으로 &quot;과거 사실의 자국(Ça a été)&quot;으로 현실의 사실주의와 관련한 일종의 그림적 이미지 즉 기억 이미지는 구체적 물질인 사진의 음화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고이다. 후자는 사진으로 나타난 기억 이미지는 단지 그 기억적 대상에 대한 외관적 모습만 재현한다는 현상학적 개념이다. 그 때 사진은 이러한 대상의 실체 혹은 본질(essence)을 감지하게 하는 &quot;사인(signe)&quot;(사진인덱스와 유사한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사르트르가 정의하는 사진의 개념과 유사한 맥락으로 예컨대 &quot;이미지는 의식 속에서 어떤 대상(chose)이 아니라 의식하는 하나의 타입(의미를 말하는 정신적 근본의 반사)이다&quot;29)라 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재현되는 기억적 이미지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존재론적인 재현이 아닌 단지 공동체적 의식에 대한 시각적 재현을 말하는 음화적 이미지로만 이해되고 그때 사진적 사실주의는 단지 하나의 개념적 도구로 간주될 뿐이다.&lt;/p&gt;
&lt;p&gt;레미니센스는 감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어떤 음색이 지배하는 불확실하고 몽롱한 과거의 장면이다. 이는 엄밀히 말해 심리학적으로 기억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적 이미지로 재현되는 레미니센스는 흔히 어렴풋하고 불확실한 기억, 더 구체적으로 말해 기억 속에 사라져 가는 기억의 시각적 재현으로 간주된다. 현대미술에서 흐린 사진적 효과에 의해 표현되는 이러한 레미니센스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들 의식에서 변질되고 견디기 어려운 기억을 들추어내는데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기억은 두 가지 공통되는 의미적 조건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볼 때 레미니센스는 개인적 기억에 관계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적 경험에 관계하고 있다는 조건이고 또 한편으로는 의식 속에서 완전한 동공을 말하는 &quot;동공적 건망증&quot;이나 어느 한 기간이나 과거 사건의 &quot;선별적 건망증&quot;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베르그송이 &quot;기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quot;라고 언급한 것처럼 잠재된 무의식적 기억을 말하는 전제조건인데 이런 기억은 사진으로 비유하면 현상되지 않은 필림의 잠상(폼페이)이라 할 수 있다.&lt;/p&gt;
&lt;p&gt;이러한 주제를 가지는 사진적 작품의 가장 좋은 예는 볼탄스키의 &amp;lt;기념비(1984)&amp;gt;시리즈이다. 이 작품에서 주제는 어린 시절의 죽음이고 사진적 레미니센스에 의해 암시되는 어린 시절은 우리 모두에 해당되는 기억적 분실 즉 공동체적 망각의 은유이다. 그 누구도 기억 할 수 없는 어린아이의 흐린 얼굴은 관객에게 감상적 향수나 애석함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quot;이러한 망각을 축성합시다&quot;라고 하듯 조롱적으로 종교적 성인에 대한 추모적 형태로 기념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주제는 과거의 죽음을 말하는 공동체적 망각이며 또한 관객에게 던지는 의문이기도 하다. 이때 레미니센스의 원인은 사회적 현상과 관련된다. 왜냐면 기억과 망각은 그것이 속한 조직체의 응집력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억을 환기하거나 고착하는데 있어 기억의 구조적인 조직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망각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조직의 붕괴와 변화에 관계한다. 우리들 정신 활동은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 활동과 관계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억은 언제나 사회적 틀을 갖고 또 이런 틀은 우리들 기억 전체에서 하나의 단위를 구성한다. 기억적 틀이 견고하고 확실할 때 우리는 어떤 과거사실을 쉽게 환기하고 반대로 그 틀이 변화되거나 붕괴되면 우리는 기억탐지에 어려움 느끼거나 혹은 망각을 인식한다. 결국 &quot;기억적 틀의 부재는 우리들 기억의 변질을 가져온다&quot;30)라 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구조적 조직인 &quot;이미지 블록&quot;의 점진적 붕괴로 인해 기억의 연상은 중단된다.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레미니센스는 어린 시절에 관계되는 기억적 틀의 붕괴에서 오며 그 결과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애석함을 동반하고 있다. 그래서 &quot;예전의 음색으로 어린 시절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때 어른의 시각으로 다소 진실보다는 가식적이고 미화된 그림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상 서로 다른 두 기억적 틀의 불연속에서 야기되는데, 왜냐면 어른의 틀은 아주 견고하게 짜여진 사회적 틀인 반면 어린 시절의 틀은 독립되고 이질적이고 붕괴된 틀을 갖기 때문이다.&quot;31)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흐린 사진 이미지는 기억의 사회적 틀의 붕괴로 인한 불확실성과 변질을 암시하는 기억 이미지로 이해된다.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 전쟁, 종교, 죽음 등의 사진으로 재현된 주제들은 거의 현재와는 무관한 불연속적인 틀에 관계하고 있고 이때 망각은 대부분의 경우 과거 한 기간에서 다른 한 기간으로의 기억적 틀의 붕괴나 급진적 변화에서 설명되어 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현되는 표현적 양상은 다양하다. 첫 번째의 예로 와홀의 그림 &amp;lt;원자폭탄&amp;gt;에서 이러한 설명은 분명 해진다. 그림의 주제에 관계되는 기억적 틀(40년대)은 정치적 사회적 급변에 의해 변화된 당시 60년대의 틀과는 분명한 불연속을 가진다. 과거에 즉각적으로 고착된 사건의 무시무시한 장면 앞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메디아에 의해 야기되는 우리들의 불감증임과 동시에 근본적으로 이는 기억의 사회적 틀의 급변으로 인한 두 틀의 불연속에서 더 이상 연상할 수 없는 망각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볼탄스키의 작품에 나타나는 버려진 옷, 앨범, 많은 유품들 혹은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에서 단편으로 재현된 희생자의 유품, 나찌 유니폼과 같은 기억적 오브제의 경우인데, 이런 것들 역시 더 이상 오늘날 연속하지 않는 기억적 틀(전쟁, 학살, 암살 등의 정치적 사건)에 관계하면서 단지 독립된 익명의 유물일 뿐이다. 왜냐면 기억환기는 근본적으로 개체와 그 개체가 속한 그룹 혹은 전체적 이미지 블록과의 연속적 접촉이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기억적 틀의 변화로 인한 점진적인 망각이나 역사적 왜곡의 경우이다. 볼탄스키의 &amp;lt;1939년에서 1964년 사이의 프랑스 D가족의 앨범(1971)&amp;gt;, &amp;lt;샤스 고등학교(1987)&amp;gt; 혹은&amp;lt;문서고(1987)&amp;gt; 등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주제는 슬그머니 변화된 역사적 틀의 변화로 인한 점진적 망각을 말한다. 더 구체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는 기억과 망각의 딜렘으로 우리의 이성이 도달치 못하는 음영(ombres)의 징후(index)를 말하는 것이다. 리히터의 &amp;lt;루디 아저씨&amp;gt;, &amp;lt;48명의 초상들&amp;gt;, 또한 안젤름 키퍼와 같은 몇 몇 독일 신 표현주의자들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적(도용) 그림에서도 같은 맥락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도입된 흐린 사진적 효과들은 이러한 원인으로 변질된 망각에 대한 재현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7 역사와 기억 그리고 집단적 망각&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대미술에 이용된 흐린 사진 영상은 과거사실 특히 역사적 기억32)에 대한 왜곡과 변질을 암시한다. 역사 왜곡은 단지 하나의 이유에서가 아닌 여러 가지 원인에서 온다. 왜냐면 기억 변질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또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전체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선 기억(공동체적 기억 Mnemosyne)과 역사(역사적 기억 Clio)는 다르다. 이 두 종류의 기억이 과거 같은 사건을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또한 전자가 후자를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기억을 역사와 혼동하지 않는다. 모리스 알바슈는 역사로부터 기억을 분명히 구별하는데, 즉 &quot;기억은 구전적이고 경험적이고 또 생산적인 기억인 반면, 역사는 차용되고 배워지고 또는 적혀지거나 재창조되어 최종적으로 진화된 기억이다&quot;33)라 고 언급하고 있다. &quot;기억은 숨겨진 진실을 갖는 반면 역사는 목적과 이익과 같은 의도에 이해 선별을 시행한다&quot;Les lieux de memoire, I. La Republique, Gallimard, Paris, 1984). 기억(공동체적)은 비록 그 의미가 다양하고 불확실하지만 주관적인 방법으로 감정과 정열의 무질서 속에서 행위적이고 실질적인 기억을 세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천성적으로 언제나 모호하고 결코 한가지 뜻만 가지지 않으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번역을 허락하기 때문에 이동, 검열, 억압, 등의 모든 의도적 왜곡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 &quot;기억의 조형성 혹은 실용성(plasticité)&quot;. 재 창조적 특징을 같는 역사는 그 속성상 임의적이고, 선택적이고, 또한 번역적이다. 역사는 과거를 정확하게 합법적으로 또한 획일적으로 재현할 목적을 가짐과 동시에 범 우주적 사명감도 가지고 있다. 결국 역사는 &quot;파괴적 비평&quot;(피에르 노라 Pierre Nora)은 공동체적 기억을 파괴하고 억압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역사는 반-기억적이고 기억은 반-역사적이다.&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현을 위해 많은 작가들이 사진에 의존한다. 흐린 사진 효과는 이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적 변질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의 기억은 우선 천성적으로 모호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사라지기 때문에 역사의 망각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런 진화적 망각이며 경우에 따라 이런 망각은 오늘날 미래를 향한 정신적 활동에 오히려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메스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검열되는, 더구나 집단에 의해 암암리에 묵인되는 기억의 왜곡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다. 근본적으로 왜곡은 기억의 실용성에 그 이유를 들 수 있다. 기록으로 역사를 재구성할 때 번역은 보다 확실하고 보다 편한 방법을 선택하며 또한 어떠한 목적과 수단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고로 역사는 &quot;아주 인위적이고 획일적이며 그리고 선별적이다&quot;라고 할 때 &quot;기억은 의미의 폭로적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quot;.35) 공동체적 기억이나 사건에 관한 역사적 왜곡은 군중 심리학적 관점에서 프로이드의 &quot;억압 (refoulement)&quot;에 의해 흔히 설명되어 진다. 억압은 과거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기억으로부터 &quot;자아&quot;의 손상을 막기 위해 이러한 기억이 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억압하는 자신의 보호적 메카니즘을 말한다. 기억 왜곡은 어떤 특정한 목적(위장)을 가지는데 그때 과거 사실의 진실은 &quot;검열&quot;이라는 메카니즘을 통해 기억-스크린(souvenir-écran)뒤에서 언제나 위장되어 나타난다.&lt;/p&gt;
&lt;p&gt;억압에 의한 왜곡된 기억 이미지를 재현하는 현대미술의 작가들은 흔히 흐린 사진적 영상을 마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기억의 은유로 이용한다. 이러한 예술적 경향은 60년대 초부터 특히 바즈리츠(G. Baselitz), 키퍼(A. Kiefer), 임멘도르프(J. Immendorf)와 같은 독일 신 표현주의자들의 예술적 의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후 서독의 경제적 기적에 심리적 배경을 형성시키면서 슬그머니 새롭게 재건된 독일 이미지와 과거 나찌 독일의 그림자를 교체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반(反)하는 이러한 작가들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당시 대중 계층에 팽배한 심리적인 &quot;억압&quot;에 의해 교묘히 왜곡된 독일 역사에 대한 진실의 규명이었다. 리히트의 사진적 그림 시리즈 중 &amp;lt;48명의 초상&amp;gt;과 &amp;lt;루디 아저씨&amp;gt;는 이런 맥락에서 사진을 이용한 작품들 중 가장 대표적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독일 나찌 공군장교(작가의 친척)를 재현한 &amp;lt;루디 아저씨&amp;gt;는 불쾌한 독일 역사에 대한 상징적 역사그림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리히터는 관객에게 이중적인 쇼크를 주는데 한편으로는 그림과 사진과의 관계에서 그대까지 사진적 주제로 독점된 역사에 관한 그림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60년대 당시 공동체적 &quot;억압&quot;에 의해 암암리에 묵인되거나 망각된 독일 역사에 대한 기억적 재현이다. 이러한 사진적 그림은 익명의 아마추어 사진으로부터 &quot;전쟁과 전후 독일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quot;(스테판 게르머 Stefan Germer)을 주는데, 재현된 모델은 마치 사진의 잠상처럼 독일인 무의식에 잠재되고 억압된 기억 이미지로 나타난다. 거기서 나찌의 만행에 동참했던 이런 저런 과거 사실과 전쟁에 관계되는 기억은 어렴풋한 레미니센스로 나타나며 동시에 대중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과거의 자국과 흔적으로 이해된다. 이는 곧 프로이드적 의미로 억압과 검열에 의한 &quot;의도적 망각(oubli actif)&quot;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의도적 망각은 사진적 설치 작품으로 나타난 리히터의 &amp;lt;48명의 초상&amp;gt;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이 작품은 독일의 미래를 위해 역사를 빛낸 민족적 영웅들을 재현하면서 진정한 위인들의 기념초상들이 아닌 모델 선별과정에서 작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위인들의 초상을 담고 있다. 그려진 초상들은 전후 70년대 서독의 정치적 상황과 당시 억압과 검열에 의해 조작된 독일 역사에 대한 일종의 풍자적 재현이며 또한 위인들을 유령으로 둔갑시킨 흐린 효과는 의심할 바 없이 당시 슬그머니 왜곡된 역사와 그로 인한 독일의 희망 없는 미래를 암시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이해된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8 역사의 왜곡과 진실&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통적 역사그림은 일반적으로 제작자의 주관적 번역에 의해 과거 사실이 재현된다. 왜냐면 역사는 제작자의 관점에 따라 선별되고 번역되고 또 관심과 경향에 따라 재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quot;관찰자적 태도(L&apos;attitude d&apos;observateur)&quot;에 의해 제작된 역사그림은 제작자의 주관적 시행과는 달리 마치 보도사진과 같이 단지 진술적 측면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자세는 공동체적 진실을 구현할 수 있는 반-역사적인 위치에 흔히 놓이며 그때 그림의 자료로 이용되는 사진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림의 영역에서 이미 19세기 마네의 몇 몇 역사그림에서 볼 수 있다. 마네의 &amp;lt;막시밀리앙 황제 처형 (1868-69)&amp;gt;과 1877년에 제작된 &amp;lt;자살자(Le suicide)&amp;gt;는 사진의 객관성이 역사그림에 도입된 가장 좋은 모델들로 간주되며 작가의 눈에 비친 역사적 사건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재현한 일종의 정물화(마네의 대상과 사건에 대한 정물화적 개념)로 볼 수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쇼크를 준 이러한 그림들은 사진과의 경쟁적 의식에서 제작된 보도적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의 역사그림 즉 역사적 진실을 위한 그림으로 간주된다. 이는 회화의 영역에서 객관적 사실에 의거한 역사그림의 첫 시도로 간주된다. 당시 사진이 이미 넓은 분야에서 보도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마네의 예술적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작품에 나타난 의도는 적어도 역사적 사건을 비평하거나 대중에게 전달할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주관성도 고려치 않는 단지 &quot;역사적 진실&quot;을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에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사진은 단순한 그림의 자료를 초월한 사건의 진실을 위한 객관적 자료로 이용되고 작가의 태도는 그때 관찰적이고 동시에 관망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한편으로 사진과 그림 또 한편으로는 관찰자적 태도와 보도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재현을 동시에 연결하려고 했다.&lt;/p&gt;
&lt;p&gt;이러한 시도 이후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60년대 와홀과 1980년대 리히터의 역사그림들은 이러한 마네의 관찰자적 태도를 정확히 따르고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오늘날 사진을 이용한 역사그림은 사진의 이중적 기능 즉 진실성과 객관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들은 사진을 역사의 번역과 의미를 위한 그림적 참조가 아닌 &quot;기억적 사실주의&quot;로 간주하며 또 그들이 표현하는 사진의 흐린 효과는 반대로 잊혀져 가는 역사적 망각이나 왜곡을 말하는 것이다. 와홀의 &amp;lt;자살자(Silver Jumping Man) (1962)&amp;gt;는 한 남자가 고층 빌딩에서 뛰어 내리는 결정적 순간을 잡은 보도사진으로부터 제작된 그림이다. 이 작품은 마네 이후 처음으로 어떤 드라마를 재현하는 보도사진적 그림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곧 이러한 장르가 이미 사진의 전유물이 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역사그림과 보도사진의 접맥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그림 양식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와홀의 관찰자적 태도는 마네의 경우와는 다르다. 우선 와홀의 경우는 사진으로부터 기계적 전사 즉 어떠한 손의 중재를 개입시키지 않고 쇼크사진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사실주의를 그림에 도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홀의 사진적 이미지들은 근본적으로 그림의 장르에 속한다. 왜냐면 와홀의 그림에는 언제나 어떤 기억적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도사진은 단지 과거사실에 대한 사실적 증거(진술적 혹은 전달적 의미)일 뿐일 때 와홀의 그림은 기억의 진실을 위해 보도사진의 사실적 방법을 모방하고 있다. 그의 창작적 태도는 마치 마네의 정물화적인 역사그림처럼 한치의 주관적 필터도 없는 또한 어떠한 개인적인 해설도 없는 철저히 객관적인 자세로 이해된다. 롤랑 바르트는 와홀의 이러한 냉정한 자세를 팝 예술의 근본적 개념과 같이 접맥시키고 있는데 그는 &quot;팝 예술은 새로운 자연(물질사회를 말하는 절대적 사회)에 관계하며 그것을 비평하면서 우리들 시각에 어떤 &quot;거리&quot;를 강요하고 있다&quot;L´obvie et l´obtus, col. L´obvie et l´obtus, col. &quot;Tel Quel&quot;, édition du Seuil, Paris, 1982, p. 188. &apos;) L´obvie et l´obtus, col. 라고 언급한다. 다시 말해 이는 사회적 사건에 대하여 적당한 거리를 두게 하면서 우리에게 절대적 객관성을 갖도록 하는 것으로 결국 우리에게 불감증과 망각을 말하는 또 다른 공포(물질문명에 대한)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와홀이 그의 작품에 새로운 보도사진적 방식을 적용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사실적 재현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문화적 코드로서 사진이 함축하는 기억적 메시지 때문인데 이러한 메시지는 그의 작품에서 축약적 형태로 나타나는 기억적 오브제에 의해 분명히 외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작품의 구성이 함축하는 시간의 유동성에 의해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연속, 연쇄, 반복 그리고 시리즈 등과 같은 서술적 구성요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시간적 흐름에 관계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와홀의 그림화 작업(pictualisation)에서 관찰되는 &quot;내부적 다변성&quot;, &quot;슬립파쥬(slippage)&quot;, 등의 다양한 그림적 효과(기계적 흐린 효과)에 의해 보장된다. &quot;인쇄과정의 결과로서 이런 효과들은 그때 애초에 고착된 이미지에 생명을 주고 관객에게 시간에 대한 유동적 감각을 가져다준다&quot;Andy Warhol Silkscreens from the Sixties, Schirmer/Mosel, Paris, 1988, p. 20. &apos;)라고 존 코프란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감각은 다시 말해 관객에게 일종의 드라마적 환기를 유발시켜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와홀의 관찰자적 태도와 보도사진적 방식은 역사에 대한 진실을 추적함에 있으며 그의 예술적 태도는 역사에 대한 비평적이고 도전적 시각이 아닌 중성적 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마네의 관찰자적 태도는 또한 80년대 말 정치적 주제를 갖는 몇 몇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와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예술적 태도는 역사 사실의 재현에 있어 철저히 주관적 관점을 배제한 중성적이고 사실적인 관점에 있고, 그 의도는 작품에서 흐린 사진적 이미지로 표현된 망각에 대한 기억적 진실에 있다. 그러나 리히터의 반-역사적 표현은 와홀과 달리 은밀한 권력(메디아) 밑에서 조작되고 왜곡된 독일역사에 관계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 독일역사의 정치적 주제로 제작된 &amp;lt;1977년 10월 18일&amp;gt;시리즈(예 : 도판4)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시리즈는 아마추어 사진으로부터 보도사진 형식으로 제작된 역사그림으로 최근 독일에서 가장 암울한 정치적 사건들 중 하나(독일 적군파 바드-마인호프(Baader-Meinhof)의 활동과 스타므하인(Stammheim) 감옥에서 그 멤버들의 의문스런 죽음)를 다루고 있다. 우선 리히터가 자신의 사진적 그림에 적용한 사진의 이용목적을 요약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스테판 게르머의 분석) 첫째, 사진적 그림은 60년대 아방가르드들이 세운 레이디-메이드의 남용과 자신의 전통적 사실주의와의 대립에서 온 하나의 반박 제스춰로 당시 그림 행위의 전위적 요소와 뒤상의 레이디 메이드에 대한 개념의 전복을 위해 사진을 그림에 도입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사진적 그림(예로 &amp;lt;엠마 Ema(1966)&amp;gt; 혹은 &amp;lt;루디 아저씨&amp;gt;)은 사진적 레이디 메이드로부터 그려진 비평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사진의 발명이후 오늘날 사진적 주제로 완전히 전용화된 것들인 정면성이나 대칭성과 같은 형태의 판박이, 사실성, 보도성, 역사성, 등으로부터 그림적 주제로의 복귀 혹은 탈환을 위해 그림은 사진적 내용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림 행위자체(주제)에 대한 의문일 뿐 사진과 그림의 경쟁적 의식 속에서 이해되지는 않는다(예로 &amp;lt;48명의 초상&amp;gt;). 리히터에게 사진의 세 번째 이용 목적은 그림행위에 있어 작가의 주관성을 완전히 탈락시키는데 있다. 이는 마네의 관찰적 태도에서와 같이 전통적 역사그림이 갖는 기억의 왜곡과 조작 가능성에 반하여 완전한 객관성 즉 과거 사건의 진실을 위해 사진의 절대적 진술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적 이용 목적에 가장 좋은 예는 앞서 언급한 &amp;lt;1977년 10월 17일&amp;gt;시리즈이다. 리히터의 사진적 그림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실현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사진과의 관계에서 전통 회화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행한 사진적 흐린 효과는 이러한 목적들을 기술적으로, 시각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실현시키는 탁월한 표현적 방법이며, 나아가 대상을 재현하는데 있어 원래(사진 발명이전) 그림의 현실은 흐린 시각적 재현(사람의 눈)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선명한 광각적 재현(렌즈의 눈)을 갖는 사진의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용된다. 그림의 현실로 재현된 &amp;lt;1977년 10월 18일&amp;gt;은 정확히 그림(역사)과 사진(보도)의 경계선에서 사진적 사실주의를 이용하여 오늘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그림의 재현 가능성을 묻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이 그림은 집단적 기억과 권력에 의해 왜곡된 의심스런 역사 사이에서 야기되는 의문과 딜렘을 대중에게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도입한 아마추어 사진은 단순한 자료의 역할을 넘어 와홀이나 마네의 경우처럼 중성적인 관찰자적 태도를 위한 자료로 볼 수 있다. 왜냐면 이 작품의 예술적 의도는 어떠한 정치적 선입감도 없이 단지 진실을 위한 객관적 재현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때 흐린 사진적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적 진실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촉매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 &lt;br /&gt;&lt;strong&gt;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 영상과 기억적 재현 -기억미술과 사진- &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9 결론&amp;nbsp;&lt;/strong&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대미술 작가들이 사진적 사실주의를 표현적 매체로 이용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사진의 절대적 진술성에 의한 과거 사실의 재구성이다.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우리들에게 암시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흐린 사진 효과가 암시하는 공동체적 기억의 변질이다. 이런 기억은 한 개체의 특별한 경우가 아닌 누구에게나 적용 할 수 있는 경우로, 이를 앙드레아 프란쯔크(Andreas Franzke)는 &quot;백과 사전적 혹은 기억의 보편적 역사&quot;라고 하고 있다. 볼탄스키 작품의 이미지-텍스트 조합 놀이의 경우처럼 작가는 궁극적으로 우리들 기억은 언제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오늘날 물질 사회에서 보여지는 과학적 사고(인식론)에 대한 지나친 맹신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전파 메디움이 야기 시키는 정보홍수 속에서 진실과 가짜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기억적 환상으로,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의 구석진 곳에서 마치 달무리처럼 우리의 이성을 맴돌고 있는 &quot;음영(Ombres 존재론)&quot;을 암시하고 있다.&lt;/p&gt;
&lt;p&gt;시간의 흐름은 망각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억의 변질은 기억적 과정에서 고착과 환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조적인 골격을 가지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거대한 정보 홍수로 특징지어진다. 기억 간섭현상은 이러한 정보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집단적 건망증의 주요한 원인이며, 특히 와홀의 작품에서 당시 사회적 기억을 재현한 그림들 대부분은 이러한 기억 고착에 관한 부정적인 측면 즉 개체들의 무관심에 관계하며 이는 곧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들은 단지 하루살이 같은 기억들일 뿐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때 표현방법의 반복과 시리즈 그리고 연속적 구성이 당시 메디아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엄청난 정보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할 때, 흐리게 처리된 기계적인 이미지들은 이러한 정보홍수에 의해 이미 무감각하게된 일종의 &quot;사물화된 기억&quot;의 은유로 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망각의 원인은 기억에 있어 사회적 틀의 붕괴와 변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견실한 기억적 틀을 갖는 과거 사회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사회의 기억적 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복합적이며 신속히 변화되고 수정된다. 그 결과 틀의 붕괴와 틀의 변화는 기억 탐지에 결정적으로 장애가 되며 망각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 보편화 된 이러한 공동체적 망각 현상은 흔히 현대미술 작가들에 의해 함축적으로 재현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탄스키 작품에서 보여지는 어린아이들의 흐린 초상은 가장 좋은 모델이 된다. 그 이유는 어른들의 사회적 틀과는 달리, 어린 시절의 틀은 이미 붕괴되어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불연속적 틀을 말하기 때문인데 이는 곧 오늘날 사회적 틀의 빠른 변화와 붕괴로 인한 공동체적 망각의 은유이기도하다. 이러한 흐린 초상 앞에서 더 이상 진실하고 분명한 기억탐지는 불가능하며 단지 어린 시절의 레미니센스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우리들 각자에게서 향수적 감정을 남기면서 사라지듯이 우리들의 역사적 기억은 필연적으로 망각으로 운명지어진다는 것인데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의 죽음들은 곧 공통된 우리들의 기억 상실을 말하는 것이다.&lt;/p&gt;
&lt;p&gt;현대미술에서 사진을 이용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는 그림들은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왜냐면 그림과는 반대로 사진은 근본적으로 과거 사건의 객관적 증거이고 또 사실적인 재현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태도는 그때 정치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가지면서 관망적이거나 중성적이다. 의심할 바 없이 흐린 사진 영상은 대중의 기억 속에 사라진 기억적 이미지로 이해된다. 왜냐면 사진은 기억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특히 리히터의 몇 몇 사진적 그림들은 이러한 대중 속에 잊혀져 가는 기억들을 재현하는데 그 망각의 원인은 &quot;의도적 망각&quot; 즉 공동체적 &quot;억압(심리학)&quot;에서 비롯된다. 그때 흐린 효과는 공동체적 무의식 속에서 억압되고 조작된 독일 역사의 기억을 재현하는데 이용된다. 역사적 기억의 변질은 특정집단의 이익과 목적으로부터 야기되는데 근본적으로 왜곡은 역사가 재 번역되면서 기록자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어떤 불리하고 불쾌한 기억들은 탈락되고 혹은 어떤 있음직한 이야기는 소설화되는데서 온다. 게다가 이러한 조작은 또한 특정집단에 의해 집단적으로 묵인되기까지 한다. 집단적 망각 현상은 과거 불쾌한 역사적 사실(나찌 만행이나 유태인학살 또는 정치적 암살 등의 전쟁이나 정치적 사건)에 대한 진실이 그처럼 심리적으로 억압되고 묵인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망각의 은유로 표현된 흐린 사진 영상들은 그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동체적 망각에 대한 기억의 강압적 요구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자들의 예술적 메시지는 기념비적이고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단지 기억적 의문을 던질 뿐이다.&lt;/p&gt;
&lt;p&gt;현대 사회는 언제나 기억 사회와 망각 사회 사이의 대립 양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억 사회가 전통과 사회적 계급을 배경으로 하는 재 창조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때, 망각 사회는 근본적으로 역사의 모든 불쾌한 자국을 부인하면서 전통적인 사회적 질서를 전복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양면성(대립감정)에서 미래를 위한 우리들의 올바른 자세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일종의 화합을 가지는 것이다. 왜냐면 지나간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강박적인 추적과 지나치게 반복되는 기념비적인 태도는 새로운 미래의 기억적 진보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합을 위해 사실상 기억만큼이나 망각도 필요하다. 빛과 그림자처럼 기억이 있는 한 망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 망각에는 두 가지 대립되는 양상이 있는데 하나는 미래를 위한 경험적이고 교훈적인 망각이며, 또 하나는 억압되고 왜곡되는 &quot;비난받을 망각&quot;(레네 샤르)이다. 긍정적 측면에서 볼 때 공동체적 망각은 우리들 미래 사회의 새로운 이미지를 재건하는데 하나의 약진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기억적 재현의 예술적 도구로 이용한 흐린 사진적 영상은 바로 이러한 미래의 진취적 희망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주요 참고 문헌 &lt;br /&gt;&lt;br /&gt;* 일반 참고 도서 &lt;br /&gt;Roland Barthes, La chambre claire : note sur la photographie, Cahiers du cinéma, Paris, 1990. &lt;br /&gt;Roland Barthes, L&apos;obvie et l&apos;obtus, col. Tel Quel, éd., du Seuil, Paris, 1982. &lt;br /&gt;Henri Bergson, Matiere et Mémoire, PUF 6ème éd., Paris, 1987. &lt;br /&gt;Pierre Bourdieu(sous la dir.), Un art moyen : essai sur les usages sociaux de la photographie, Les édition du minuit, 2ème éd., Paris, 1993. &lt;br /&gt;Joel Candau, Anthropologie de la mémoire, col. Que-sais-je?, PUF, Paris, 1996. &lt;br /&gt;Philippe Dubois, L&apos;acte photographique, éd., Nathan, Paris, 1990. &lt;br /&gt;Jean-Claude Filloux, La mémoire, col. Que-sais-je?, 10ème, PUF, Paris, 1969. &lt;br /&gt;Maurice Halbwachs, 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 éd., A. Michel, Paris, 1994. &lt;br /&gt;Maurice Halbwachs, La mémoire collective, éd., A. Michel, Paris, 1997. &lt;br /&gt;Pierre Nora, Les lieux de mémoire, I. La Republique, Gallimard, Paris, 1987. &lt;br /&gt;Michel Nuridsany, Ils se dient peints, ils se dient photographes, Musée d&apos;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0. &lt;br /&gt;Maurice Pradine, 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Tome I, II, PUF, Paris, 1946. &lt;br /&gt;Aron Scharf, Art and photography, The Penguin Press, 1974. &lt;br /&gt;&lt;br /&gt;* 주요 작가 카탈로그 &lt;br /&gt;크리스티앙 볼탄스키 &lt;br /&gt;Lynn Gumpert, Christian Boltanski, Flammarion, Paris, 1992. &lt;br /&gt;Didier Semin, Boltanski, Art Press, Paris, 1988. &lt;br /&gt;Christian Boltanski : Compositions, ARC, MNAM, Paris, 1981. &lt;br /&gt;Christian Boltanski, Composition, Musée des Beaux-arts, Calais, 1980. &lt;br /&gt;Christian Boltanski, MNAM, Centre George Pompidou, Paris, 1984. &lt;br /&gt;Christian Boltanski : Lessons of Darkness,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Los Angeles/ New-York, 1988. &lt;br /&gt;Boltanski : Reconstitution, ed., du Chene, Paris, 1988. &lt;br /&gt;Les Modeles, 5 relations entre texte et image, Chalon-sur-Saone, 1979. &lt;br /&gt;안젤름 키퍼 &lt;br /&gt;Anselm Kiefer, ARC/Musee d&apos;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4. &lt;br /&gt;Anselm Kiefer, Musée d&apos;art contemporain, Bordeaux, 1984. &lt;br /&gt;게랄트 리히터 &lt;br /&gt;Bernard Blistene, Gerhard Richter, Musée d&apos;art et d&apos;industrie, Saint-Etienne, 1984. &lt;br /&gt;Benjamin H. D. Buchloh, Gerhard Richter, vol.II, Musée d&apos;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93. &lt;br /&gt;Xavier Douroux(sous la direc.), Gerhard Richter Textes, Les presse du réel, Dijon, 1995. &lt;br /&gt;Gertrud Koch/ Luc Lang/ J.-P. Antoine, Gerhaed Richter, Editions dis Voir, Paris, 1995. &lt;br /&gt;Rooald Nasgaard, Gerhard Richter : Paintings, Art Gallery of Ontario/ Toront,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London, 1992. &lt;br /&gt;Gerhard Richter Bider 1962-1985, Du Mont Buchverlag, Köln, 1986. &lt;br /&gt;Gerhard Richter, Tate Gallery, London, 1992. &lt;br /&gt;앤디 와홀 &lt;br /&gt;David Bourdon, Andy Warhol, Flammarion, Paris, 1989. &lt;br /&gt;John Coplans/ Jean Baudrillard, Andy Warhol Silkscreens from the Sixties, Schirmer/Mosel, Paris, 1988. &lt;br /&gt;Klaus Honnef, Warhol, Benedikt Taschen Verlag Gmbh, Köln, 1993. &lt;br /&gt;Josse Kornbluth, Pre-Pop Warhol, Panache press, New York, 1990. &lt;br /&gt;Andy Warhol, Retrospective, MNAM, Centre George Pompidou, Paris, 1990. &lt;br /&gt;Artstudio, special Andy Warhol, N° 8, 2ème éd., Paris, 1990. &lt;br /&gt;&amp;nbsp;&lt;br /&gt;&lt;br /&gt;&lt;strong&gt;L&apos;imagerie photographique floue et la représentation mnémonique &lt;/strong&gt;&lt;br /&gt;(L&apos;art de mémoire dans l&apos;art contemporain) &lt;br /&gt;LEE Kyoung Yul&lt;/p&gt;
&lt;p&gt;L&apos;image photographie floue en tant qu&apos;outil artistique est utilisée dans l&apos;art contemporain non pas pour représenter simplement une scène vague du pasée mais justement pour ce &quot;flou&quot; de l&apos;incertitude de la mémoire contre la certitude de l&apos;amnésie collective, où le vrai et le faux se mêlent dans une illusion mnémonique, où la vérité mnémonique ne peut plus être assurée par sa nature, disposée à être manipulée. Au travers de la reconstitution mnémonique par le moyen de documents photographiques floue, ce que les artistes est une altération des souvenirs communs à tous. Cette déformation ne s&apos;adress plus au cas particulier mais, grâce à l&apos;usage des photographies anonymes, au cas collectif et universel comme &quot;aspect encyclopédique&quot;. Comme le jeu de &quot;texte-image&quot; dû à une création narrative de la connection logique chez Boltanski, le message que l&apos;artiste nous communique ne se renferme pas seulement dans une manière ironique ou critique contre la société de souvenirs dominée par les mass-médias qui répandent sans cesse la mémoire vraisembablement, mais plutôt il est une question qu&apos;il pose sur cette illusion mnémonique où s&apos;efface la frontière entre vrai et faux. &lt;br /&gt;La majorité des tableaux chez Warhol représentant les souvenirs sociaux de l&apos;époque sont liées à l&apos;interférence mnémonique de la ficxation des souvenirs. Ses images mécaniques traitées en flou et la répétition comme mode d&apos;expression sont alors la représentation des &quot;souvenirs réifiés&quot; déjà rendus apathiques par l&apos;amnésie si rapide. &lt;br /&gt;La question mnémonique peut se prolonger sur la mémoire historique dont le sens est d&apos;abord politique. L&apos;image photographique floue qui représente un événement passé s&apos;entend-elle comme l&apos;image-souvenir disparue dans la sphère publique. En particulier, chez Richter certains tableaux photographiques représentent ces souvenirs dont la cause provient de l&apos;oubli actif, à savoir du refloulement collectif. Les effets de flou servent alors à représenter une mémoire historique allemande à la fois refloulée dans l&apos;Inconscence collective et falsifiée ou censurée par un pouvoir (les médias manipulés). &lt;br /&gt;Pourtant Ce message n&apos;est pas critique, mais une question : l&apos;obsession de la recherche des traces passées et les commémoration trop répétées sont un obstacle a une nouvelle configuration mémorielle d&apos;avenir pour laquelle on a aussi besoin d&apos;oubli que de mémoire. Le manque de souvenirs au sens positif peut être un atout qui nous permet de reconstruire ou restaurer une nouvelle image de notre société dans l&apos;assomption du passé à laquelle s&apos;attache l&apos;image photographique floue utilisée dans la représentation mnémonique chez les artistes.&lt;/p&gt;
&lt;p&gt;&lt;br /&gt;도판목록 &lt;br /&gt;(도판1)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amp;lt;사스 고등학교&amp;gt;, 사진설치(시리즈 부분), 1987 &lt;br /&gt;(도판2) 게랄트 리히터, &amp;lt;루디 아저씨&amp;gt;, 캔버스에 유화, 1965 &lt;br /&gt;(도판3) 앤디 와홀, &amp;lt;원자폭탄&amp;gt;, 실크스크린, 1965 &lt;br /&gt;(도판4) 게랄트 리히터, &amp;lt;1977년 10월 18일&amp;gt;, 캔버스에 유화(시리즈 부분), 1988 &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주석] &lt;br /&gt;1)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Edition Nathan, Paris, 1990, p. 266. &lt;br /&gt;2) 앞의 책 &lt;br /&gt;3) Joel Candou, Anthropologie de la mémoire, col. que sais-je ? PUF, Paris, 1996, p.58. &lt;br /&gt;4) 벤야민 부크로흐(B.H.D. Buchloh)는 이러한 시도를 도용과 혼합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lt;br /&gt;5) 1980년 미셀 누리드자니는 이들을 &quot;화가-사진사&quot;라고 말하고 있다. &lt;br /&gt;6) Michel Nouridsany, Ils se disent peintres, ils se disent photographes, Muse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Paris, 1980, preface. 80년대 초 당시 누리드자니는 화가-사진가의 분류를 세 부류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해 70년대의 개념미술과 70년대 말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사진의 개념적 역할까지 고려한다면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lt;br /&gt;7) Dominique Baque, La photographie plasticienne, Regard, Paris, 1998, chapitre I &lt;br /&gt;8) 앞의 책 &lt;br /&gt;9) 기억 미술 The memory art (l´art de memoire)은 원래 70년대 개념미술의 한 유형으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개념적 관계에 그 예술적 목적을 두는 미술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은 특히 80년대 이후 사진의 폭넓은 이용과 다양한 개념적 활용으로 인하여 용어의 모호성을 가지고 온다. 일반적으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기억 미술은 도구적 개념으로 이용된 사진적 사실주의 혹은 그것에 의한 설치와 관객의 기억적 환기 사이에서 그 예술적 의도를 가지는 총체적인 미술 형태로 이해된다. &lt;br /&gt;10) 70년대 영국 비평가 Rainbird의 용어 &lt;br /&gt;11) Artstudio, special Andy Warhol, Numero 8 printemp 1988, 2éme édition, Paris, 1990, p. 42. &lt;br /&gt;12) 비평가 Didier Semin이 언급한 용어 &lt;br /&gt;13) 비평가 크리스티앙 베르나(Christian Bernard)는 &quot;모조적 레이디 메이드&quot;라고 언급하지만 보다 개념적 의미에서 &quot;반 레이드 메이드&quot;가 타당하다. &lt;br /&gt;14) 기억의 장르는 철학, 심리학, 정신분석, 인류학, 신경심리학, 생리학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관계되는 기억은 심리학과 철학의 영역에서 국한된다. 왜냐면 현대미술에서 기억적 재현은 그 이미지와 관객의 공동체적인 의식이나 경험과의 관계에서 연상과 기억탐지 혹은 기억적 변질 등의 형이상학적 문제와 관련하기 때문이다, 특징적으로 이런 관계는 심리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고 사회학적이고 또한 존재론(지시론)적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 논하는 기억은 최근 몇 십 년 전부터 발달된 정신생리학이나 신경심리학과 같은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관점에서 본 분석과는 거리를 두고있다. &lt;br /&gt;15) Susan Stewart, On Longing : Narrative of the Miniature, the Gigantic, the souvenir, the Collection,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4, pp. 150-156. &lt;br /&gt;16) Maurice Pradines, Traité de psychologie générale, Tome II, section III, &quot;Les ressorts associatifs de l´activité mentale élémentaire&quot;, PUF, Paris, 1946, p. 578. &lt;br /&gt;17) Henri Bergson, Matiere et Mémoire, PUF 6ème édition, Paris, 1987, p. 158-159. &lt;br /&gt;18) Maurice Halbwachs, 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 édition Albin Michel, Paris, 1994, p. 90. &lt;br /&gt;19) Jean-Claude Filloux, La mémoire, Col. &quot;Que-sais-je ?&quot; PUF, 10듣 ed., Paris, 1969, chapitre I. &lt;br /&gt;20) 앞의 책, chapitre I, p. 74. &lt;br /&gt;21) Maurice Pradines, 앞의 책, section III, p. 597. &lt;br /&gt;22) Jean-Claude Filloux, 앞의 책, p. 59. &lt;br /&gt;23) Gilbert Lascault, Ecrits timides sur le visible, armand Cdlin Editeur, Paris, 1992, p. 225. &lt;br /&gt;24) 기억적 간섭현상은 물리학적 용어로 두 파장에 대한 간섭현상을 심리학에서 차용한 이론이다. 즉 기억에 있어 두 개의 연속적인 사실이 관계적으로 서로 비슷하면 먼저 일어난 사실은 나중에 일어난 사실에 의해 간섭된다. 그러나 두 사실이 아주 다르거나 혹은 아주 같은 경우에는 간섭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유사한 사회적 사건들 앞에서 우리들의 무감각은 바로 이런 기억의 간섭현상에 원인을 두고 있다. &lt;br /&gt;25) Jean-Claude Filloux, 앞의 책, p.77. &lt;br /&gt;26) 앞의 책. &lt;br /&gt;27) Philippe Dubois, 앞의 책, p. 266. &lt;br /&gt;28) Jean-Claude Filloux, 앞의 책, p. 116. &lt;br /&gt;29) 앞의 책. &lt;br /&gt;30) Maurice Halbwachs, 앞의 책, p. 98. &lt;br /&gt;31) 앞의 책. &lt;br /&gt;32) 역사적 기억은 기억의 관점에서 본 역사를 말하는데 사실상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quot;역사&quot;와 동의어이다. 기억은 태어나자마자 역사로 진화하고 역사는 언제나 기억을 근거로 한다. &lt;br /&gt;33) Maurice Halbwachs, 앞의 책, p. 131. &lt;br /&gt;34) Pierre Nora, Entre Mémoire et Histoire dans Les lieux de mémoire, I. La Republique, Gallimard, Paris, 1984. p. XIX. &lt;br /&gt;35) Joel Candau, 앞의 책, p. 57. &lt;br /&gt;36) Roland Barthes, L´obvie et l´obtus, col. &quot;Tel Quel&quot;, édition du Seuil, Paris, 1982, p. 188. &lt;br /&gt;37) John Coplans and Jean Baudrillard, Andy Warhol Silkscreens from the Sixties, Schirmer/Mosel, Paris, 1988, p. 20.&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출처] [본문스크랩] 현대미술에 나타난 흐린 사진영상과 기억적 재현|작성자 지키미&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8 May 2010 03:40: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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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참을 수 &apos;있는&apos; 존재의 가벼움-니체와 노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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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strong&gt;&amp;nbsp;1. 참을 수 &apos;없는&apos; 존재의 가벼움: 21기의 철학적 문제&lt;/strong&gt;&lt;/p&gt;
&lt;p&gt;&quot;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quot;&lt;/p&gt;
&lt;p&gt;조금 길게 인용한 이 말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소설 &amp;l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amp;gt;의 주제이다.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에 관한 니체 사상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무거움과 가벼움의 도착관계를 물고 늘어진다. 만약 무거움과 가벼움의 선택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실존적 과제라고 한다면, 이 소설의 제목과 주제는 바로 우리의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 제목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lt;/p&gt;
&lt;p&gt;그렇다면 &quo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quot;이란 명제에 녹아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감성문화의 출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걸음걸이와 옷매무새에서, 마스카라와 표정연출에서, 인터넷을 통한 관계맺음과 일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감성이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다. 거피의 내용보다는 달콤한 거품과 은은한 향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탈리안 카푸치노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데 이성보다는 감성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감성문화는 결코 심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보편적 중심을 인정하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주변적이고,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가들이 종종 &quot;전체성으로부터 다원성으로의 이행&quot;으로 규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철학의 무대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apos;일상&apos;이 되어버린 것이다.&lt;/p&gt;
&lt;p&gt;밀란 쿤데라의 미덕은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상성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데 있다. 일상은 반복을 의미하고, 반복은 가벼움을 산출한다. 역사적 사건이 아무리 위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반복은 그것을 참을 수 없는 희극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쿤데라가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에 관한 니체의 사상을 끌어들이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quot;우리가 이미 겪었던 것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quot; 쿤데라가 확인하고 있듯이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한 횟수로 반복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영원성에 못박힌 꼴이 될 것이다. 영원회귀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apos;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apos;을 떠맡게 된다.&lt;/p&gt;
&lt;p&gt;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역설을 발견한다. 일상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반복이라고 하였는데, 영원한 회귀는 동시에 순간 순간에 과다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일상의 반복과 영원한 회귀는 다른 것인가? 밀란 쿤데라는 이 물음에 대한 직접적 답은 피한 채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관찰과 성찰을 계속한다. &quot;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quot;고 전제하면서, 쿤데라는 이렇게 묻는다. &quot;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quot;&lt;/p&gt;
&lt;p&gt;&amp;nbsp;&amp;l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amp;gt;은 실로 우연적 순간이 빚어내는 드라마이다. 프라하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토마스가 테레사를 만난 것도 우연이고, 그가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피해 스위스로 갔다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간 것도 우연이고, 뛰어난 의사를 하루아침에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만들어 놓은 글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이고, 아무런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교통사고로 죽게되는 것도 우연이다. 우연의 삶을 살고 떠난 토마스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쿤데라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quot;비문하나... 그리고 그 다음도 또 계속될 것이다. 잊혀지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quot;&lt;/p&gt;
&lt;p&gt;쿤데라가 허무주의적 색채로 그려내고 있는 삶이 꼭 주인공 토마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연으로 점철된 삶은 우리 모두에 의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quo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quot;은 바로 중심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자율적 선택을 강요한다. 주인공 토마스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quot;테레사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quot; 이러한 결정의 순간마다 우연은 필연적으로 작용한다. 그럴 때마다 토마스는 자신의 계산과 합리적 판단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의지하면서 &quot;그래야만 한다!&quot;고 말한다. 우리의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어떤 필연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적 우연이다.&lt;/p&gt;
&lt;p&gt;우리는 삶을 계획하거나 반복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필연적으로 분출된다. 우리는 매순간 &quot;그래야만 한다&quot;는 당위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quot;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quot; 그렇기 때문에 쿤데라는 우리의 삶이 &quot;초벌그림&quot;은커녕 ―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인데 반해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 &quot;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quot;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lt;/p&gt;
&lt;p&gt;첫 번째 리허설과 같은 우리의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 물음이 상당히 허무주의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의미의 부재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의미에 대한 동경마저 상실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quo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quot;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쿤데라는 니체가 20세기와 21세기의 시대정신으로 예견한 허무주의를 반복과 순간, 필연과 우연의 실마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lt;br /&gt;&lt;br /&gt;&lt;strong&gt;&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amp;nbsp;2. 허무주의의 평범화&lt;/strong&gt;&lt;/p&gt;
&lt;p&gt;니체는 한 세기 전에 이미 허무주의를 &quot;모든 손님들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손님&quot;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허무주의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위협은커녕 아무런 문제도 되고 있지 않은 것인가? 허무주의는 대체로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을 의미한다. 지식의 무능력, 행위의 무익, 삶의 무의미는 결코 세속화된 현대사회에서만 인간의 실존조건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현세적 삶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전제조건이기도 하였다. 예컨대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상하다는 인식은 종교적 신앙의 출발점을 이룬다. 절대적 가치를 설정함으로써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종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lt;/p&gt;
&lt;p&gt;그렇다면 &quot;신은 죽었다&quot;는 극단적 명제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삶의 무의미는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진리와 절대적 가치를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quot;삶의 무의미성&quot;을 적극 수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삶과 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는 관점과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허무주의가 &quot;가장 심각한 위기 중의 하나라고 믿으며, 인간의 가장 심오한 자기통찰의 순간이라고 믿는다.&quot; 만약 허무주의가 역사의 ―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 필연적 산물이라면, 우리가 허무주의를 얼마나 또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과제인 것이다.&lt;/p&gt;
&lt;p&gt;현대인들은 더 이상 허무주의를 위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허무주의에 대한 심각한 논의 자체가 희극적이 될 정도로 허무주의의 위험은 진부해졌다. 그것은 &quot;절대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quot;는 인식과 주장이 아무런 문화적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의 다양성으로 표출되고 있는 절대적 가치의 부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quot;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quot;는 인식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만이 유일한 문제로 남는다. 우연으로 점철된 일상의 반복은 어쩌면 허무주의의 도전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lt;/p&gt;
&lt;p&gt;그렇다면 허무주의는 우리에게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절대적 가치의 탈가치화, 즉 세속화는 결과적으로 일상의 절대화를 가져온다. 만약 우리가 추구할 궁극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복되는 현재의 일상과 일상의 가치에 묶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상의 가벼움이 정녕 아름다운 것일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amp;nbsp;3. 니체: 서양 형이상학의 파괴와 수동적 허무주의 &lt;/strong&gt;&lt;/p&gt;
&lt;p&gt;니체는 허무주의를 단순한 문화적 현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역사의 논리로 파악한다. 물론 허무주의는 문화적 현상으로서는 퇴락과 허약함의 징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주의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동적 허무주의는 &quot;절대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quot;는 사실의 인식에 그친다. 물론 수동적 허무주의는 이제까지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가치에 대한 부정의 입장을 취한다. 신의 죽음, 주체의 죽음, 역사의 종언은 모두 수동적 허무주의를 규정하는 명제들이다.&lt;/p&gt;
&lt;p&gt;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수동적 허무주의가 바로 서양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quot;신은 죽었다&quot;는 명제를 &quot;우리가 신을 죽였다&quot;라는 명제로 대체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고 또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절대자인 신을 인식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신은 결국 절대자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죽음의 주된 원인은 신에 관한 특정한 해석이 절대화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니체의 허무주의가 문화적 현상에 관한 단순한 서술을 넘어선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lt;/p&gt;
&lt;p&gt;니체는 무엇 때문에 허무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첫째, 허무주의는 삶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해석과 관련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허무주의는 (1) 기독교처럼 삶을 부정하는 세계해석, (2) 지배적인 해석의 붕괴로 말미암은 의미 있는 해석의 부재, (3)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둘째, 허무주의는 약함, 퇴폐, 병듦과 관련이 있다. 니체는 건강과 병약함을 해석의 힘과 관련시킨다. 건강하다는 것은 삶과 권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해석의 힘을 의미한다면, 약함은 어떤 해석이 더 이상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허무주의는 삶을 포괄하는 해석 과정에서 나타난 기능장애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허무주의는 해석의 마비에서 기인하는 의미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양 허무주의는 플라톤적-기독교적 세계해석이 더 이상 현대인의 삶을 증대시킬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진리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서양의 형이상학적 전제조건은 이제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lt;/p&gt;
&lt;p&gt;능동적 허무주의는 서양 형이상학의 붕괴를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해석의 전제조건으로 포용한다. 절대적 가치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심, 즉 무거움의 토대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중심이 상실된 시대에 살면서 여전히 중심을 동경한다면, 우리의 삶을 수반하는 수많은 우연적, 순간적, 주변적 사건들은 정말 &quot;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quot;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에 반해 삶의 의미는 우리의 해석에 달려 있으며 또 해석은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포용한다면, 필연성이 전혀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삶은 오히려 새로운 창조와 의미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능동적 허무주의는 이처럼 &quot;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quot;을 추구하는 것이다. 니체는 &quot;참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믿음, 어떤 것을 진리로 간주하는 모든 행위가 필연적으로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허무주의의 극단적 형식이다&quot; 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적이고, 주변적이고, 순간적인, 즉 깃털처럼 가벼운 우리의 삶에 의미의 무거움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 /&gt;&lt;strong&gt;&amp;nbsp;4. 니체와 능동적 허무주의: 참을 수 &apos;있는&apos; 존재의 가벼움&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니체에 의하면 인간의 창조 의지가 무력해질 때 비로소 고정된 것,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진리에의 의지가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 진리에의 의지는 무력한 권력의지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특정한 관점에서 보려는 것은 &apos;아마&apos;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 허무주의는 항상 수동적 허무주의와 능동적 허무주의가 겹쳐서 나타난다. 능동적 허무주의는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고 주장할지라도, 서양철학의 맥락에서는 부정 없는 긍정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quot;이제까지 부정된 모든 것에 대해 &apos;예&apos;라고 말하려는 시도&quot;가 능동적 허무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lt;/p&gt;
&lt;p&gt;노자의 허무주의는 부정과 긍정의 이원론은 해체한 이후에 가능한 초월적 허무주의가 아닐까? 노자의 허무주의는 인간의 눈에는 모순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주변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적인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중심, 영원, 필연을 전제할 때에만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quot;있다&quot;는 것(有)은 &quot;없다&quot;는 것(無)을 전제할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노자의 허무주의는 도를 유와 무를 포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름 없는 것이 하늘과 땅의 처음(無名天地之始)라고 말한다. 노자의 허무주의는 결코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무를 존재의 부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유와 무가 갈라지기 이전의 자연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노자에게 자연은 바로 모순 자체이다. &quot;무한히 크기 때문에 안가는 곳이 없고, 어디에나 가기 때문에 멀다&quot;. 서양 형이상학은 가능한 한 모순을 제거하는데 몰두하였다면, 동양 허무주의는 오히려 모순을 모순으로 인정하려고 하였다.&lt;/p&gt;
&lt;p&gt;우리의 삶은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그러나 아무런 중심도 없이 너무 가벼워지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하나의 원리를 향해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과다한 무게에 짓눌려 점차 붕괴될 것이다. 쿤데라는 영원회귀의 사상은 매수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quot;가장 무거운 짐&quot;이라고 규정하면서, 우리의 삶이 가벼운 것은 일회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lt;/p&gt;
&lt;p&gt;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바로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거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주변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우리의 삶을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무(無)에서 출발하여 유(有)로 나아가는 동양 허무주의가 삶의 일회성으로부터 &apos;윤리적&apos; 원리를 도출하는 긍정적 허무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윤리는 항상 참과 거짓, 정당함과 부당함, 정의와 불의를 판단할 수 있는 중심과 가치를 전제한다. 중심과 가치를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윤리적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단 말인가. 영원회귀의 부정은 오히려 도덕적 도착을 야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냉소적으로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밖에 없는 나의 삶에 윤리적 중심을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반복과 영원회귀의 가능성이다. 반복할 수 없는 너의 삶을 다시 한번 살기를 영원히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산다면, 그것은 윤리적 삶이라고 니체는 말한다.&lt;/p&gt;
&lt;p&gt;니체와 노자는 이 지점에서 만난다. 그것은 순간적인 삶이 영원히 반복될 수 있는 삶으로 고양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quot;중심으로부터의 탈선&quot;, 즉 가벼움이 문화적 기호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하면서도 양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상대화하면서 동시에 우연을 견뎌낼 수 있는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요구한다. 그것은 노자가 말하는 것처럼 지지(知止)의 덕성일 수도 있다. &quot;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장구할 것이다.&quot; 이것이 &quot;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quot;라고 묻는 쿤데라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다. &quot;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quot;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출발하는 니체와 노자는 우리에게 참을 수 &apos;있는&apos; 존재의 가벼움을 요구하는 허무주의의 철학자들이다.&lt;/p&gt;
&lt;p&gt;&lt;br /&gt;[출처] 참을수 &apos;있는&apos; 존재의 가벼움-니체와 노자|작성자 지키미&lt;/p&gt;
&lt;p&gt;제목: 참을 수 &apos;있는&apos; 존재의 가벼움-니체와 노자&lt;br /&gt;연사: 이진우(계명대 철학과)&lt;br /&gt;일 시: 2000년 3월 16일 오후 5시&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8 May 2010 03:20: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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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잔 손택, 우울한 오브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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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strong&gt;초현실주의와 사진의 관계, 초현실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 &lt;br /&gt;손택은 잘라 말한다. &quot;초현실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불평 같은 것이다.&quot; 초현실주의자들은 넝마주의자, 초현실주의는 세계를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기괴한 것, 기묘한것, 탈역사성을 지닌 사물을 수집할 뿐이다. &lt;/strong&gt;&lt;br /&gt;&amp;nbsp;&lt;br /&gt;사진은 가장 손쉬운 모방예술이다. 회화는 숙련이 필요하다. 화가들은 삶과 예술, 사건과 대상, 비의도적인 것과 의도적인 것, 아마추어와 전문가, 천한 것과 고상한 것, 행운의 실수와 숙련 기술 사이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려고 했던 초현실주의와 거리를 뒀다. 초현실주의 회화는 왠지 모르게 내용이 부적절한 꿈의 세계와 비슷하다. 초현실주의가 관여한 예술에는 산문, 연극, 아상블라주, 사진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사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왜 초현실주의는 사진을 선호했는가?&lt;/strong&gt;&lt;/p&gt;
&lt;p&gt;사진은 이 세계의 복제물, 그러니까 자연의 시각(눈의 시선)을 통해서 인식할 때보다 훨씬 제한적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극적인 현실, 즉 2등급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숙할 수록, 의도가 덜 개입될수록 더 솔직하게 보인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초현실적인 것을 보편적인 그 무엇으로, 즉 일종의 심리학적 문제로 여기는 잘못을 저질렀다. 정작 초현실적인 것은 한정된 계급의 지극히 지엽적이고 인종적이며 낡아빠진 취향임에 불과했음이 판명됐는데도 말이다. 초현실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불평 같은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정치학이 되기를 갈망하는 미학으로서,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쪽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을 못 받는 비공식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사진 작가들은 굉장히 훌륭한 양심을 지닌 채 폭력의 현장에서 억압받는 자 곁을 맴돌았다. 당대 사회의 불행 자체가 아쉬울 것이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 에게 어서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즉 가장 부드러운 약탈을 행하라고, 그래서 은폐된 현실(즉,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현실)을 기록하라고 재촉해댔던 것이다.&amp;nbsp;호기심, 초연함, 직업 정신으로 이곳저곳에서 타인의 현실을 주지하는 사진작가는 자신이 계급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행동하고, 보편적인 시각을 지닌 듯이 활동한다. 사실, 사진은 애초부터 중간계급에 속한 만보자의 눈을 확장시켜주는 도구였다. 도시의 지옥을 한가로이 관찰하는 외로운 보행자, 즉 도시가 지극히 육감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이 관음적 방랑자가 도구(카메라)를 쥐게 되면 곧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만보자는 도시의 겉모습보다는 도시의 어둡고 흉한 구석, 도시에서 방치된 사람들, 즉 부르주아적 삶의 허울 뒤에 감추어진 현실에 매력을 느낀다. 사진은 사회의 기록이라고 여겨졌기에 열정적이면서도 관대하고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무심한 중간계급의 기본 태도, 이른바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전문적으로 빈민을 찍었던 작가들은 대부분 훨씬 더 다양한 이국적인 현실을 찾아 나서곤 했다. 가난은 더 이상 부보다 초현실적이지 않다. 누더기를 걸쳤다고 해서, 야회복을 입거나 원시인처럼 발가벗었다고 해서 초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초현실적이라는 것은 사진이 제시하고 있는 거리감, 예컨대 사회적이거나 시간적인 거리감이다. &lt;br /&gt;&amp;nbsp;&lt;br /&gt;*&lt;br /&gt;이 세상에는 과학자처럼 행동하는 사진작가도 있고, 도덕주의자처럼 행동하는 사진작가도 있다. 과학자는 세계를 분류하고 도덕주의자는 역경에 집중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우구스트 잔더가 독일민족을 사진으로 분류하려던 계획은 과학을 위해 사진을 활용한 예이다. 잔더는 뭔가 비밀을 캐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전형을 관찰하는 데 전력했다. 사진작가를 냉정한 인구조사원처럼 여긴 그의 태도는 물론, 쓸데 없는 것까지 모조리 기록해 설명하고 비판하려 했던 그의 완벽함까지 반사회적이었으리라. 노동자와 낙오자를 찍을 때는 배경화면이 필요했다. 중간, 상류 계급은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닐 수 없다는 듯이 취급됐던 것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찍으려고 했다는 것은 그가 모든 사람과 거리를 유지했다는 뜻이다. 그는 순진하기보다는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피사체를 대했던 것이다. 그의 사진은 워커 에반스,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사진과는 다르다. 미국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만 대상으로 삼았고, 가난한 사람이 실제로 가난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고귀하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필요가 있었던 중간계급의 관점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잔더의 사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위엄을 잃지 않는다.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똑같이 차분하게 바라봤기에, 사진 속의 가난한 사람들은 존엄성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lt;br /&gt;&amp;nbsp;&lt;br /&gt;*&lt;br /&gt;&amp;nbsp;유럽의 사진은 관념에 좌우된다. 흔히 사진은 중립성을 높이 평가하거나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변화의 필연성 뿐만 아니라 현실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흔히 당파성이 강한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존중해야 하는지 보여주려고 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직시하고 개탄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려고 사진을 찍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역사와 견고한 관계를 맺는다기보다는 역사를 요약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실에 관여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훨씬 희망적인 동시에, 훨씬 약탈적인 면모를 띠기도 한다. 미국에서 사진이 의식을 일깨워주는데 쓰인다는 점은 희망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가장 도덕주의적인 다큐멘타리 사진도 어떤 면에서 오만하게 보일 수 있다. 사진의 약탈적인 면모는 사진이 관광과 맺는 동맹관계에서 잘 볼 수 있다. 대륙횡단 철도의 완공으로 서부 시대가 열리자, 이 지역은 카메라를 통해 식민화되었다. 사진은 약탈하면서도 보존하고 고발하면서도 신성시한다. 사진은 성마르게 현실을 대하고 기계를 사용한 활동을 즐기는 미국인들의 특성을 보여준다. 가령 사라져가는 것을 사진으로 찍음으로써 그 사라짐을 재촉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현실이 너무나 불가사의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대상을 분류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현실에 접근하려든다는 것을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한다. 간접적으로 일종의 속임수로 현실에 다가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현실을 기이하게 쪼개놓은 단면을 일종의 제유법으로 전체인 양 여길 수 있다면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무작위로 선입견 없이 작업해야 한다는 미국 사진작가들의 종교적 주장에는 슬픈 상실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진을 통해서 상실감을 드러내려면 신비함, 죽음, 무상함 등을 상징하는 익숙한 도상을 꾸준히 보여줘야 효과적이다. 사진은 과거에 대한 낭만주의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찰나적 낭만주의를 제공해준다.&lt;br /&gt;&amp;nbsp;&lt;br /&gt;* &lt;br /&gt;과거를 소모품으로 바꿔버리는 사진은 일종의 소모품이다. 사진을 수집한다는 것은 초현실주의자처럼 현실을 몽타주하고 역사를 생략해버린다는 것이다. 진정한 모더니즘은 엄격함보다 불필요한 것들이 자아내는 충만함에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잡동사니와 부스러기를 활용해 임시변통 격으로 자의식을 만들어 놓은 사회가 부여해 준 해방감을 극구 찬양하면서, 미국은 이제 발견된 오브제가 넘쳐나는 초현실주의적인 나라가 된 것이다. 물론 사진은 인공물이다. 그렇지만 사진-유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는 사진이 발견된 오브제, 즉 무심결에 얻은 이 세계의 단면처럼 보이기 때문에 호소력을 갖는다. 따라서 사진은 예술로서의 권위와 현실이 보여주는 마술을 모두 이용한다. 사진은 한 웅큼의 환상이자 한 뭉치의 정보이다. 역사를 헐값에 사들이려 한 이 초현실주의적 방법은 겉으로는 탐욕과 오만함을, 속으로는 우울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누군가가 몇 살 때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은 자신의 죽음을 향해 가는 생명의 천진난함과 연약함을 보여준다. 지난 과거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의 파토스를 일반화해, 도덕적 분별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역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오래된 사진을 새로운 맥락에서 복권시키는 것이 오늘날 중요한 출판산업이 되었다. 사진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아늑하고도 추상적인 과거가 되어버리기에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게 된다. 관점을 갖지 말 것-즉, 무심하게 아무런 감정없이 피사체를 바라볼 것, 바로 이것이 자유주의적 동정심의 특징이다. 초현실주의는 기괴한 것을 보편화해 거기에서 뉘앙스(그리고 매력)을 발견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사진촬영은 초현실주의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데 적합하다. 초현실주의는 반동적인 얘기만을 들려준다. 역사에서 진기한 농담, 죽음의 여행 같은 것만 찾아내는 것이다. &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인용은 초현실주의적 취향이다. 벤야민도 인용구 수집을 시도했었다. 그렇다고 벤야민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거나 현실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현실 자체가 언제고 한번은 경솔해지거나 파괴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수집가의 직무를 요청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채석장처럼 변해 가는 이 세계에서 수집가는 폐품 회수라는 경건한 일에 참여하게 된다. 역사가 빠르게 변해 가는 탓에 과거는 점점 더 초현실주의적인 피사체가 되어간다. 그리고 벤야민의 말처럼,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됐다. &quot;낡은 세계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것을 얻으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 수집가가 드러내는 가장 깊은 욕망이다.&quot;&lt;br /&gt;&lt;br /&gt;인용구로만 이뤄진 비평문, 그래서 무심코 일어날지 모를 감정이입까지 배제된 비평문을 쓰는 것. 감정이입을 거부하기, 메시지의 전달을 경멸하기, 자기 모습 감추기-이것은 전문 사진작가가 추구해왔던 전략이다. 사진작가도 수집가처럼 과거를 향한 열정으로 움직인다. 사진작가는 (수집가처럼) 비체계적으로, 정확히 말해서 체계 자체를 무시하고 과거에 접근한다. 초현실주의자와 비슷한 넝마주이는 예민한 감수성으로 다른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긴 것, 흥미롭지 않고 가치 있지도 않다고 생각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폐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18세기 문인의 취향. 사진작가는 현실을 과거로 뒤바꿔버리는 일에 연루되며, 사진 자체도 즉석에서 만들어진 골동품이 될 수밖에 없다. 사진은 낭만주의 건축 양식이 지닌 특징의 현대적 등가물, 즉 인공의 폐허를 만들어낸다. 우발적인 편린들을 일정하게 합해 놓은 것-이 얼마나 매혹적이고 통렬하게 이 세계를 환원적으로 대하는 방식이란 말인가.&amp;nbsp; 한때 현실에 대한 불만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 세계를 재생산하려는 갈망을 통해서 현실을 대한 불만이 강렬하게 끊임없이 그대로 표출된다. 사진에 찍힌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스틸사진이 영화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듯이, 현실세계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사진은 단 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품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세계와 관계를 맺게 만들면서도 이 세계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게 만들기에 우리를 매혹하면서 사로잡는다.&amp;nbsp; 놀라울 만큼 발빠르게 움직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진은 우리가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경험을 다 누리고 있는듯한 거짓되고 기만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며 관람객들을 홀리고 있다. 문화의 급진주의자, 더 나아가 혁명가가 되고 싶어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맑스주의자가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선의의 오해에 종종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미학은 지나칠 만큼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었기에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도덕주의와 양립할 수 없었다. 맑스는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한다는 이유로 철학을 질책했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해온 사진작가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조차고 공허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보다 세계를 수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출 처] &lt;a title=&quot;[본문스크랩] 수잔 손택 &amp;lt;우울한 오브제&amp;gt;&quot; href=&quot;http://blog.naver.com/yhro95/10023897707&quot;&gt;[본문스크랩] 수잔 손택 &amp;lt;우울한 오브제&amp;gt;&lt;/a&gt;|작성자 지키미&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Fri, 28 May 2010 03:09: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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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러티브란?(nar•ra•tiv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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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nar•ra•tive&lt;br /&gt;특히 소설 속 사건들에 대한) 묘사&amp;nbsp;&amp;nbsp; 2. 서술 (기법)&lt;/p&gt;
&lt;p&gt;내러티브란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을 말한다. 스토리(story)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내러티브는 언어로 기술이 불가능한 &apos;모든 종류의 서사성 전부를 포함하는 이야기&apos;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런 내러티브는 작품의 색깔을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lt;br /&gt;&lt;br /&gt;내러티브는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을 말한다. 스토리(story)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내러티브는 언어로 기술이 불가능한 &apos;모든 종류의 서사성 전부를 포함하는 이야기&apos;의 개념으로 이해된다.&lt;br /&gt;&lt;br /&gt;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사건이 있는 일련의 진행상황을 기술한 대표적인 매체로서의 소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워지게 될 정도로 발전한 각종 매체의 표현 양식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apos;이야기&apos;는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자언어로 표현되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 &lt;br /&gt;&lt;br /&gt;대표적으로,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라 함을 살펴보면 매우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문자기호는 물론, 영상의 미장센, 명도나 색채, 번짐과 흐림과 겹쳐짐으로 전하는 영화적 관습에 따른 영상언어로서의 기호가 있으며, 음악과 음향이 전하는 기호 또한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사건의 집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apos;내러티브&apos;라고 표현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결론적으로 - 영화, 만화, 음악, 춤 등 모든 수단의 표현방식에서 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 전달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호 - 언어, 문자, 음향, 동작 등이 보편적, 관습적, 특정적으로 기호화된 모든 종류의 전달, 표현 양식 - 와 관계 없이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 &apos;내러티브&apos; 라는 용어다.&lt;br /&gt;from naver 지식인&lt;br /&gt;&lt;br /&gt;흔히 내러티브란 하나 또는 일련의 사건을 글이나 말의 형태로 전달하는것, 또는 그러한 글이나 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전달 대상과 전달 방식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전달대상인 사건은 이야기(stroy), 전달방식은 담론(discourse)을 가리킨다. 이야기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사건•인물•환경 등을 포함하며, 담론은 이야기를 말하고 표현하거나 제시하고 내레이션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즉 내러티브는 하나의 중심주제를 둘러싸고 일정한 구성형식(시작, 전개, 반전, 결말)을 갖춘 일련의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야기는 시간적 존재로서의 인견 경험을 다루고 특정한 화자를 내세우고 특정한 인물과 사건을 시공간 속에서 엮어가는 것이다. 이때 인간경험은 하나의 중심주제 아래 일정한 구성 형식으로 구조화된다. &lt;br /&gt;from &apos;역사교육에서 내러티브의 활용&apos; 발췌&lt;br /&gt;&lt;br /&gt;포토저널리즘을 작업하는 사진가가 역사적 현장 속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을 기록할 수 밖에 없는 사진의 당연한 본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타 각종 제약을 스스로 극복한 사진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lt;br /&gt;&lt;br /&gt;bigman님은 얼마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장례 현장을 설득력을 갖춘 다양한 사진적 시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lt;br /&gt;즉 클로즈업과 와이드샷, 로우앵글과 하이앵글, 정지된 동작과 흔들린 효과 등 촬영기법의 다이너믹함이, 그저 화려한 기교에 그치지 않고, 각 사진의 네러티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lt;br /&gt;&lt;br /&gt;또한 포토저널리즘 촬영에서 이러한 촬영기법의 다양한 변화에 유의해야 하는 것은, 결국 포토저널리즘이란 것이, 지면과 텍스트의 효과적인 레이아웃 편집을 거쳐, News Paper나 Magazine으로 전달된다는 촬영 후과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포스팅에는 별도의 텍스트가 없지만 텍스트가 있다 하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 굳이 텍스트를 꼼꼼히 읽지 않고도 사진이 제공하는 시선의 흐름만으로 사건의 기승전결을 어느정도 확보했다는 점도 중요한데, 이것은 촬영 자체가 시간의 순차적 흐름에 의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bigman님의 의식과 무의식을 배회하며 끊임없이 생성된(becoming) &apos;결정적 순간들&apos;의 성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lt;br /&gt;&lt;br /&gt;저는 개인적으로 사진 속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고정된 채, 무언가 알듯말듯한 것들을 지시하는 &apos;손(hands)&apos;의 의미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lt;br /&gt;흰 장갑을 낀 손, 위패를 드는 자세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아진 손, 큰 영정을 드느라 벌려진 손, 무거운 관을 어깨 위로 짊어 지기 위해 들어 올려진 손, 신도들이 한결같이 합장한 손.... 이런 손들의 형태는 알게 모르게 법정께서 생전에 설파하신 &apos;소유와 무소유&apos;의 관념으로부터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두 주목을 꽉 쥔 채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떠날 때에는 잡았던 줄을 놓듯 힘없이 양 손을 벌리고 간다는 사실과 &quot;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quot;라는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도 함께 뇌리를 스칩니다.&lt;br /&gt;&lt;br /&gt;1. 내러티브의 정의&lt;br /&gt;&lt;br /&gt;내러티브 는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lt;br /&gt;연결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는 오직 문자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이 언 술이 영화에서는 이&lt;br /&gt;미지, 대사, 문자, 음향 그리고 음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는 이야&lt;br /&gt;기를 조직하기 위하여 채택되는 전략, 약호와 관습을 (미장센과 조명 등도 포함해) 지칭한&lt;br /&gt;다. 흔히 스토리 텔링(storytelling)과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실제 이보다 더 &lt;br /&gt;큰 범위를 의미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2. 내러티브의 기능&lt;br /&gt;&lt;br /&gt;어렸을 때 우리는 동화와 신화를 배우고, 커가면서 단편적 이야기, 소설, 역사, 그리고 전기 등을 읽는다. 유대교나 기독교적 전통은 성경과 율법(내러티브 의 방대한 집합)을 통해서, 그리고 과학적인 발견은 때로 실험자의 시도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로 제시된다. 또한 우리 주변의 여러 문화 형식들 (소설, 연극, 신화, 회화 등) 도 이러한 이야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잠을 잘 때도 우리는 작 내러티브의 형태로 꿈을 꾸며, 또한 이야기 형태로 그 꿈들을 기억해낸다. 내러티브는 이처럼 우리들의 삶 자체만큼이나 자연스럽다.&lt;br /&gt;우리가 ` 영화를 보러 간다 ` 고 말할 경우, 대부분 그것은 한편의 내러티브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내러티브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조직하고자 하는 전략을`현실` 세계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영화를 의미하며, 관객은 영화를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신호를 끄집어내고 정보를 상기하고 무엇이 다음에 나올 것인가 기대하면서, 결국에는 영화 형식의 창조에 참여한다.&lt;br /&gt;영화는 호기심, 서스펜스, 그리고 놀라움을 유발시킴으로서 특정한 기대를 형성한다. 관객은 또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특유한 예감을 전개시키고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거나 속이는 임무를 맡는다. 결말은 또한 관객에게 가능한 한 이전의 사건들을 재검토하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보도록 신호함으로써 관객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lt;br /&gt;출처 : http://search.empas.com/search/ok_pvw.html?pt=0&amp;amp;dd=1&amp;amp;ft=2&amp;amp;i=2366556&amp;amp;sn=1233558002&amp;amp;q2=%B3%D7%B7%AF%C6%BC%BA%EA&amp;amp;dv=a&amp;amp;w=664d4d4e4f5051&amp;amp;dw=51&amp;amp;vl=A&amp;amp;vn=5&amp;amp;q=%B3%D7%B7%AF%C6%BC%BA%EA&amp;amp;ou=k.daum.net%2Fqna%2Fview.html%3Fqid%3D0E3PO&lt;br /&gt;&amp;nbsp;&lt;br /&gt;내러티브는 영화의 형식체계 입니다..&lt;br /&gt;&lt;br /&gt;영화의 형식체계는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로 &lt;br /&gt;나눌 수 있습니다.&lt;br /&gt;내러티브란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며 그래서 인간들이 &lt;br /&gt;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이 &lt;br /&gt;내러티브 체계란 보편화된 체계이며 이것을 토대로 어떤 의사&lt;br /&gt;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내러티브&lt;br /&gt;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apos;스토리&apos;인 셈입니다. 좀더 정확하&lt;br /&gt;게 말하면 시간과 공간속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가 있는 사건&lt;br /&gt;들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lt;br /&gt;&lt;br /&gt;이와 달리 비 서사적인 구조로 서술되는 형식을 비내러티브라&lt;br /&gt;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다큐멘터리나 전위영화 등을 말할 수 &lt;br /&gt;있을 것입니다.&lt;br /&gt;출처 : http://ksea.paran.com/sknow/queview.php?que=372292&lt;br /&gt;&amp;nbsp;&lt;br /&gt;(...)내러티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와 언급이 있지만, 내러티브 비평은 일반 문학이론에서는 거론되지 않고, 실제로는 성서 읽기에 적용되는 특이한 방법론이다. 내러티브 비평은 주로 성서의 내러티브 본문에 대한 문학 비평적 연구를 지시한다. 내러티브 본문이란 사건 중심으로 기술된 ‘담론 형식의 이야기’(story-as-discoursed)를 말하는 것으로 흔히 ‘내러티브’라 부르는 장르를 가리킨다. ‘내러티브’(narrative)란 본문의 내용인 이야기(story: what)와 그것이 전달되는 담론(discourse: how)이 합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러티브 비평은 먼저 내러티브의 내용(what)인 사건과 인물과 배경과 그것들의 상호 작용인 플롯(plot)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과 이 이야기가 저자에 의해서 어떻게(how) 독자들에게 전달([re]telling) 되었는지에 대한 내러티브의 수사학을 다루는 작업을 포함한다. 그래서 내러티브 비평은 신비평, 구조주의, 수사학 비평, 그리고 독자반응비평을 선택적으로 포함하면서도, 본문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제한점임을 강조한다. &lt;br /&gt;&amp;nbsp;&lt;br /&gt;출처 : http://blog.naver.com/nadiajun?Redirect=Log&amp;amp;logNo=120040519357&lt;br /&gt;&amp;nbsp;&lt;br /&gt;또 네이버 오픈 백과에서는&lt;br /&gt;&amp;nbsp;&lt;br /&gt;내러티브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lt;br /&gt;-내러티브(narrative /nǽrtiv/ n.)&lt;br /&gt;&lt;br /&gt;- 1.이야기(story) &lt;br /&gt;&lt;br /&gt;- 2.이야기체의 문학 &lt;br /&gt;&lt;br /&gt;- 3.설화, 화술 &lt;br /&gt;&lt;br /&gt;- 4.이야기를 표현하는, 설명적인 &lt;br /&gt;&lt;br /&gt;&lt;br /&gt;&lt;br /&gt;상기에서 지금의 매체에서 말해지는 내러티브란 4항에 가깝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내러티브는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을 말한다. 스토리(story)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내러티브는 언어로 기술이 불가능한 &apos;모든 종류의 서사성 전부를 포함하는 이야기&apos;의 개념으로 이해된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사건이 있는 일련의 진행상황을 기술한 대표적인 매체로서의 소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워지게 될 정도로 발전한 각종 매체의 표현 양식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apos;이야기&apos;는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자언어로 표현되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 &lt;br /&gt;&lt;br /&gt;&lt;br /&gt;&lt;br /&gt;대표적으로,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라 함을 살펴보면 매우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문자기호는 물론, 영상의 미장센, 명도나 색채, 번짐과 흐림과 겹쳐짐으로 전하는 영화적 관습에 따른 영상언어로서의 기호가 있으며, 음악과 음향이 전하는 기호 또한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사건의 집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apos;내러티브&apos;라고 표현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결론적으로 - 영화, 만화, 음악, 춤 등 모든 수단의 표현방식에서 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 전달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호 - 언어, 문자, 음향, 동작 등이 보편적, 관습적, 특정적으로 기호화된 모든 종류의 전달, 표현 양식 - 와 관계 없이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 &apos;내러티브&apos; 라는 용어다&lt;br /&gt;라고 나옵니다.&lt;br /&gt;출처: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amp;amp;dir_id=110104&amp;amp;eid=2Dpuee60Nq9GzKrpptIZ6fZ0M6zokylf&amp;amp;qb=s7u3r8a8uuo=&lt;br /&gt;내러티브는 일련의 사건이 가지는 서사성을 말한다. 스토리(story)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내러티브는 언어로 기술이 불가능한 &apos;모든 종류의 서사성 전부를 포함하는 이야기&apos;의 개념으로 이해된다.&lt;br /&gt;&lt;br /&gt;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고 사건이 있는 일련의 진행상황을 기술한 대표적인 매체로서의 소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워지게 될 정도로 발전한 각종 매체의 표현 양식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apos;이야기&apos;는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자언어로 표현되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lt;br /&gt;&lt;br /&gt;대표적으로,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라 함을 살펴보면 매우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문자기호는 물론, 영상의 미장센, 명도나 색채, 번짐과 흐림과 겹쳐짐으로 전하는 영화적 관습에 따른 영상언어로서의 기호가 있으며, 음악과 음향이 전하는 기호 또한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사건의 집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apos;내러티브&apos;라고 표현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결론적으로 - 영화, 만화, 음악, 춤 등 모든 수단의 표현방식에서 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 전달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호 - 언어, 문자, 음향, 동작 등이 보편적, 관습적, 특정적으로 기호화된 모든 종류의 전달, 표현 양식 - 와 관계 없이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 &apos;내러티브&apos; 라는 용어다.&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6 May 2010 04:01: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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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성주의 [構成主義, constructivis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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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구성파라고도 한다. 일체의 재현(再現) 묘사적(描寫的) 요소를 거부하고, 순수 형태의 구성(構成)을 취지로 하며, 따라서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서는 기하학적 추상(幾何學的抽象)의 방향을 취한다. 금속이나 유리, 그 밖의 근대 공업적 신재료를 과감히 받아들여 자유롭게 쓰지만, 자기표출(自己表出)로서의 예술이기보다, 공간구성 또는 환경형성을 지향했다. 필연적으로 기능성이 중시되고, 기계주의적 내지는 역학적(力學的)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재래의 회화나 조각의 개념을 풀어 헤치고, 새로운 공업시대에 적응하는 조형의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가 뚜렷했다. &lt;br /&gt;&lt;br /&gt;구성주의는 개성보다는 법칙성을 우위에 둔 라리오노프의 레요니슴(Rayonism: 光線主義)선언(1912)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리오노프는 대각선이 교차되는 것뿐인 작품을 발표하고 이 주의를 표명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K.S.말레비치, 타틀린, 시인인 V.V.마야콥스키가 있어서, 신시대의 예술창조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레요니슴에 이어 큐비즘을 급속히 밀고 나가던 말레비치는 1913년 흰 바탕에 검은 원 •정사각형 •＋자형만 그린 작품을 발표하고, 거의 그 진로를 결정하였다. 마야콥스키의 협력을 얻어, 말레비치는 1915년에 절대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라고 할 쉬프레마티슴(suprématisme)을 표명하였는데, 이것이 그 후의 구성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이 무렵에 타틀린은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나무나 금속 등을 사용해서, 비재현적인 릴리프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풍토 속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으로부터 A.페브스너 •가보 •리시츠키 •칸딘스키 등이 귀국하고, 또한 A.M.롯첸코도 가담하여, 러시아 혁명이란 사회의 변혁기와 호응하면서 구성주의 운동이 결속된다. &lt;br /&gt;&lt;br /&gt;1918년에는 칸딘스키의 구상으로 모스크바에 고등기예공방(高等技藝工房)이 설립되어 구성주의의 하나의 거점이 되었다. 1919년에 타틀린이 설계한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은 나선형의 ‘구성’의 전형이 되었다. 1920년에 페브스너와 가보는 ‘리얼리즘선언’을 발표하고 “생명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의 두 가지 기본적 요소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괴(量塊)는 유일한 공간적 요소는 아니다. 시간의 진정한 성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역학적인 다이내믹한 요소가 쓰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해에 구성주의 대전람회가 조직되었다.이렇게 페브스너와 가보는 구성주의를 기반으로 신시대의 창조를 선언하지만, 순수조형을 지향하는 이들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타틀린이나 롯첸코는 예술의 유용성을 강조해서 구성주의 내부에 대립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lt;br /&gt;&lt;br /&gt;1922년 알렉세이 간이 구성주의를 선언하고 예술의 완전 폐기를 주창할 무렵, 페브스너 •가보 •리시츠키 •칸딘스키 등이 잇달아 유럽으로 망명해서 구성주의 이념을 유럽과 미국 등지에 퍼뜨렸다. 페브스너 형제는 독일에서 ‘바우하우스’에 협력하여 이 운동은 유럽에 급속히 퍼졌다. 페브스너는 뒤에 파리에 머물며 ‘추상 •창조(Abstraction-Création)’그룹의 창립에 참가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 추상예술의 종합단체 ‘살롱 데 레일리테 누벨’을 창립하였다. 가보는 파리,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작을 계속하였다. 페브스너는 주로 금속으로, 동생 가보는 유리나 플라스틱 등의 투명물질로 각각 다이내믹한 작품을 발표해서, 오늘의 구성주의를 대표하고 있다. &lt;br /&gt;&lt;br /&gt;네덜란드의 ‘데 스테일(De Stijl)’이나 ‘바우하우스’에 끼친 영향도 컸고, 파리에서 설립된 ‘추상 •창조’의 그룹도 구성주의의 계보에 속한다. 공간구성 •환경형성이라고 하는 구성주의 본래의 정신은 근대 건축이나 근대 디자인의 성립에 커다란 시사를 부여한 외에도 다극화(多極化)했다고는 하나, 오늘날의 순수 형태 추구의 모든 장면에서, 늘 방법이나 이념을 계속 제시해 와서, 러시아 구성주의라고 하는 당초의 운동을 초월한 넓은 의미의 구성주의로 그 의의가 확대되고 있다.&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6 May 2010 03:55: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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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더니즘과 사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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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모더니즘과 사진 (1) - Alfred Stieglitz&lt;br /&gt;&lt;br /&gt;I. 서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철학자들은 모더니즘을 계몽주의 및 과학의 발달과 연관시킨다. 패미니스트들은 모더니즘하면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 제도를 떠올린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더니즘을 개인주의와 연관시키기도 하며 엘리트주의와 관련시키기도 한다. 또 다른 이론으로 19세기 부르주아 문화와 함께 진행된 예술 문화적 양상의 부정적 측면을 상기하기도 한다.&lt;br /&gt;&amp;nbsp; 현대사진의 역사적 성격을 살펴보면, 사진은 현대라는 것이 유럽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0세기 중반에 태어났다. 어떤 이는 데카르트가 &quot;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quot;라고 말한 계몽주의 이후로, 어떤 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로 잡는 이도 있지만, 여기서 현대란 산업의 비약적인 발달로 말미암아 특히 도시지역에서 인간의 지각적 경험이 급격히 변하는 시점을 말한다.&lt;br /&gt;&amp;nbsp; 모더니즘은 칼로 금을 그은 듯 선명하게 구분되어지지 않는 것은 봉건에서 탈현대까지의 시기들의 혼합에 있다. 19세기 루소는 현대성을 &quot; 충격적일 정도로 상치되어 있는 어지러운 체험들, 그리고 도시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생겨나는 모호하고도 새로운 감각의 소용돌이&quot;라고 말했다. 보들레르는 &quot;현대성은 화려한 구경거리만도 아니고, 혹은 천박한 현실만도 아니다. 그것은 양자 모두를 말한다&quot;고 현대성의 천박함을 가차 없이 공격함으로써 그 모호함을 부각시킨다.&lt;br /&gt;&amp;nbsp; 독일이나 미국에서 시대가 혼란스럽고 국가적 . 문화적 . 개인적인 아이덴티티가 극도로 불안하던 시대에 사진이 대규모로 동원되어 대중들에게 큰 파급효과를 가져다준다. 현대 독일의 역사에서 나치 집권 직전에 단명했던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에는 온갖 종류의 실험적 예술이 성행했고, 사진의 객관적 기록성이 대중에게 큰 신뢰를 얻었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lt;br /&gt;&amp;nbsp;사진에서 현대성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세기가 바뀌는 과정에서 이전의 사진과는 구분되어지는 경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시라는 개념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도시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이 등장했다. 스티글리츠의 경우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도시의 현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조합해서 도시의 전체상을 제시하려했다고 볼 수 있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amp;nbsp;&lt;br /&gt;II. 본론&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 Alfred Stieglitz&lt;/p&gt;
&lt;p&gt;스티글리츠는 1881년 기술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갔다. 베를린 기술전문대에 있는 동안 가제 진열장에서 카메라를 보고 이를 구입했다.(이 카메라는 훗날의 회상대로, 마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스티글리츠는 사진술과정에 등록했다.&lt;br /&gt;&amp;nbsp;1887년 이탈리아 여행중 찍은 사진을 런던의 [아마추어 포토그래퍼] 잡지의 사진 콘테스트에서 로 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심사위원은 피터 핸리 애머슨 단 한명이었다. 이 사진은 강렬하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효과내지 않고 직접적이고 정직하게 찍혔다. 또한 구성상의 형식적 틀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애머슨은 스티글리츠에게 출품작 가운데 유일하게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사진이라고 했다.&lt;br /&gt;&amp;nbsp;이 시절 18 x 24cm &apos;포겔-오베르네터 실버-로진 건판 Vogel-Obernetter Silver-Rosin Dry plates 25 다스를 소모했다고 한다. 이 감광판은 상업적으로 제조된 최초의 정색성 건판들이었다. 이 건판의 정색성적 효과 덕분에, 하늘의 강한 푸른빛을 적당히 흡수하도록 렌즈 위에 노란 필터를 씌움으로써, 스티글리츠는 양감이 넘치는 장관을 이루는 구름이 떠 있는 알프스 풍경을 찍을 수 있었다.&lt;br /&gt;&amp;nbsp;1890년 뉴욕에 돌아오면서 아마추어 사진가 협회(Society for Amateur Photographer)에 가입했으며, 그 협회의 기관지 The American Amateur Photographer의 편집자가 되었다. 친구에게서 빌린 4 x 5 inch 카메라로 1893년 2월 22일 &quot;오번가의 겨울 Winter on Fifth Avenue&quot; 촬영했다. 그는 확대 인화를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고 했으며, 음화 이미지의 절반만을 인화했다.&lt;br /&gt;&amp;nbsp;1896년 아마추어 사진가회와 뉴욕 카메라 클럽을 합쳐 &quot;뉴욕 카메라 클럽&quot;으로 조직을 개편하였으며, 부회장직을 맡았다. 출판위원회 의장으로서 Camera Notes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 클럽에 관해 쓴 글 속에서 시어도어 드라이저 Theodore Dreiser는 스티글리츠가 세가지 목표를 지향했다고 적고 있다. &quot;첫째 미국에서의 회화적 사진의 기준을 향상시킬 것. 둘째 범국가적 연례회를 개최하는 것. 셋째 국립 사진 아카데미를 창설하는 것.&quot; 출판위원장으로서 스티글리츠는 Camera Notes를 국제적 계간지로 탈바꿈 시켰으며, 기사 및 전시회에 관한 비평들이 수록되었다.&lt;br /&gt;&amp;nbsp;1902년 3월 Edward Steichen, Alvin Langdon Coburn, Gertrude Kasebier, Clarence H. White등과 함께 &apos;회화적 사진의 틀에 박힌 전통적인 사진 개념에 대한 이의제기&apos; [포토시세션 그룹 Photo-Secession Group 제1회전의 표제]를 하고, 이미 궂어져 있던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할 것을 목표로 한 사진가 집단을 결성해서, 사진이 새로운 표현수단으로서 인정받고 다른 예술형태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amp;nbsp; 1903년 카메라 워크 Camera Work를 발간한다.&lt;br /&gt;&amp;nbsp;카메라 워크의 창간에는 회화적 사진술을 인정받게 하고자 하는 스티글리츠의 결의를 &apos;카메라 클럽&apos; 회원 모두가 공감하지 않았고, 사진도판의 선정에서 스티글리츠가 독단적이었고, 다수의 회원들은 자신의 사진이 인정받지 못한 것에 상처를 받고, 클럽의 지출 내역을 따지며 스티글리츠의 도덕성에 의문을 품게 되자 사임한 후에 이루어졌다.&lt;br /&gt;&amp;nbsp;&lt;br /&gt;1903년-1917년 사이에 모두 50권의 Camera Work가 발간되었다. 이 책들의 표지 및 활자 디자인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맡았다. 도판들 대부분이 매 페이지 위에 손으로 붙여진 얇은 일본지에 인쇄된 요판사진들이었으며, 그 위에 종종 갈색이나 회색 테두리가 둘러졌다. 창간호는 캐즈비어를 다루었고, 2호는 스타이켄, 그리고 그 다음 호부터는 사진분리파 회원들과 유럽의 주도적 사진가들, 에번스등의 개인작품집이었다. 1905년 스티글리츠는 뉴욕 5번가 291번지에 사진분리파의 화랑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활동과 영향력을 넓혀갔다. 출판 활동과 동시에 스티글리츠는 사진분리파 회원들과 그 밖의 사진가들의 작품을 대여하는 방식의 전시회를 조직했다. 그는 일체의 진행 및 작품 관리상의&amp;nbsp; 책임을 떠맡았다. 작품 선정, 카달로그와 액자 제작, 포장, 운송을 위한 선적까지 그의 책임 아래에 있었다.&lt;br /&gt;&amp;nbsp;291화랑에서는 에 실린 사진뿐 아니라 로댕, 세잔, 마티스,피카소, 브랑쿠시, 브라크, 피카비아 등과 같은 예술가들과 조지아 오키프, 존 마린, 마스든 하틀리같은 미국인 예술가들의 전시도 가졌다. 스티글리츠는 사진가로서 그리고 관리자로서 동등하게 요구되는 재능과 독창성과 장래성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1913년 그는 &quot;사진가들은 자신들의 사진이 단순히 사진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quot;, 그래서 이러한 확신을 시험해본 사진가가 자신의 시각을 발전시키고 사진매체의 특성을 인식학 만큼 충분히 강해졌을 때, 비로소 그는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사진을 전시하고 출판했던 동안에는 창조적 예술사진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lt;br /&gt;&amp;nbsp;1913년 스티글리츠는 291화랑에서 자신의 사진을 전시했다. 1899년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현대회화와 조각들을 전시했다. 당시의 회화와 조각은 추상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외적인 글에서 그는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대규모 현대 미술 전람회인 Armory Show에 시민들의 참석을 권고했다. 그러나 쇼를 보는 한편 그는 미술이 묘사적인 리얼리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이 시기에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사진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1913년 스티글리츠의 개인전은 자신의 화랑에서 회화 작품을 주로 전시한 것은 사진에 한계가 있거나 사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라고 오해하는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필요한 일이었다.&lt;br /&gt;&amp;nbsp;그러나, 스티글리츠의 이러한 활동이 항상 지지를 받아 온 것은 아니었다. 1915년 스티글리츠가 수정하지 않는 형태의 사진으로 선회하기까지 그가 한 일련의 행보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전까지의 그의 작품들 중 핸드카메라로 찍은 &amp;lt;5번가의 겨울&amp;gt;의 경우 서정적인 추상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진에서 회화주의 사진의 모순을 해체하고 사진만이 지닐 수 있는 영상 언어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Camera Work의 사진들은 여전히 픽토리얼리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lt;br /&gt;&amp;nbsp;스티글리츠는 당시 글을 거의 쓰지 않았지만, 동료였던 비평가 마리우스 드 자야스는 1913년 [카메라 워크]지에 사진에 관한 에세이 두 편을 발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사진은 객관적인 형태를 찾고자 하며 또 결정하고자 하므로, 예술사진은 정서를 실어나를 형식을 사용하여 보다 멀리 나아간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티글리츠는 &quot;주관을 제거하면서 대상에서 그 무엇인가 순수한 표현을 추구했으며, 가장 앞선 현대적 예술 운동가들이 예술적 수단에 대한 보완을 통해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을 기계적 방식에 의한 종합을 통해서 획득하고자 했다.&lt;br /&gt;&amp;nbsp;이후 그의 행보는 사진의 상징성에 강하게 매료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스트글리츠는 이민자등, 노동자들, 거리의 풍경, 건설중인 고층건물 등 대도시의 움직임을 모티브로 해왔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산중턱에 걸쳐있는 무지개, 삼림속의 이슬, 떠다니는 구름, 석양 등의 풍경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사진의 상징의 차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해 왔다.&lt;br /&gt;&amp;nbsp;&lt;br /&gt;&amp;nbsp;특히 사진에 대한 이러한 스티글리츠의 자세는 등가 Equivalent라는 개념으로 결정되어 갔다. 이 &apos;등가&apos;의 개념은 객관적인 사실의 기록이 아닌, 찍는 사람의 개방적인 신체 감각을 이입시킨 사진영상을 이용해서 서양적인 자아의식을 초월한 새로운 무한의 대지 즉 미국에서 예술관을 잉태해 내기 위한 스티글리츠가 도입한, 사진을 향한 하나의 시선이었다.&lt;br /&gt;&amp;nbsp;&quot;나는 몇십 년 동안 사진에 관해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구름을 찍고 싶었다. 구름 사진을 통해서 내 철학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quot;&lt;br /&gt;&lt;/p&gt;
&lt;p&gt;2. Camera Work&lt;/p&gt;
&lt;p&gt;카메라 워크의 중요한 네 시기&lt;br /&gt; 조나단 그린 Jonathan Green은 50편의 카메라 워크를 주요 네 시기로 분류하여 각 시기의 대표적인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 통합의 시기&lt;br /&gt;&amp;nbsp;1903년부터 1907년까지는 카메라 워크의 초기 확립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사진가들은 진지한 예술 활동으로서 회화주의 사진 미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활동한 사진가들은 Charles Caffin, Sadakichi Hartmann, 조셉 케일리, Dallet Fuguet 등으로 카메라 워크에는 그들의 작품에 대한 방대한 분석 및 평론들이 개제되었다. 사진과 다른 예술과의 연계성을 제시하며 사진이 보여주는 테크닉 보다 진실된 표현으로서의 사진의 사실성을 강조하였다. 카메라 워크에서 스티글리츠는 사진의 예술성은 사진 그 자체로 표현 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였으며 또한 사진을 찍는 이의 감정과 생각이 사진이라는 매체에 의해 창조적인 예술 행위로 표현되고 있음도 함께 강조했다. 이 시기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은 사진가들은 케이스비어 Kasebier, 스타이켄 그리고 드마쉬 Demachy 등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 확장의 시기&lt;br /&gt;&amp;nbsp;1907년부터 1910년까지 두 번째 시기인 확장기는 카메라 워크와 포토-시세션이 추구하는 근대 회화주의 사진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였다. 확장기의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는 &apos;291&apos;화랑을 통해 근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었으며 광범위한 분야의 논평과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291화랑에서는 사진뿐만 아니라 유럽의 근대미술관과 관련된 글과 전시회도 자주 열렸으며 당시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 및 미국 작가들로만 구성된 모더니스트의 전시회도 열렸다.&lt;br /&gt;&amp;nbsp;스티글리츠는 동료 사진가들의 작품 전시회를 적극적으로 권장, 기획하였고 특히 엄밀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주력했다. 일련의 전시회들은 &apos;예술매체로서의 회화주의 사진의 정형&apos;을 보여주고자 기획된 것으로서 다음의 세가지를 대표적인 전시로 꼽을 수 있다.&lt;br /&gt;카네기 홀, 피츠버그, 1904&lt;br /&gt;예술 아카데미, 펜실베니아, 1906&lt;br /&gt;앨브라이트 갤러리, 버팔로, 1910&lt;br /&gt;&amp;nbsp;스티글리츠와 스타이켄은 사진예술이란 다른 시각매체와 분명히 구분되어지는 사진 그 자체로 인식되어져야 함을 함께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스티글리츠는 스스로가 자신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apos;선미 Steerage&apos;를 발표하게 된다. 그는 작품의 형식에 보다 초점을 둔 &apos;선미&apos;를 근대회화의 영향을 받은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스스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픽토리얼 포토그래피의 기초가 되었던 회화적 기법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사지니란 눈에 의한 판단과 구성의 동시적인 주체와 현태에 대한 즉각적인 인식의 결과였다라고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새로운 회화주의 사진의 특징을 명시하고 있다.&lt;br /&gt;&amp;nbsp;그러나 카메라 워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정기 구독자 층을 많이 잃게 되자 그는 그 동안에 종종 회화와 비슷한 인화 작업을 하기도 하고, 고무 인화를 만들어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사질적인 사진으로 객관적인 표현을 하고자 즉 일상생활에서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감광유제의 기본적인 성격을 최대한 살린 사실적인 사진을 발표하고자 노력했다.&lt;br /&gt;&amp;nbsp;또한 후반기에 들어서자 그는 사실주의를 딛고 넘어선 세계를 &apos;이퀴벌런트: 표현(Equivalent)&apos;하여 객관적인 현실에 은유적인 상징성을 띠게 함으로써 사진에 자기 자신의 감정이입을 시도하였다. 사지네 찍힌 피사체의 고유한 특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시발점에 불과한 것이엇고 최종적으로는 사진가의 생각과 감성에 의해 그 뜻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으며 결국 이러한 관점을 사진으로 연결시켜 &apos;이퀴벌런트&apos;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사진은 주제보다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을 뜻하는 사진이 더 중요하다고 보며 이것은 다시 말해서 사진에 대해 매우 특별한 감정이입이라고 언급하면서 그것의 표현을 위한 자아의 개성 또한 강조하였다.&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 탐구의 시기&lt;br /&gt;&amp;nbsp;1910년부터 1915년까지 탐구의 시기 동안 카메라 워크는 예술적인 표현에 있어 보다 새롭고 시각적인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카메라 워크는 점차 291화랑의 계간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1908년 근대 예술가 로댕의 전시회도 개최하였다. 대표적인 예술가들 중 피카소, 피카비아, 브랑쿠시, 세잔, 나이덜만 등이 연이어 291화랑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면서 291화랑은 아방가르드를 주도하는 중요한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불어 카메라 워크는 전시회에 소개되는 중요한 작품들과 근대 예술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게 되어 근대 예술 운동에 대한 당대 예술가들의 개성 있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등을 끊임없이 싣게 되었다. 당시 스티글리츠는 저작활동에 몰두하여 14년이 흐른 후 291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기획한 개인전의 전시 의도에 대해 버먼트 뉴홀은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lt;br /&gt;&amp;nbsp;그에게 있어, 개인전은 무엇이 사진인지, 회화가 아닌 사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자 기획된 전시엿다. 반면, 아모리 쇼는 무엇이 회화인지, 사진이 아닌 회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엇다. (버먼트 뉴홀, 1982 : 168)&lt;br /&gt;&amp;nbsp;사진 역사에 있어 카메라 워크는 회화적인 기법의 사진이 아니라 보다 순수하고 직접적이며 사실적인 사진들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4) 가중의 시기&lt;br /&gt;&amp;nbsp;1915년부터 1917년까지의 최종 시기는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카메라 워크가 폐간되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스티글리츠는 카메라 워크의 정기 구독자 감소와 출판 비용의 인상으로 인하여 다시 자매지를 발간하게 되는데 폴 스트랜드의 미학적인 사진이 스티글리츠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스티글리츠는 폴 스트랜드의 첫 전시회를 291화랑에서 갖도록 주선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을 카메라 워크지를 통해 특집으로 꾸밀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lt;br /&gt;&amp;nbsp;이후 계속적으로 같은 방향의 길을 걸으면서 스티글리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 폴 스트랜드는 스티글리츠와 따로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스트랜드는 당시 예술적 사진이란 회화적 사진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을 반박하고 원래 사진의 기계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진예술에 접근했다. 이러한 순수사진인 스트레이트 포토를 개혁자의 입장에서 시작한 사람이 스티글리츠라고 한다면 스트레이트 포토를 완전히 정립시킨 사진가는 바로 폴 스트랜드라고 할 수 있다.&lt;br /&gt;&amp;nbsp;1917년 스티글리츠는 카메라 워크를 부흥시키고자 마지막 두 권으 카메라 워크를 출판했다. 그는 이 마지막 편에 폴 스트랜드의 사진작품을 실었으며 스티글리츠가 지금까지 펼쳐 온 사실적인 회화주의 사진운동을 요약하여 소개하였다. 폴 스트랜드의 특이한 사진들을 높이 평가한 스티글리츠는 다음과 같이 그 사진들에 대해 &quot;그의 작품은 오늘날 사진가들이 직접적인 것들 안에서 어떤 것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순수하고 직접적이다&quot;라고 묘사했다. 결국 사진은 뛰어난 개인의 표현 예술이다. 사진이란 눈에 의한 판단과 구성의 동시적인 주체와 형태에 대한 즉각적인 인식의 결과인 셈이다.&lt;br /&gt;&amp;nbsp;&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참고 도서 및 논문 &lt;br /&gt;&amp;nbsp;&lt;br /&gt;Western Naef, [The Collection of Alfred Stieglitz], 1978&lt;br /&gt;&amp;nbsp;&lt;br /&gt;[디지털영상시대의 사진의 진정성에 관한 고찰]. 이 재구, 한국사진학회지 AURA, 2006&lt;br /&gt;&amp;nbsp;&lt;br /&gt;Marius De Zayas, &quot;사진과 예술적 사진&quot; Camera Work 42-43호(1913년 7월), &quot;사진&quot; Camera Work 41호(1913년 1월)&lt;br /&gt;&amp;nbsp;&lt;br /&gt;[20세기 사진사], 이토 도시하루&lt;br /&gt;&amp;nbsp;&lt;br /&gt;포토-시세션은 무엇이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서 분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예술의 한 갈래로, 기존 예술가는 다르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분리주의자로 부르는 모더니즘 예술에 사진이 한 분야로서 개척되어짐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Willam Crawfort, 1979&lt;br /&gt;&amp;nbsp;&lt;br /&gt;291화랑 미국 최초의 사진갤러리로 1905년 뉴욕에서 스티글리츠에 의해 &apos;사진분리파의 작은 갤러리&apos;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다. 이 갤러리는 &apos;화랑 291&apos; 또는 &apos;291&apos;로 유명하다. 그곳은 예술사진의 이념들을 관철시키고, 독자적인 영상매체로 사진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 화랑이 오직 사진전시회만 개최한 것은 짧은 기간이었다. 1907년에 스티글리츠는 그곳에서 다른 예술작품들을 전시했고 1908년부터는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품들도 활발하게 소개했다. 1912년 이후에 &apos;291&apos;의 전시 프로그램에 들어있던 것은 스티글리츠와 스트랜드의 전시회뿐이었다. 1917년 화랑은 완전히 문을 닫았다. [클라시커 50 사진가], 빌프리트 바츠&lt;br /&gt;[사진예술의 역사], 장 뤽 다발&lt;br /&gt;[사진 이상한 예술]&lt;br /&gt;&lt;br /&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6 May 2010 03:51:5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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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초현실주의-초현실주의의 기법들</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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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1. 자동주의 automatisme&lt;/p&gt;
&lt;p&gt;오토마티즘은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의도를 나타낸 대표적 기법으로, 가능한 의식(고정관념,이성들의 영향)이 배제된 상태에서 손에서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움직임과 형태를 작품화한 것이다. 에른스트가 발견한 프로타주와 오스카 도밍게즈가 작품에 이용한 데칼코마니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형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오토마티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마송 ,미로 &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2. 프로타주 frottage&lt;/p&gt;
&lt;p&gt;에른스트가 1925년 여름에 마룻바닥의 얼룩을 보고 있다가 거기에서 온갖 환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한 기법으로, 나무 파편이나 나뭇잎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을 문질러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수법을 말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 轉寫法 )&lt;/p&gt;
&lt;p&gt;원래는 도기나 유리기구등에 특수한 종이에 그린 그림을 옮겨서 염색하는 기법으로, 회화에서는 미끄러운 성질의 종이에 물감을 칠하고 그것을 접었다가 다시 피거나 또는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대고 눌렀다가 뗄 때 생기는 우연한 효과를 작품에 이용한 것을 의미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4. 데페이즈망 depaysement ( 轉置,轉位法 )&lt;/p&gt;
&lt;p&gt;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으로 문학에서 &apos;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apos;을 이야기하는 로트레아몽의 싯귀는 데페이즈망의 적절한 예라 하겠다. 추현실주의 회화에서는 낯익은 물체를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으므로써 꿈속에서 밖에 없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이는 심리적 충격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데페이즈망의 대표적 작가로는 마그리트를 들 수 있으며 꼴라주와 오브제도 일종의 전위라 할 수 있는데 이 방법들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기여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5. 레이요그램 rayogram&lt;/p&gt;
&lt;p&gt;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감광 재료 위ㅣ해 물체를 얹어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명암 속에서 추상적 사진을 찍은 것이다. 포토그램과 같은 것으로 파리에 있던 미국의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가 1923년 블룸이란 잡지 4월호 표지에 발표하면서 이 명칭을 붙였다. 후에 그는 자작집에서 레이요그래프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1921년 자비로 출판의 한정판으로 레이요그램 작품을 트리스탄 짜라의 시와 함께 발표한 바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 꼴라주 collage&lt;/p&gt;
&lt;p&gt;화면에 인쇄물,천,쇠붙이,나무조각,모래,나뭇잎 등 여러 가지 물질을 붙여 구성하는 기법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도 기성품에 손질을 가하지 않고 전혀 엉뚱한 물체끼리 조합시키므로써 별개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비유적,연상적,상징적 효과를 노리는 방법으로 쓰인다. 에른스트는 1919년부터 초현실주의적인 꼴라주작품을 시도했는데, 그의 작품은 잡지,카탈로그,삽화등의 그림을 부분적으로 오려 아무 관련성없이 재배치하여 부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의 세계를 일깨운다. 또한 1924년 &amp;lt;두 어린이가 나이팅게일에 놀랐다&amp;gt;라는 작품에서는 문짝,손잡이 등의 사물을 꼴라주하여 초현실주의 사상에 부합되는 이미지의 세계를 창조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7. 오브제 &lt;/p&gt;
&lt;p&gt;예술과 관련없는 물견,또는 그 부분을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떼어내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재한 욕망이나 환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말한다. 발견된 오브제, 환영 오브제, 봉상적 기능의 오브제, 존재적 오브제 등이 있다.&lt;br /&gt;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호앙 미로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6 May 2010 03:46: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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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대사진의 분류</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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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본론&lt;/p&gt;
&lt;p&gt;&lt;br /&gt;1 영상사진이란 ?&lt;br /&gt;&lt;br /&gt;2 사진역사의 시대적 구분 / 영상사진의 발전 3단계&lt;br /&gt;&lt;br /&gt;3 현대사진을 분류한 선례와 기획전&lt;br /&gt;&lt;br /&gt;4 현대사진의 흐름과 맥&lt;br /&gt;&lt;br /&gt;5 New Documentary, Bauhaus, 초현실주의, Post-modernism&lt;br /&gt;&lt;br /&gt;6 기호 상징체계에 의한 사진분석&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1 영상사진이란?&lt;br /&gt;&lt;br /&gt;1950년대 이후를 통틀어 현대사진시대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영상언어의 기능을 중시한 영상사진의 대두를 의미한다. 영상사진 즉 현대사진의 등장은 어린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가운데 모국어를 익히는 언어 학습의 발달 과정과 동일한 구조로 파악되며, 인류가 영상언어를 채택하여 완숙한 발전적 진화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으로 볼수있다. 영상사진은 내면적인 의식세계를 언어와 마찬가지로 심도있게 영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19C 이전은 영상사진에 있어서 영상언어의 유아기 상태로 단순히 눈동자를 통해 망막에 비친 1단계 이미지의 수동적인 대상의 복사(copy)에 지나지 않았다. 1900년대에는 영상언어의 어린이 상태로 어린이가 말을 저절로 배워 성숙 되면서 자기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단계이며 1950년 이후에 와서야 영상언어의 어른 상태로서 어린이가 성숙해 어른이 되면 자기사상을 갖게 되고 개인적인 말의 소유화가 생기는 것처럼 영상사진이란 망막에서 두뇌로 전달되는 2단계의 이미지가 두뇌의 의식체계와 결합된 내면적 성질의 것을 뜻한다. 그것에 의하여 사진의 이미지가 언어와 마찬가지로 의식과 밀착되어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영상언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lt;br /&gt;&lt;br /&gt;1950년대 부터 그이전과 두드러지게 표현의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즉 표현의 다양화, 표현의 심층화 현상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영상언어의 사유화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영상언어의 사유화란 전달매체로서의 사진이 사진가의 의식체계와 심층적으로 밀착되는 것을 의미한다 . 또한 현대사진의 특색으로 영상의 내면화, 주관화 경향이 뚜렷한데 이것은 영상적인 의사전달의 점진적인 숙달과 동화로 개인들이 각자마다 사유화하고 있는 언어처럼 영상언어의 개별적인 소유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사진의 내면화 현상은 새로운 시대의식에 의해서 세계가 바라보는 관점의 변혁과 그리고 인식의 범주인 시간과 공간의식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다. 20세기로 넘어서자 예술전반에 나타난 전위적인 실험운동들은 바로 이에 대한 시대적인 반응은 사진적 시각[Camera eye]의 새로운 발견이었 다. 이름바 새로운 시각[New Vision]의 발견이 몰고온것은 크로즈업, 앵글의 변화, 순간동작의 포착, 포토그램,포토몽타즈,음화사진 등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진적인 반응은 다양한 대상의 접근 방법의 발견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시각의 다양성에 머물었고 시대적인 근원적인 결합을 이루지 못했다. 50년대 현대사진은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현대적 관점에 대한 내면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현대사진의 내면화는 1차적으로 영상언어의 사유화에 의해 심층적 표현능력이 생긴데서 나타난 현상이고 2차적으로 이러한 표현능력에 의해 시대의식과 영상언어가 밀착됨으로서 시대의식의 변혁에 발맞추어 영상적 표현의 변혁적인 내면화가 촉진된 것이라고 볼수있다.&lt;br /&gt;　&lt;br /&gt;&lt;br /&gt;&lt;br /&gt;2 사진역사의 시대적 구분&lt;br /&gt;&lt;br /&gt;사진 역사의 시대적 구분은 보편적인 일반론에 따라 다음 세단계로 나누었다.&lt;br /&gt;&lt;br /&gt;● 19세기 사진:&lt;br /&gt;&lt;br /&gt;스티글리치 이전의 소위 예술사진시대로, 독자적 미학이 정립되지 못한채 회화적 기준이 그대로 사진에 적용되던 시기. 회화성을 바탕으로한 &quot;보는 사진 시대&quot;로써 사진이 회화에 포함되어 사진이 그림처럼 감상되기위해 회화적 시각성을 추구했다.&lt;br /&gt;&lt;br /&gt;● 근대사진:&lt;br /&gt;&lt;br /&gt;사진이 독자적 미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20세기 이후 50년대 까지의 사진으로, 사진 메카니즘에 대한 자각,이를 바탕으로 한 갖가지 실험을 통해서 사진미학이 정립되었으며,1930년대 시대적 상황에 따른 보도적 기능을 바탕으로한 다큐멘타리 사진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문학성(라이프의 엮음사진 형식) 에 보다 기울던 시기이다 이시기는 &quot;알린다&quot;라는 문학성을 담는 &quot;읽는 사진 시대&quot;이다.&lt;br /&gt;&lt;br /&gt;● 현대사진:&lt;br /&gt;&lt;br /&gt;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의 사진으로, 회화성에도 문학성에서도 독립하여 사진의 독자적 영상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서 영상예술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시기. 사진에 의한 창조적 아름다움을 지닌 영상성을 바탕으로 한 &quot;느끼는 사진 시대&quot;이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감각으로 느낌으로서 받아들일수 있는 것으로 난해성을 띄게 되었다. 우리는 긴 역사에서 언어, 문자시대에 묶여왔다. 영화도 소설을 눈으로 보여주는게 전부가 아니라 영상성이 중요듯이 비문자예술로 자유롭게 느낌을 받아들이고 표현할수 있기 위해서는 언어의 중독현상을 벗어나야한다. 즉 현대사진이란 영상언어의 기능을 중시한 영상사진의 대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quot;내면화된 자아의식의 대두&quot;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현대사진의 특징은 1)영상언어의 주관화와 내면화 경향,2)표현의 다양화와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영상화 현상으로 요약할수있다.&lt;br /&gt;&lt;br /&gt;&lt;br /&gt;● 영상언어의 발전 3단계&lt;br /&gt;&lt;br /&gt;사진의 역사는 바로 영상적 의사소통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차츰 익숙해지고 또한 숙달되었는가를 보여주는 단계적 발전이라고 할수있다. 사진이 다만 실용적으로 대상을 복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사진이 이미지와 의식과 결합에 의한 시대적 자각이 일어난때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부터이다. 20세기의 시대의식을 사진적으로 표현하면, 1900년대부터 1960년대 까지의 역사는 크게 3단계의 발전과정을 밟아 나아간것으로 볼수있다. 1단계의 1900년대에서 1920년 까지는 사진적 시각[Camera eye]의 정립시기이며 제2단계의 1930년대에서 1940년대 까지는 전달매체[Mass media] 로서의 정립시기이고, 제3단계의 1950년대에서 1960년대 까지는 사진의 영상적 자아의식의 정립 과정이다.&lt;br /&gt;&lt;br /&gt;이러한 3단계의 역사적 진행은 20세기의 시대의식을 사진적으로 표현한 단계적인 과정이다. 이과정을 단적으로 말하면 제1단계는 &quot;본다&quot; 는 문제의 대두이고, 제2단계는 &quot; 알린다&quot;이며 , 제3단계는 내면화된 &quot;자아의식&quot;의 대두이다.&lt;br /&gt;&lt;br /&gt;제1단계는 20세기로 넘어서면서 예술전반에 걸쳐서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모색이 활발하게 일기 시작한 시기인데 이것은 시대의식의 새로운 변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0세기의 현대 예술은 정통의 본궤도를 이탈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주된 관심은 이른바 New Vision의 추구였으며 새로운 시각이란 바로 새로운 인식 방법의 모색과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진은 이러한 추세에 따라 사진의 특성인 과학적인 시각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과 인식을 획득하였다. 그래서 1920년대 까지의 사진의 역사는 사진적 시각에 대한 추구가 전반적인 대세였다.&lt;br /&gt;&lt;br /&gt;대체적으로 1900년대 부터 1920년대 까지는 사진은 단순히 찍힌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사진적인 시각의 정립시기는 구체적으로 보면 다시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전기는 1900년대이고 후기는 1920년대인데 전기는 사진적 시각의 기본인 기계적 기록성의 자각과 인식의 시기이고 후기는 사진적 시각이 지니고 있는 잠적인 가능성의 발굴과 다양한 실험적 표현을 한 시기이다. 결국 1900년대는 사진적인 시각의 자율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고 20년대에는 사진적인 시각을 통한 인식이라는 문제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lt;br /&gt;&lt;br /&gt;●1단계 ; 1900년대 에서 1920년대 까지&lt;br /&gt;&lt;br /&gt;1900년대의 사진적 시각에 개한 인식은 광학적 시각의 발견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에술이 과학적인 인식과 수단에 의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된 시대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다. 19세기의 사진가들은 광학적 시각의 기계적 기록성을 예술적 표현의 장애물로 생각해왔다. 자연주의 사진을 제창한 에머슨은 사진이 과학의 제약에서 벗어날수 없으므로 사진에는 예술가의 개성이 과학에 의해 제약을 받기 때문에 사진이 매우 한정된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1891년에 자연주의 사진의 종말을 선언했다. 반면에 스티글리츠는 에머슨이 사진은 과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 지점에서 근대 사진을 출발 시켰다. 사진은 오히려 과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이 변모함에 따라 무한히 변모하는 새로운 영상예술이 될수 있다는 사진예술의 특성을 발견 한 것이다. 일프레드 스티글리츠나 유멘느 앗제 같은 이들은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핸드 카메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것이야말로 사진의 독자적인 표현의 기본임을 생활기록 사진과 같은 작품 활동을 통해 입증하였다. 1900년대에 사진적인 시각의 자율성에 대한 시대적인 자각을 가장 투철하게 한 사진가는 바로 미국의 스티글리츠였다. 그는 카메라의 눈이 인간의 육안에 종속적으로 매여서, 보이는 것을 그대로 수동적으로 복사만 하기에는 그 성능이 육안 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자각을 하였다. 육안을 기준으로 사진을 찍을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을 앞 세워서 대상을 파악하려 들면 육안의 한계를 벗어나서 시각적인 확장을 이룩할수 있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 눈이 지니고 있는 잠재적인 특성에 바탕을 둔 순수사진[Straight Photo]을 부르짖엇다.&lt;br /&gt;&lt;br /&gt;●2단계 1 ; 1920년대 에서 1930년대까지&lt;br /&gt;&lt;br /&gt;이와같이 사진에 있어서 시각의 자율성에 대한 자각은 20년대에 이르러 사진적 시각의 인식으로 발전하는데 이에대한 사진적 자각을 동시대의 사진가들 중에서 가장 넓고도 깊게 한 사진가는 모홀리나기였다. 그는 시대적 변혁에 따르는 새로운 시대의식을 예술적으로 모색하려는 전위적인 예술가로서 사진적 시각의 특성을 새로운 시각 [New Vision]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인식수단으로 삼았다.&lt;br /&gt;&lt;br /&gt;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사진적 행위란 다름 아닌 새로운 시대의식의 인식행위였다. 이당시 사진계가 모두 사진의 시대적 풍조를 쫓아 카메라의 눈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새로운 시각의 신기함에 빠져 있을때 그는 이에 머물지 않고 사진의 잠재적인 특성을 한껏 살려 이때까지의 전통적인 시각적 인식의을 뛰어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인식과 사고를 추구하였다.&lt;br /&gt;&lt;br /&gt;1920년대 예술전반에 걸친 최대의 관심사는 이른바 새로운 시각이었는데, 사진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각은 두가지 측면에서 진행 되었다고 볼수있다. 하나는 1900년대의 기계적 기록성에 대한 예술적 가치 발견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시킨 것이고, 또하나는 렌즈의 광학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사진의 물리적이고 화학적 반응에 의한 비구상적인 이미지를 추구한 것이다. 전자는 전통적인 새로운 시각의 계열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실험적인 새로운 시각의 계열이라고 할수있다. 전통적인 새로운 시각계열의 사진가들이 추구한 것은 주로 클로즈업, 하이앵글, 로우앵글, 그리고 순간동작의 포착등 육안적인 변환의 시각들 이었다. 실험적인 새로운 시각 추구는 포토그램,몽타쥬,음화사진등 특수암실 기법으로 육안적인 시각법칙으로는 지각되지 않는 이미지 발굴이었다. 이러한 양면에 걸친 신시각의 추구는 사진을 통해 세계를 들여다 보는 시야의 확대와 다양화이며,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인식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lt;br /&gt;&lt;br /&gt;사진역사의 발달과정중&lt;br /&gt;&lt;br /&gt;&lt;br /&gt;●2단계 2; 1930년대 부터 1940년대 까지&lt;br /&gt;&lt;br /&gt;2단계인 1930년대 부터 1940년대 까지는 지구의 일원화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사진이 시각적인 대량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기능이 정립된 시기로서 사진이 인쇄술의 보급으로 대량 정보 전달의 유통구조 속에 끼여들어 시각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여 문자나 언어와 겨루어 사진의 시각적 정보전달 기능을 크게 확장 시켜 나간 시기이다. 사진은 인쇄술과 결합하여 전과 같이 그림 처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처럼 읽어야 하는 것으로 사진의 성격이 크게 변하였다. 1936년에 창간된 라이프 잡지를 중심으로 한 포토저널리즘시대의 개막은 영상언어로서의 사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며 동시에 사진을 영상언어로 인식 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래픽 잡지가 필연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엮음사진의 형식은 사진적 인식이 문학성을 그 바탕으로 사진의 언어적 기능을 완성 시키기 위한 것 이었다. 결국 포토저널리즘의 등장은 문화사적으로 보면 유사이래 인류가 의사전달을 유일하게 문자에 의존해온 문자 문화시대로 부터 영상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의 시대인 영상문화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lt;br /&gt;●3단계; 1950년대 부터 현대&lt;br /&gt;&lt;br /&gt;사진역사 발달의 3단계인 1950년대 부터는 앞서 사회적인 일상생활 속에 정착된 사진이 개개인의 자의식화의 단계로 발전한 시기이다. 이제까의 시각적 정보 전달 기능이 어디까지나 공적인 시각적 의사소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데 반해서 사사로운 개인적인 시각적 의사소통의 단계로 발전한 시기이다. 객관적인 것에서 주관적인 것으로, 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으로의 변화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개별적인 것 이기 때문에 그내용이 심층적인 것이다. 그래서 현대사진은 결과적으로 내면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50년 TV의 등장으로 TV가 사회적 정보 전달 기능을 전면에서 떠 맡음으로서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가기가 일단 물러가고 개인의 신분으로 돌아간 사진가들은 사회적 제약에서 해방되어 사진작가로서의 자유인이 되어 사적인 독백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영상언어의 인식체계로의 침투에 의한 사유화가 개인적인 자아의식을 불러 일으킨 것이며 영상언어의 사유화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편으로 1950년대 이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기계문명에 대한 회의와 인간성 상실과 소외에 의한 정신적인 충격및 이에 따르는 물질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대두된 시기로 자아가 내면세계로 움추러들게 된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가들은 사진을 자아의 내면적 세계를 성찰하는 표현수단으로 체질화되어 사진을 통한 시각적 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영상언어의 인식체계와의 접목이며 나아가서는 사진의 시각적 사고 단계로 진입인 것이다.&lt;br /&gt;3&amp;nbsp; 현대사진을 분류한 선례와 현대사진의 흐름을 주도한 기획전&lt;br /&gt;&lt;br /&gt;-1-&amp;nbsp; 버먼트뉴홀은 1937년 MOMA에서 열린 [Photography1837-1937] 기회전 카다로그에서 현대사진의 조류를 Straight, Equivalent, Documentary, Formalistic사진과 같은 4종류로 분류했다.&lt;br /&gt;&lt;br /&gt;-2-&amp;nbsp; 레이던 라이언즈는 1966-1969까지 조지이스트만 하우스에서 3년에 걸쳐[Contemporary Photography] 기획전을 개최 했는데 그주제를 ●사회적 풍경을 향하여즊 영속하는 시각 ●시각과 표현과 같이 세가지로 나누어 동시대의 사진가들의 업적을 현대의 시점에서 올바르게 평가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사진가가 대상에 카메라를 향하는 원점으로 돌아가 작가의 마음의 반영을 보고자하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회비평주의를 보여주는 New Document작가, 초현실주의작가, 사진의 새로운 시각을 탐구하는 표현주의 작가로 나누어 전시했다.&lt;br /&gt;&lt;br /&gt;-3- 존자르코스키는 1967년 MOMA에서 열린[New Document]기획전에 3명의 사진가 리프리렌더, 게리위노그랜드, 다이안 아버스를 참가시켰다.&lt;br /&gt;&lt;br /&gt;-4- 존자르코스키는 1978년 MOMA에서 열린[Mirrors &amp;amp;Windows;American Photography Since1960&quot;]기획전에 60년대 까지의 사진가 100명의 280점을 사진을 비평하기 위한 도구라는 논제로 전시했다. Mirrors와 Windows의 차이는 그작품의 독창성이나 관계성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고 &quot;사진이 무엇인가&quot;하는 사진가들의 사상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다. 즉 작품을 만드는 작가자신을 반영하는 것이 Mirror인 것이며 사진을 통해서 사람의 세상을 보다 더 잘 알려고 하는 것이 Window일 것이다.&lt;br /&gt;&lt;br /&gt;● 창파= 흰벽:Windows-바깥세계 탐구-대상에의 설명 -으젠느 앗제-로버트 프랭크-리 프리렌더, 게리 위노그랜드- 다인안 아버스, 켄 조셉슨, 에드워드 루샤, 빌 오렌즈, 헨리 워셀, Michael Ciavoiho, Tetsu Okuhara&lt;br /&gt;&lt;br /&gt;● 거울파= 회색벽:Mirrors-자기탐구-자기내적 표현수단-알프레드 스티글리츠-마이너화이트-제리율스만-듀안마이클Joseph Bellance, Judy Dater, Ralph Gibson, 레스크림즈, 앤디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하이네켄, 마크코헨.&lt;br /&gt;&lt;br /&gt;●무소속파= 어느것도 안속하는 사진- Levols Baltz(루이스 발츠) . Ray k Metker (레이K메츠커 ): Mirror와 Windows사이의 차이는 그 작품들의 독창성이나 관계성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진이 무엇인가’하는 그들의 사상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다. 즉 작품을 만드는 작가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 Mirror인 것이며 사진을 통해서 사람의 세상을 보다 더 잘 알려고 하는것이 바로 Windows일 것이다.&lt;br /&gt;&lt;br /&gt;-5-&amp;nbsp; 힐튼크레이머[Hilton Kramer]는 뉴욕타임즈에서 이 전시회에 대해 평하기를 &quot;베트남 전쟁도 워터케이트 사건도 나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quot;라고 말하 있다. 자르코스키는 그대답을 &quot;거울과 창&quot;에서 개인적인 시점에서 준비하고 있 다. 베트남 전쟁은 우라들에게 미국의 도덕성 결여와 붕괴에 대해 여러가지로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들이 그 결여를 앎으로써 생기는 충격을 잡은 뛰어난 사진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다이안 아버스가 찍은 것이 아닐까?&lt;br /&gt;&lt;br /&gt;-6-&amp;nbsp; 진손톤 (사진평론가)&lt;br /&gt;&lt;br /&gt;80년대의 젊은 사진가들은 현대미술관(존자르코스키)에 도전을 하고있다. 이 사진전이후 자르코스키의 사진에 대한 개념과 젊은 사진가(뉴웨이브파)의 사고 방법 사이에 위상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리프리렌더는 창파의 대표로서 제시하고있지만 그의 최초의 사진집 Self-Portrait 는 오히려 거울파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개개인의 문제로 돌아가면 자르코스키의 분석법도 애매하게된다&lt;br /&gt;&lt;br /&gt;-7-&amp;nbsp; 줄리아 스쿨리 (사진평론가)&lt;br /&gt;&lt;br /&gt;이 작품의 유일한 장점은 엣세이 형으로 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쟈르코프스키의 구성원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동시에 이에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유발시키는데 있다고 본다. 엣세이에는 자르코프스키의 초기사진에 대한 주장과 사진의 자구책에 대한 신념과 애호가 결핍되어있다. 엣세이 대부분은 50년대의 특이한 역사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주로 라이프지와 프랭크의 사진집(미국인),스타이겐의(인간가족)마이너 화이트의(아파쳐지)등으로 모여지고있다. 자르코프스키는 50년대의 화이트와 프랭크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창과 거울의 이론,즉 자신의 내적표현과 대상에의 설명간의 차이점을 논하고있다. 주장한바에 의하면, 한편축의 반대편 끝에 과연 상반된 목적이 위치할수있는가 하는점에 덧붙여서, 현재상황에 비추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비평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60년대 70년대의 사진에 대한 이해가 50년대에 이루어진 발전선상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일까 하는점이다.&lt;br /&gt;&lt;br /&gt;-8-&amp;nbsp; 마이너 화이트 ( Minor White) 와 워터 챠펠 (Walter Chappell) 은 어퍼쳐잡지 (Apature) 20호에 [outline for the experiencing of Photograpys]이라는 실험적 기사를 개제 하였다.&lt;br /&gt;예술사진을 ●Documentary ●Pictorial, ●Informational, ●Equivalent 네종류로 분류했다.&lt;br /&gt;&lt;br /&gt;-9-&amp;nbsp; 낭만적 관점과 사실적 관점&lt;br /&gt;&lt;br /&gt;낭만적 관점(Romantic View)이란 인간이의 이해로서 세상의 의미를 판단하는 것이다. 들쥐, 종달새, 하늘 그 자체는 그들 자신이 전개되어온 역사에서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그들에게 부여한 인간중심적인 상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lt;br /&gt;&lt;br /&gt;사실적 관점(Realistic View)이란 세상은 인간의 관심에서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세상의 사물들은 발견할만한 본질적인 의미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패턴들을 식별하고 예술가의 도구들과 함께 이런것들의 상징화 모델들을 만듦으로 해서 예술가는 더 큰 지성과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lt;br /&gt;&lt;br /&gt;-10-&amp;nbsp; 순수사진( Straight)과 만든사진 (Making)&lt;br /&gt;&lt;br /&gt;미국사진의 중심적 논쟁은 직접적인 (Stright) 사진과 인위적인(Synthetic)사진 (=Making Photo)과 같은 순수한 사진표현 매체의 문제로 이분하는 논쟁이 있다. 직접적인사진(Straight Photography) 이란 사진의 근본적인 특성이 노출되는 동안 카메라 안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인위적인 [Synthetic] 또는 조작되어지는 [Manipulated]사진이란 사진기의 영상이 암실에서 조작 ,다중인화, 꼬라쥬, 착색, 그림 그리고 이와같은 비슷한 기술적인 변경으로 변형된 사진을 뜻한다.&lt;br /&gt;&lt;br /&gt;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진의 내용을 분석하는 비평적 도구로 부적당하다. 사진을 Straight와 Synthetic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점이 비평적 도구로서 부적당 하다는 것은 두명의 사진가에 의해서 증명 되었다. 마이너 화이트와 로버프랭크의 사진적 입장은 정반대 임에 불구하고 그들 모두 확고 부동한 Straight사진가 였다. 그러나 한국의 사진계는 80년 중반부터 현대사진=Making 사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사진의 범위를 다양하게 확장 시킨다는 면에서 유용하나 현대사진의 흐름인 내용의 다양화와 심층화 현상과 달리 회화적 표현과 그 방법론만을 획일적으로 추구하는 하는 경향은 사진예술의 본질(=복제성)을 파괴하고 사진미학을 조형예술에 종속시키는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lt;br /&gt;4 현대사진의 흐름과 맥 &lt;br /&gt;-1-&amp;nbsp; 현대사진의 흐름을 사진가의 동기적 문제로 볼때 5가지로 나누어 볼수있다&lt;br /&gt;&lt;br /&gt;● Social Documentary(사회적 다큐멘타리) =Concerned Photography&lt;br /&gt;&lt;br /&gt;● Lyric Documentary(서정적 다큐멘타리)&lt;br /&gt;&lt;br /&gt;● 은유적 사회비평(은유적 다큐멘타리)&lt;br /&gt;&lt;br /&gt;● 은유적 자기비평 (심상적 Equivalent) = Romantic View(감수성이 주제)&lt;br /&gt;&lt;br /&gt;● 실험적 시각탐구 (Formalism) = 사진이라는 매체 그자체를 탐구하는 경향&lt;br /&gt;&lt;br /&gt;-2- 현대사진의 작품을 이즘별로 분류해 보면&lt;br /&gt;&lt;br /&gt;● 인본주의(Humanism)&lt;br /&gt;&lt;br /&gt;● 사회 비평주의(New Document)&lt;br /&gt;&lt;br /&gt;● 추상주의 ( Abstract ) Stiegliz- Minor White - Aron Siskind-Brett Weston&lt;br /&gt;&lt;br /&gt;● 초현실주의/ Atget-Man Ray-Bill Brant- Uelsman-Duane Michals-Ralph Gibson-&lt;br /&gt;&lt;br /&gt;● 형식주의 = Formalism (조형주의)&lt;br /&gt;&lt;br /&gt;● 표현주의 = Expressionism&lt;br /&gt;&lt;br /&gt;&lt;br /&gt;&amp;nbsp;&amp;nbsp;&amp;nbsp; Post-Modernism&lt;br /&gt;&lt;br /&gt;&lt;br /&gt;&lt;br /&gt;&lt;br /&gt;5&amp;nbsp;&amp;nbsp; New Documentary, Bauhaus, 초현실주의, Post-modernism &lt;br /&gt;&lt;br /&gt;&lt;br /&gt;-1-&amp;nbsp; Social Documantary [사회적다큐멘타리]&lt;br /&gt;&lt;br /&gt;사회문제,사회해석 /Realistic view[사회성,역사성]&lt;br /&gt;&lt;br /&gt;● Humanism Documantary [Humanist Photographer]&lt;br /&gt;&lt;br /&gt;1900 Jacob August Riis/Lewis W Hine[포토캠페인]&lt;br /&gt;&lt;br /&gt;1930 Dorothea Lange[FSA]&lt;br /&gt;&lt;br /&gt;1940 Eugene Smith [LIFE]&lt;br /&gt;&lt;br /&gt;1950 Werner Bischof /LeonardMcCombe[LIFE]&lt;br /&gt;&lt;br /&gt;1970 Bruce Davidson [책+전시]&lt;br /&gt;&lt;br /&gt;1980 Mary Ellen Mark/Sebastiao Salgado /Eugene Richards/Donna Ferrato =Concerned Photography [잡지+ Social 다큐멘타리책 +전시]&lt;br /&gt;&lt;br /&gt;● Historical Documantary (전쟁사진)&lt;br /&gt;&lt;br /&gt;1940 Robert Capa&lt;br /&gt;&lt;br /&gt;1950 Carl Mydans/ David Douglas Dancan/ Dmitri Baltermants&lt;br /&gt;&lt;br /&gt;1970 Eddie Adams/ Donald Mccullin&lt;br /&gt;&lt;br /&gt;1980 James Nachtway/Susan Meiselas/ 김영희&lt;br /&gt;&lt;br /&gt;&lt;br /&gt;-2-&amp;nbsp; Lyric Documantary (서정적 다큐멘타리)&lt;br /&gt;&lt;br /&gt;(Lifestyle 기록성+조형성+서정성 )&lt;br /&gt;&lt;br /&gt;1900 Eugene-Atget&lt;br /&gt;&lt;br /&gt;1920 Andre Kertesz[reportage+New vision]&lt;br /&gt;&lt;br /&gt;1930 Brassai/Walker Evans&lt;br /&gt;&lt;br /&gt;1940 Robert Doisneau&lt;br /&gt;&lt;br /&gt;1950 Henri Cartier Bresson/ David Seymour&lt;br /&gt;&lt;br /&gt;1970 조셉 쿠텔카/ Bill Owens&lt;br /&gt;&lt;br /&gt;&lt;br /&gt;-3-&amp;nbsp; 은유적 Documantary[은유적 다큐멘타리 ]&lt;br /&gt;&lt;br /&gt;(은유적 사회비평, 혹은 개인적:대중적이 아닌 개인적 관심사, )&lt;br /&gt;&lt;br /&gt;Window(바깥 세게탐구)+자기내면세계 이미지 추구 [자기표현]&lt;br /&gt;&lt;br /&gt;1920 August Sander: 정공법시각 ( Environment Portrait Documantary)&lt;br /&gt;&lt;br /&gt;1930 Walker Evans&lt;br /&gt;&lt;br /&gt;1940 Weege/ Lisette Model&lt;br /&gt;&lt;br /&gt;1950 Robert Frank/ William Klein&lt;br /&gt;&lt;br /&gt;1960 Lee Friedlander/ Gary Winogrand&lt;br /&gt;&lt;br /&gt;1970-80&lt;br /&gt;&lt;br /&gt;● 긍정적시각; 사회성(현실성) +초현실적 환상 Diane Arbus 사회성(현실문제성)+자서전입장 Danny Lyon&lt;br /&gt;&lt;br /&gt;● 이중적시각 ; 사회성+초현실성: Charles Harbutt&lt;br /&gt;&lt;br /&gt;사회성+사진적 환상 Burk Uzzle&lt;br /&gt;&lt;br /&gt;사회성+은유적 상징성:Gilles Peress&lt;br /&gt;&lt;br /&gt;사회성+추상주의적 상징성 Alex Webb&lt;br /&gt;&lt;br /&gt;● 중립적시각 New Topographic; Robert Adams /stephen Shore /Lewis Balt&lt;br /&gt;&lt;br /&gt;● 비판적시각 (주제에대해 비방적,혐오감을 표현) Larry Fink/Mark Goodman/ Chauncey Hare/Larry Clark&lt;br /&gt;&lt;br /&gt;● 냉소적 시각; Nicholas Nixon ;에이즈환자의 인물사진&lt;br /&gt;&lt;br /&gt;&lt;br /&gt;-4-&amp;nbsp; Equivalent흐름 [심상파; 은유적 자기비평]&lt;br /&gt;&lt;br /&gt;(개인적:자서전적,자기분석적] Mirrors(자기탐구), Romantic view(감수성이 주제)&lt;br /&gt;&lt;br /&gt;1900 Stieglitz&lt;br /&gt;&lt;br /&gt;1930 Edward Weston&lt;br /&gt;&lt;br /&gt;1940 Bill Brant&lt;br /&gt;&lt;br /&gt;1950 Minor White :Aperture/ Wynn Bullock&lt;br /&gt;&lt;br /&gt;1960 Jerry Uelsman&lt;br /&gt;&lt;br /&gt;1970&lt;br /&gt;&lt;br /&gt;● 초현실적 현실상황 추구;&lt;br /&gt;&lt;br /&gt;Duane Michals/Ralph Gibson/Mark Cohen/Leslie Krims/ Richard Misrach&lt;br /&gt;&lt;br /&gt;● New color[조형적+다큐멘타리경향]&lt;br /&gt;&lt;br /&gt;William Eggleston/ Joel Meyerowitz/ Jenshel/ Epstein/ Maloney&lt;br /&gt;&lt;br /&gt;&lt;br /&gt;-5-&amp;nbsp; Formalism흐름 (조형파; 조형적인 사진의 새로운 시각추구)&lt;br /&gt;&lt;br /&gt;[표현주의:실험적인 사진;사진이라는 매체 그자체를 탐구하는 사진--시카코파; 화가겸 사진가 ]&lt;br /&gt;&lt;br /&gt;1930 New Bauhaus: Morholy Nagy{New vision],Man Ray&lt;br /&gt;&lt;br /&gt;1950 Harry Calahan/Aron siskind&lt;br /&gt;&lt;br /&gt;1960 Emmet Gown&lt;br /&gt;&lt;br /&gt;1970-80 비사진적 사진경향&lt;br /&gt;&lt;br /&gt;● 조형사진 ;시각적 인식추구&lt;br /&gt;&lt;br /&gt;Tomas Barrows/Jen Groover/Eve sonneman/Frederick Sommer&lt;br /&gt;&lt;br /&gt;● 초현실적 시각의 발견에 의한 조형적 인식의 작업&lt;br /&gt;&lt;br /&gt;Robert Heineken/John Wood/RayK.Metzker/Charles Gill/Donald Blumberg&lt;br /&gt;&lt;br /&gt;● 허구사진[construstion] ;비사진적 경향&lt;br /&gt;&lt;br /&gt;Cindy Sherman/Bernard Faucon//Lucas Samaras/David Hockney&lt;br /&gt;　&lt;br /&gt;-6-&amp;nbsp; New Documentary, Bauhaus Surrelism, Post-modernism&lt;br /&gt;&lt;br /&gt;&lt;br /&gt;-7-&amp;nbsp; 은유적 Documentary -사회비평주의-&lt;br /&gt;&lt;br /&gt;&lt;br /&gt;● 로버트 프랭크의 영향&lt;br /&gt;&lt;br /&gt;1950년대는 유진스미스의 포토저널리즘을 기반으로하는 Picture story형식의 휴먼 다큐멘타리사진과 카르테 브레송의 서정적 다큐멘타리사진의 결정적 순간의 미학이 사진표현의 일반적인 착상을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lt;br /&gt;&lt;br /&gt;㉠ Robert Frank: 로버트 프랭크는 기존의 사진과 다른 구습타파적인 작품을 발표해 1950년대 부터 일기 시작한 영상사진의 새로운 길을 제일 먼저 닦은 현대 사진의 기수가 되었다. 이것은 당시 순수사진(Pure Photography)라 불리우던 가장 사진적인 표현양식과 일맥상통하는 표현방법이었다. 일찌기 Pure Photography는 주로 에드워드 웨스턴과 안셀 아담스에 의해 대표 되었으며 50년대 중반에는 마이너 화이트가 계승했다. 웨스턴 계열의 Pur Photography는 카메라 렌즈.필름.현상방법 등이 모두 이용되었으며, 주제는 주로 자연이었고 사회분석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한 순전히 개인적인 표현방법을 강조했다. 그러나 프랭크의 ‘The Americans’ (1959) 사진은 서구문명을 지탱해주는 이성,기술,진보라는 세개의 기둥 대한 신념의 상실에서 오는 비관주의, 부정주의와 새로운 스타일의 결합을 통해 사회관찰자의 내용을 담고 있다. [The Americans]는 미국사회에 대한 명쾌한 비평적 사진적 시각(Camera Eye)을 보여 주었다. 기계문명 속에서 자아상실이 가져오는 현실감을 보여 주었고 Out sider의 획기적 새로운 시각을 통해 미국의 고도의 물질 문명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가의 상황을 영상화 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 .&lt;br /&gt;&lt;br /&gt;㉡ William Klein: 윌리엄 크라인은 프랭크와 동시대에 동일한 주제로 현대사진을 이끌었다. 그의 사진집 New York(1956)은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 주기위해 현대 도시인의 인간성 상실, 소외감을 표현했다. 도시의 충격적 영상을 보여 주었다. 프랭크와 크라인의 그의 자유로운 기법은 단지 기법을 위한 기법 실험이 아닌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Out Focus된 인물 ,거칠은 입자, 극단적인 명암차, 구도형식 무시와 같은 이러한 반사진적인 시도는 -사진의 시각적 전달 기능의 확장, 사진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lt;br /&gt;&lt;br /&gt;㉢ Walker Evans: 로버트 프랭크의 시각은 워커에반스의 시각과 에반스가 미국문화가 광고로 뒤덮힌 상업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현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상징적 언어로 발전 시킨 것이라고 볼 수있다. 워커에반스는 1930년대 다큐멘타리 사진의 예술적인 새로운 미학을 이룩했다. 그의 사진적 특징은 조형적 공간성 (스티글리치의 조형적 요소)와 시적인 감정이입 (앗제의 감정적 요소)와 사실적인 현장감(브래디)을 통일 시킴으로서, 미국의 토착 문화에 대한 보기 만을 추구했다. 기성체계의 숨겨진 구조를 판독하기 위해 문화의 대중적 선언과 상징(새로운 것과 낡은 것, 순수한 것과 상업적인것)을 보여 주었다.&lt;br /&gt;&lt;br /&gt;㉣ Lee Friedlander: 프랭크에 영향을 받은 리프리랜더는 반영된 영상, 무너진 호텔방들을 가진 그의 작품집 ‘Self Portait’(1970)을 발표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 주어 덜 급진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 로버트프랭크의 시각(1인자 관점)을 바탕으로 치밀한 계산에 의한 사진적 중첩 이미지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관점으로 발전 시켰다. 다른 입장에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봄으로서 그의 소제의 다중적 관점(Image]은 근대 사진의 시공간의 문제, 원근법의 문제, 시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lt;br /&gt;&lt;br /&gt;㉤ Garry Winogrand: 게리위노그랜드 는 광각렌즈와 빠른 셔터 속도와 플래시 또는 빠른 셔터속도와 플래쉬의 겸용에 의존하는 스타일, 기울어진 카메라 앵글, 복잡하고 다중심구조적 행열, 생동하는 인물들이 특징인 스타일을 개발했다. 육안과 카메라의 눈 사이에 공통적 이면서도 이질적인 시각적 특성을 교묘하게 구사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표현하여 분석적이고 조직적인 지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lt;br /&gt;리프리랜더와 게리위노그랜드 이두 사진가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능보다는 사진의 표현적 기능을 강조하는 듯하다.&lt;br /&gt;&lt;br /&gt;㉥ Diane Arbus: 다이안 아버스는 70년대 뉴다큐먼트사진을 보여 주었던 사진가였다. 그녀는 이색적으로 불구자나 기형적인 인간을 통해서 초현실적인 환상과 냉엄한 현실감을 조화 시켜서 독특한 사진 스타일 개척했다. 그녀는 그당시 사회에서 장애인, 게이나 나체주의자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해왔던 소외된 비정상인(Abnormal)을 본인이 그들의 입장에서 (Abnormal) 을 가족이나 친구의 입장에서 보았다. 정상인이 비정상인을 보는 동정,센티멘탈한 감정이 아니다.비정상적이 사람들 우리가 비정상인이 되서 바라보면 정상인이라는 상징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lt;br /&gt;&lt;br /&gt;㉦ Danny Lyon: 데니라이온은 주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한 복판에 뛰어들어 삶의 진실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저널리즘 입장(객관적 입장)이 아닌 한장소에 같이 들어가서 생활하면서 촬영하였다. 그의 사진은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입장에서 접근해 보여 주었다.&lt;br /&gt;&lt;br /&gt;㉧ Charles Harbutt: 게리위노그랜드와 리프리랜더오 같은 흐름을 이어받은 찰스하버트는 포토저널리즘의 사회적 기록성과 자기의 내면세계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중적 시각을 추구한다. Charles Harbutt의 이상은 사진과 대상이 똑같이 충분히 경험될 수 있다는 일종의 이중 확실성이다. 그의 사진집 &quot;여행기&quot; (Trarelog, 1973)에서 네개의 분야-세상, 육체, 악마, 가정-에서 그는 외부향적인 사진과 직관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사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 Burk Uzzle: 그의 Magmum Photo의 동료인 버크 어즐(Burk Uzzle)은 주관적인 사회비평에서부터 사진적 환상에 깊이 몰두한다.&lt;br /&gt;&lt;br /&gt;㉥ Bruce Davidson: 또다른 마그남 동료중의 한사람인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dson)도 포토저널리즘 시장이 변하고 축소된 탓으로 그자신의 흥미를 고전적인 대형카메라 사진테크닉을 통해 뉴욕 동쪽 할램가의 흑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인물사진을 전통적인 포즈를 취해 촬영한 &quot; East 100th Street&quot;(1970) 라는 작품집을 출간 함으로서 포토스토리적인 포토저널리즘 형식과 결별했다.&lt;br /&gt;&lt;br /&gt;㉦ Stephen Shore: 스테판 쉐어의 &quot; New Color New work&quot; 은 칼라가 미의 추구(장식적)가 아니라 흑백과 같이 평범한 삶의 진실을 깊이 있고 다양하게 다루었다. 더 자연색인 칼라로 새로운 자아 발견하려고 시도하였다.&lt;br /&gt;&lt;br /&gt;㉧ Alex Webb; 하버트의 착상을 흡수한 80년대 사진가중에 알렉스 웹 [Alex Webb]가 있다. 대체로 촬영의뢰를 받고 제작된 그의 사진은 그가 개인적이며 감각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주제(이민온 노동자, 멕시코의 창녀들, 미시시피의 흑인들)들을 다큐멘타리하며 또한 사진가의 추상주의에 대한 그의 시대적 감각을 보여주고있다.&lt;br /&gt;움직임이 있는 장면 (Action Shot)을 중요시 여기는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구성에 있어서 자유방임적인 접근을 한 다큐멘타리스트들은 아마츄어라고 치부해왔던 사진적 형식인 서투른 제스츄어나 정리되지 않은 구성을 신중하게 채택 했을때, 그 자체가 하나의 표현방법이 될 수 있는지를 스냅숏(Robert Frank의 선구자적 작업)으로부터 발견하여 1960년대 부터 촬영해 나간 Garry Winogrand 나Lee Friedlander와 같은 사진가들의 부류들은 결과적으로 화면이 기울어지고, 손발이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의해 잘려지며, 주요인물의 분위기는 모순적이고 애매모호하며 또는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 받은 80년대 사진 가들로는 Mary Ellen Mark, Eugene Richards, James Nachtwey, Gill Persess, Jea Gaumy, Paul Higdon등이 있다.&lt;br /&gt;그러나 인물과 장소의 분위기가 함께 맞아 떨어지면서 철저하게 계산되어있는 치밀한 구성과 더불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미지로 프레임을 어떻게 따내는가에 대한 전통적인 관습으로 전해오는 앙 리까르띠에 브레쏭, 유진스미드, 도로디랭의 전통은 으제프 쿠델카등에 의해 계승되어 오고 있다. 80년대의 작가들로는 Alon Reinirger, Sebastiao Salgado, Jean-Marie Simon, Alex Webb, Susan Meiselas&lt;br /&gt;&lt;br /&gt;&lt;br /&gt;2&amp;nbsp; 바우하우스 시카코파 (Bauhaus)&lt;br /&gt;&lt;br /&gt;1950년대말부터의 기계의 사용은 많은 나라에서 인간의 물질적인 환경을 바꾸었고 예술의 개념또한 점차 바뀌어 갔다. 1919년 4월 Walter Gropius의 선언이 시발점이 되어 Weimar에서 최초로 설립된 디자인 School 인 Bauhaus는 Weimar, Dessau, Berlin, 미국시카코(Chicago)시대에 걸쳐 건축, 디자인, 사진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lt;br /&gt;&lt;br /&gt;Bauhaus의 기본 이념은 건축을 중심으로 모든 미술활동이 종합하여 회화, 조각, 건축이 일체가 되는 종합예술을 창조하는 것과 미술의 기초는 손재주에 있기 때문에 미술가는 모두 수공예로 되돌아가야 한다 것이다.Bauhaus는 교수진이 공작교사와 형태교사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교사에는 그로피우스외에 칸딘스키, 클레, 파이닝거, 쉬렘어, 모호리나기등이 있었고 각각 벽화, 유리화, 인쇄, 조각, 금속등을 담당했다.&lt;br /&gt;&lt;br /&gt;독일의 바우하우스가 미국의 시카고로 옮겨진 이 조류의 특징은 탐구적 정신과 시각의 확대이다. 모홀리나기는 미국 콘테이너 회사의 후원을 얻어 뉴 바우하우스를 창설하고 Harry Callahan 과 Aron Sisking로 이어졌으며 이들은 추상주의 표현의 작업을 하였다.&lt;br /&gt;&lt;br /&gt;형태, 구조, 면 등에 대한 소위(제1원칙)들을 연구하였다. Institrate of Desine은 Bahara Blondean, Barbara Crane, Joseph Jachna, Kenneth Josephson, Ray K.Metzker, Art Sinabangh, Chales Tranb등의 사진가를 배출한 시카고의 유일한 사진활동의 중심지였다. 레이메츠커는 모홀리 나기의 light modlator 를 연상시키는 cut paper relief, 명암대비, 형태추구했다. Chicago파사진가로는 William Larson, Robert Heinecken, David Hockney, Jo Ann Callis, Gyorgy Kepes등이 있다.&lt;br /&gt;&lt;br /&gt;&amp;lt;바우하우스의 계보&amp;gt;&lt;br /&gt;&lt;br /&gt;Bauhaus Weimar(1919~1925)&lt;br /&gt;&lt;br /&gt;Bauhaus Dessau(1925~1932)&lt;br /&gt;&lt;br /&gt;Bauhaus Berlin(1932~1933)&lt;br /&gt;&lt;br /&gt;New Bauhaus(1937~1938)&lt;br /&gt;&lt;br /&gt;Chicago Design 학교(1939~1944)&lt;br /&gt;&lt;br /&gt;Design 연구소(1944~1949)&lt;br /&gt;&lt;br /&gt;일리노이 공학대학(I.I.T)(1949~)&lt;br /&gt;&lt;br /&gt;&lt;br /&gt;2-1:형식주의&lt;br /&gt;&lt;br /&gt;형태, 공간, 위치, 색채라는 문제에 대한 다중화면사진의 Jan Groover는 John Bolclessary나 Williams Wegman같이 사진을 이용하는 Comceptualism화가들과도 다르며 전통적인 사진가들과도 다르다. 다중화면 작품을 추구하는 일부 사진가들도 회화와 사진 사이의 차이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lt;br /&gt;&lt;br /&gt;20년 이상 흑백사진에서 시바크롬(Cibachromne)으로 다시 Sx-70으로 진전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Eve Sonneman과 트립티크 방법으로 심비스러운 흑백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Mark Feldstein은 뉴욕에 있는 Castellin Graphies에서 사진용 배경막을 잘라서 여러가지 조명을 비추어주는 방법으로 커다란 Color diptych를 전시했다. 이 두화랑은 사진과 회화, 조각, 판화와 같이 서로 다른 매체 융합시키려고 노력했다.&lt;br /&gt;&lt;br /&gt;톰 바로우(Tom Barrow)는 사진 밖의 사물을 제시하는 구상적 요소라고 정의되는 도상표상법 iconography과 구상표현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Form사이에서의 결합을 꾀한다.‘Product News’,‘Trivia 2’의 소비문화적 양상과‘Cancellations’, ‘Plate Varicant’ 는 평면과 공간의 연결의 작품들을 통해 형식주의 방법과 기호의 결합을 연구하였다.&lt;br /&gt;&lt;br /&gt;2-2: New Topographics&lt;br /&gt;&lt;br /&gt;Nicholas Nixon의 ‘New Topographics:Photographs of a man Alotered Landscape (새로운 지형학적 사진 7인간에 의해 변형된 풍경)’이란 전시회는 Willams Jenkins의 말처럼“최소한의 왜곡”과 “중립적인 외관”을 가진 당대의 풍경을 표현하는 9명의 사진가 - Robert Adams, Lewis Baltz, Bernd and Hilla Becher, Joe Peal, Frank Gohlke, Nicholas, Nixon, John Schott, Stephen Shore, Henry Wessel-들의 장소적 시각활동과 프랭크 일파의 Snapshot사진미학을 구별시킨다.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 의 &quot;New Topagraphics&quot;전시는 남북 전쟁시 풍경사진(1900년대)을 재현해 자연을 중립적 입장에서 본다. 사람이 찍은 풍경이 아니라 카메라가 찍은 풍경, 전혀 무의미하게 보이나 중립적 관점에서 대상을 관찰-기록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인 사진의 새로운 경향으로 30년대 F64그룸의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주로 자연과 사회적 풍경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치우침이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파악하기 위해 심미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다만&lt;br /&gt;대상을 단순히 제시할 뿐이다.&lt;br /&gt;&lt;br /&gt;&lt;br /&gt;● 초현실주의(Surrelism)&lt;br /&gt;&lt;br /&gt;초현실주의자들은 몽환적 이미지로서 은유적, 상직적의미를 제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정신분석적 방법을 도입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이끌어 내어 우리의 지각영역을 보다 넓히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시각의 확장이라는 발견적 측면에서의 ‘New Vision’의 수용이었다. 그들의 비일상적 초월적 세계의 추구이념은 사진의 과학적 기능에 의해 형성된 영상이 인간의 의식권을 넘어선 단계에 다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함으로써 사진을 그들의 표현세계에 도입한 것이다.&lt;br /&gt;&lt;br /&gt;초현실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의식을 확대하는데 있다.&lt;br /&gt;&lt;br /&gt;따라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제작 방법은 현실의 정확한 reality의 파악에서 부터 시작된다.&lt;br /&gt;&lt;br /&gt;듀안 마이클스는 photo sequence로 사진의 시간성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초현실적 문제에 접근했고, 제리율스만은 현실적 이미지를 몽타쥬함으로서 시.공간 개념을 통합하였고 즋 랄프 깁슨은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포착함으로서 선택적 프레임안에 초현실세계를 구축하였고 레스리크림스는 대상자체를 현실적으로 조작하여 연출에 의한 픽션적 초현실세계를 추구하고 있다.&lt;br /&gt;&lt;br /&gt;다다의 선언문 발표를 뒤이은 아드레 브르통의 1924년‘초현실주의 선언문’은 꼴라쥬 작품’두명의 어린이가 꾀꼬리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음’의 작가 즎 막스 에른스트, ‘레이요 그램’이라고 불리는 사진기법의 자동기술법 창안자인 즏 만 레이와 더불어 초현실주의 그룹은 그 이후로 조형 미술적 발전의 최고도에 이르게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꼴라쥬나 오브제를 독특하게 사용했다. 일례로 만레이의 ‘회전문’은 첫번째 꼴라쥬 작품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는 권총을 이용한 그림, 포토그램(photogram)사진과 영화로 두각을 나타냈고, 로베즈 테스노스의 시나리오로 제작된 초현실주의 영화의 첫작품으로 꼽히는 ‘불가사리(1927)’나 ‘주사위성의 신비’등이 그 영화들이다.&lt;br /&gt;&lt;br /&gt;또한, 오브제의 문제역시 초현실주의자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살바도로 달리가 여섯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서 만든 초현실주의적 오브제의 목록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lt;br /&gt;&lt;br /&gt;1. 상징적 기능을 가진 오브제 (자동 기술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 쟈코메티의 ‘매달린구체’ 따위&lt;br /&gt;&lt;br /&gt;2. 실체변이적 오브제(감정적 기원)달리으 ‘몰라몰랑한 시계’&lt;br /&gt;&lt;br /&gt;3. 감정투사의 오브제(몽상적 기원)&lt;br /&gt;&lt;br /&gt;4. 감싸인 오브제(낮의 환상)&lt;br /&gt;&lt;br /&gt;5. 기계 오브제(실험적 환상)&lt;br /&gt;&lt;br /&gt;6. 주물 오브제(반수상태의 기원)&lt;br /&gt;&lt;br /&gt;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나타난 Duane Michals, Ralph Gibson, Leslie Krims등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초현실주의 회화작품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적 사진이라고 불리우며 이들은 또한 프로이드의 심리학과 예술에 있어서의 개념주의(Conceptualism)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튜안 마이클즈는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소실, 고독, 죽음, 성)에 랄프 깁슨은 스타일과 형식에 집중, 크레스리 림즈는 개인적인 시미리의 양상을 표현했다.&lt;br /&gt;&lt;br /&gt;Self-descriptive (자기기술적), 심리적인 사진의 조류는 미국내에서 토착적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대상을 표현한다기 보다 스티글리츠, 폴 스트랜드, 웨스톤, 마이너 화이트에 이른 사진가들의 사진의 내부상태를 상징하는 등가물(equivalent)을 표현하기를 택한다.&lt;br /&gt;&lt;br /&gt;? 마크코헨(Mark Cohen)의 독특한 스타일-플래쉬를 써서 근접해 있는 주제들을 배경과 분리시킴으로써 그 주제를 선택하며 그는 자기의 잠재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형체가 분리된 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뒤엉킨 혼돈상태로 나타낸다.&lt;br /&gt;&lt;br /&gt;&lt;br /&gt;3&amp;nbsp;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lt;br /&gt;&lt;br /&gt;60년대 말을 정점으로 이루어진 대중소비문화시대의 도래로 나타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1970,80년대에 건축을 비롯하여 사진에서 까지 침윤되어 나타난다. 70년대는 다양한 양식과 다양한 개인의 관심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에따라 예술에 있어서의 가치기준도 다원화 되었다.&lt;br /&gt;&lt;br /&gt;포스트 모더니즘의 성격을 규정하는 11가지 카테나(Catena)를 살펴보면&lt;br /&gt;&lt;br /&gt;● 불확실성(Indeterminary)&lt;br /&gt;&lt;br /&gt;● 파편성(Fragmentation)&lt;br /&gt;&lt;br /&gt;● 우상파괴성(Decanonization)&lt;br /&gt;&lt;br /&gt;● 자아의분산(Self-less-ness)&lt;br /&gt;&lt;br /&gt;● 비표현성(Unrepresentable)&lt;br /&gt;&lt;br /&gt;● 아이러니(Irony)&lt;br /&gt;&lt;br /&gt;3-1&amp;nbsp; 교접혼합성(Hybridization)&lt;br /&gt;&lt;br /&gt;3-2&amp;nbsp; 축제놀이(Canivalization)&lt;br /&gt;&lt;br /&gt;3-3&amp;nbsp; 퍼포먼스(Performance)&lt;br /&gt;&lt;br /&gt;3-4 구성주의(Constructionlism)&lt;br /&gt;&lt;br /&gt;3-5 보편내재성(Immanence)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양상을 보인다.&lt;br /&gt;&lt;br /&gt;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사진가의 한 사람인 ㉠ 신디셔먼은 대중전달매체가 투사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모방이라는 전략 자체로 허구적 현실성을 드러나게 한다.&lt;br /&gt;&lt;br /&gt;70년대 이후 많은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진가들은 무대위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매체의 허구성을 비판 관객들의 무의식을 동요시키기 위해 극화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들 작가로는 ㉡ 샌디스코글런드, ㉢ 엘렌브룩스, ㉣ 베르나르 포콩 또한 각각의 개인은 육체와 정신의 균열감에서 꾸며지고 대중사회에서의 역할에 유의함으로써 분열되었음을 보여주는 Self-portrait 사진가들로는 ㉤ 브루스 찰스워즈, ㉥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등이 있으며&lt;br /&gt;&lt;br /&gt;주제와 이미지를 차용했든가 혹은 이미지 하나만을 차용했든가 혹은 이미지 하난만을 차용했든지간에 그들은 복잡하고 추론적인 형태를 나타내며 진품과 모작, 자연과 코드간의 대립이 뒤섞임으로 인한 사진의 기능에 대한 모순을 보여주는 사진가로는 ㉦ 셔리레빈, ㉧ 리차드프린스 등이 있다.&lt;br /&gt;&lt;br /&gt;4-1: 60년대 Pop Art&lt;br /&gt;&lt;br /&gt;팝아트는 광장되고 전형화된 시각전달과 광고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진취적으로 아방가르드 예술의 주류 안에 리얼리티를 다시 반영시켰으며, 특수한 효과를 탐구하는 것과는 다른 미학적 가치를 그러한 이미지에 부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 동안 회화에서 큰힘을 발휘한 미술사조는 액션 페인팅, 서정적인 추상, 움직이는 추상, 타시즘(Tachism) 그리고 그외에도 여러가지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진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ossionism)였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는 재현적인 회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리쳐드 해밀턴 같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들의 영향으로 재등장했다. 추상미술의 배경에서 자라난 이들 예술가들은 우리가 사는 소비사회의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흔적(기본적으로 복제되어 있는 대중출판물과 광고엔 사용되는 사진들의 의미)에 도전하고, 그들의 작품에 그 흔적들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움직일은 다다와 그들의 방법에 다시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여졌다. ‘예술의 곧 인생’이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일상생활에서 계속되는 단편들(과거와는 다른 현대의 평범한 요소들)을 이용해서 행위의 자유와 임의적인 자극에 저항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사진복제는 그것의 이미지가 갖는 가운데 이용되었고 그 가치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브제 (그것이 실물이든 형상화된 것이든간에)에 대한 철저한 의존은 사진적 접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황을 만들었다.&lt;br /&gt;&lt;br /&gt;팝아트가 진실로 비판적 측면을 갖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실크스크린 기법의 발전은 화면을 제작할 때 사진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즇 로이 리히텐스타인과 프랑스의 알랭자케(Alain Jackuet)는 이 기법을 보여주었고 이 기법으로 전환된 이미지의 추상성과 약호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lt;br /&gt;&lt;br /&gt;팝아트는 영화스타나 대중적인 소비상품과 같이 대중매체에 의해 탄생한 대상과 폭넓게 연관되어 있다. 로이 리히텐스타인이 커뮤니케이션에 활용되는 이미지와 약호의 형식에 더욱 관심을 갖고 다룬 반면, 즋 앤디 워홀은 상품과 소비에 의해 강조된 이미지를 가지고 색상의 표현력과 대비의 힘을 체계적으로 탐구했다.&lt;br /&gt;&lt;br /&gt;㉠ 즉각적인 이미지, 폴라로이드-●크링스티안 포크트(1977), ●올리비에로 토스카니(1973)&lt;br /&gt;&lt;br /&gt;㉡팝아티스트들과 신사실주의자들은 삶과 예술을 융합해서 그들 스스로 창조한 실제를 무대에 올리는 이른바 해프닝의 의식을 실행하기도 했다.- ●플로리스 노이쉬스‘열두장으로 구성된 Photogram’1971, ? 이브클랭‘ANT해프닝 106’(1960), ‘ANT 흔적 63번’(1962)&lt;br /&gt;&lt;br /&gt;㉢1968년 이래 신체예술(Body Art)과 대지예술(Land Art)이 삶과 예술을 조화시키려는 욕구는 메시지와 수용자 사이의 어떤 상호증재도 효과적으로 배제한 행위 예술(Behaviour Art)로 구체화되었다. Body Art-? 울프 보스텔‘우르비노의 비너스’ 1976 Land Art-? 찰스 시몬즈(1971), ? 로버트 스미슨스(1970), ? 존팔 ‘삼각형, 버뮤다’(1975), ? 리처드 롱 (1977), ●데니스 오펜하임 (1968), ●크리스토 (1972,76)&lt;br /&gt;&lt;br /&gt;㉤ 하이퍼 리얼리즘-●리처드 에스티스(1970), ●데비드 패리시 (1973), ●프란츠 게르치 (1981), ●게르하르트 리이터, ●말콤 몰리, 즚 척 클로스 등과 같은 다른 예술가들은 사진적인 이미지의 신뢰성과 그림을 그리는 태도의 충실성 사이의 차이를 이용해서 그들 그림의 환상적 한계를 보여 주었다.&lt;br /&gt;&lt;br /&gt;4-2: 70년대 개념예술&lt;br /&gt;&lt;br /&gt;오늘날과 같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모든 토대가 흔들리며 또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예술의 작품에 표현 가능성을 넓혀주고 힘을 줄 수 있는 분석적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예술가에게 더욱 필요하게 되자 사진은 바로 그들에게 가설은 설명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계획된 작업을 성사시키는 최신의 매체가 되었다. 개념예술은 자신들의 의문점을 논의하는 방법으로 인화된 사진을 채용했다. 그 방법이란 사진인 되는 과정의 분석과 사진으로 성립되는 재현의 분석을 함께 결합하는 것이었다. ‘사진이 실물과 같다’라고 하는 ‘신화(myth)’는 사진 이미지로 진행되는 일련의 분석 그리고 이보다 더욱 체계적인 몽타쥬에 의해 폭로됐다. 이러한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한 많은 예술가들 중에는 ▶ 게르데케르스(Ger Dekkers)와 ▶ 헤리베이트 부르케르트(Heribert Burkert)가 있다.&lt;br /&gt;&lt;br /&gt;- 사진의 약호를 조절하는 실험을 통한 시공간의 자각.&lt;br /&gt;&lt;br /&gt;㉠▶ 얀 디베츠1980, ▶ 로저 커트포스1978, ▶ 존 힐리야드 1980)&lt;br /&gt;&lt;br /&gt;㉡ 시간의 이미지와 문장(text)을 결합시킨 Story Art, Narrative Art (▶ 듀안 마이클1978, ▶ 요헨 게르츠1976)&lt;br /&gt;&lt;br /&gt;㉢ 내적 세계의 주관적인 경험을 약호에 지배되는 수단으로&lt;br /&gt;표현 ( ▶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1976, ▶ 주세페 페논 1973, ▶ 길버트와 조지 1980, ▶ 요제프 보이스 1967, ▶ 미셀 자자 1975, ▶ 우르스 뤼티 1976)&lt;br /&gt;&lt;br /&gt;㉣ ▶이반 라디슬라프 갈레타 1976, ▶세리프 드프라위 1981, ▶클라우스 링케 1972, ▶바르바라 라이스겐, ▶미하엘 라이스겐 1975, ▶미하엘 바두라 1969, ▶제임스 볼린스 1979, ▶미셀 고데 1980, ▶카렐 발트 1981&lt;br /&gt;6&amp;nbsp; 기호상징체계에 의한 사진분석&lt;br /&gt;&lt;br /&gt;&lt;br /&gt;-1-&amp;nbsp; 기호상징에 의한 미적근거&lt;br /&gt;&lt;br /&gt;도형중에서 논리구조가 가장 복합하고 미묘한 것은 예술작품이다. 보통 예술은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상징으로서의 논리구조가 복잡해서 그렇게 간단하게 분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미술이든 문예든 음악이든 모든 일정한 컴퍼지션을 갖고 있다.&lt;br /&gt;&lt;br /&gt;이렇게 상징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의 배치유형, 즉 논리구조 위에 성립하는 기호이다.&lt;br /&gt;&lt;br /&gt;referent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지만 reference는 해석자의 두뇌속에 형성된 가상의 관념적 존재이다.&lt;br /&gt;&lt;br /&gt;모리스는 언어에서의 상징이 그 논리구조에 의해 객관적으로 어떠한 의미표시 방식을 취하는가 하는 점과 관련하여,&lt;br /&gt;&lt;br /&gt;● 지시적 형태(designative mode)&lt;br /&gt;&lt;br /&gt;● 평가적 형태(appraisive mode)&lt;br /&gt;&lt;br /&gt;● 명령적 형태(perscriptive mode)&lt;br /&gt;&lt;br /&gt;● 형식적 형태 (formative mode)라는 네가지 페턴을 들고 있다.&lt;br /&gt;&lt;br /&gt;진술은 “이것은 개다”와 같이 대상의 성질이나 상태를 서술적으로 나타내고 평가는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감탄문과 같이 우선적으로 있는 사물을 평가하는 주관적 태도를 표현하며 명령은“창문을 열어라”와 같이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명령을 나타내며 형식적 형태는 “귤과 사과”라고 할때의 ‘과’라든가 2x(3+4)에서 x,( ),+와 같은 언어의 문법적 구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언어상징의 논리구조에 관한 네 형태 페턴과 나란히 다음으로 그 용법(기능)을&lt;br /&gt;&lt;br /&gt;● 고지적 용법(informative use)&lt;br /&gt;&lt;br /&gt;● 가치적 용법(valuative use)&lt;br /&gt;&lt;br /&gt;● 유발적 용법(incitive use)&lt;br /&gt;&lt;br /&gt;● 체계화 용법(systemic use)이라는 네가지 기능페턴으로 구분한다.&lt;br /&gt;&lt;br /&gt;고지적 용법이란 대상을 객관적으로 진술하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고 가치적 용법이란 어떤 사용물에 대한 우선적 태도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며, 유발적 용법이란 특정행동을 유발시키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고, 체계화 용법이란 특정행동을 조직화 기키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구조와 기능을 조합하여 언어로서의 상징을 아래와 같이 분류한다.&lt;br /&gt;&lt;br /&gt;[카시러 라깡처럼 상징을 언어적 상징과 비언어적 상징으로 구분하여 전자에 약정적 개념 표현을 후자에 감정 표현으로 구분한다. 고지적 용법에 의한 개념표현과 가치적 용법에 의한 감정 표현의 두가지 기능을 가질 수 있다.]&lt;br /&gt;&lt;br /&gt;[예술작품으로서의 장싱이 우선적으로 감정표현의 기능을 갖는것은 그것이 문법이나 의미상의 약속적 규칙에 의해 객관적 개념표시를 하는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치적 용법의 우선적인 힘은 예술상징의 논리적인 약정 형태에 “변형”이라는 형태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냉정한 객관적인 개념적 이미지가 예술가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감정적 이미지에 의해 주관적 수식을 받아. 그 결과가 작품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lt;br /&gt;&lt;br /&gt;[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진위가 문제될 뿐이지만 예술적 표현에서는 이러한 진위의 검정기준을 넘어서 미적가치가 문제 되는데, 이처럼 가치로서 파악된 예술 작품에서는 오히려 감정표현 기능에 의해 정확성이라는 정상적인 객관적 기준으로 부터 이탈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lt;br /&gt;&lt;br /&gt;(이러한 변형은 미적부정이라는 말로 할 수 있다.)&lt;br /&gt;&lt;br /&gt;이리하여 예술독자의 변형이 생겨 난다. 이와같은 수사적 표현을 강력하게 나타내는 것으로서 다다이즘이 있다. 그것은 예상을 뒤엎는 완전히 새로운 비정상적인 연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더러운 변기가 미화된 환경에 배치되어 예술작품으로서 이체를 띄게 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또 실존주의 문학에서는 고의로 부조리한 줄거리가 설정되며, 구체예술에서는 일상세계에서 정상적인 의미를 가진 모티브의 반의미적 우연에 의한 구상이 시도된다.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현대의 반예술이라 불리는 예술에서는 이미지 그 자체를 해체하기도 한다.&lt;br /&gt;&lt;br /&gt;[수평수직관계 혹은 조밀하거나 느슨한 배열 형태의 열린 혹은 닫힌 위상학 그것들의 안팎의 맥락적 배치, 나아가 색체나 농담으 상태나 바탕과 도안의 도구]&lt;br /&gt;&lt;br /&gt;세계가 X1,X2......Xn이라는 기호요소(레퍼토리)로 구성되어 있고, 그 구성규칙(컴퍼지션)이 F로 표시된다면 우리으 기호세계(W)는 라는 관계에의한 이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lt;br /&gt;&lt;br /&gt;W=F(X1, X2......Xn)&lt;br /&gt;&lt;br /&gt;고유의 구성요소 + 구성규칙&lt;br /&gt;&lt;br /&gt;A라는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기호. B라는 예술가가 만들어 내는 기호. 등 어떠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확률은 크다.&lt;br /&gt;&lt;br /&gt;이 세계의 불확실성은 세계를 구성하는 기호 요소와 컴퍼지션에 조합될 가능성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기호세계가 가장 간단히 2종류의 레퍼토리(X1과X2) X1:X1, X1:X2, X2:X1, X2:X2라는 4개의 실현 가능성을 갖는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정보용량&lt;br /&gt;&lt;br /&gt;커뮤니케이션에서 수신자는 받아들인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에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정보를 수용하여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수신자가 K종류 기호열의 레퍼토리를 단위시간 내에 L개 까지 수용(판독) 할 수 있다고 하면 2개의 정보량(C)는 다음과 같다.&lt;br /&gt;&lt;br /&gt;C=LlogK&lt;br /&gt;&lt;br /&gt;정보는 송신자가 예정한 것으로서 이것을 ‘객관적 정보’ 라 부른다면 수신자가 기대하는 정보를 ‘주관적 정보’라 한다.&lt;br /&gt;&lt;br /&gt;이 주관적 확률은 수신자가 전언 기호열의 출현에 대한 심리적 기대치이다.&lt;br /&gt;&lt;br /&gt;지금 다음과 같은 전언이 주어 졌다고 하자. 문자 아래의 숫자느 그 추측이 실패한 횟수를 가르킨다.&lt;br /&gt;&lt;br /&gt;JEDER(31) SITOATION(311) GENAU(322) EINE(2) WIRKLICHKEIT(22) WIRD&lt;br /&gt;&lt;br /&gt;여기에서 전언을 구성하는 문자는 45개, 실패회수는 22회이다. 하나의 문자를 할당하기 위한 가지선택의 수는 5회이기 때문에 전체전언의 문자 특정과 관련한 가지선택의 회수는 총 5x45 =225회 이다. 그렇다면 각가지 선택의 실패율은 22/225=0.098일 것이다.&lt;br /&gt;&lt;br /&gt;실패율(0.098)로부터 수신자의 주관적 정보 0.33비트가 얻어지고 한문자 마다의 주관적 정보량은 0.33x5=1.65비트가 된다.&lt;br /&gt;&lt;br /&gt;피 실험자를 수신자로 하는 전언의 주관적 정보량을 표시 하면, 송신자의 입장에서 본 객관적 정보와 구별하여 주관적 정보를 고찰하는 것은 수신자가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는 기준을 부여하는 것이며 작품의 가치(좋음)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lt;br /&gt;&lt;br /&gt;감정표현은 변형과 함께 그 필여성을 예술적으로 납득시키는 매체조작이 극히 중요하다.&lt;br /&gt;&lt;br /&gt;이렇게 할때 비로서 예술가가 표현하려는 감정의 이미지가 작품을 매개로 수용자에게 전달될 수가 있다. 감정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해도 예술의 변형된 구성속에 객관화되는 것은 활성화 되지 않은 가상적인 보편적 감정의 의미이며 그것은 실제로 대중에게 체험되기 이전의 작품에 내제하는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lt;br /&gt;&lt;br /&gt;예술의 상징구조 속에 숨어 있는 이런 가능성의 의미를 실현에 의해 실제로 감각적으로 구체화하여 대중의 마음에 진정한 감동을 유발시키는 것이야 말로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다. 결국 예술작품은 다른 상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반응을 유효적절하게 하는 수단으로서 단순히 자연을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데엔만 머무르지 않고 표현하려는 바를 대중에게 호소하여 그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에게 교양을 주는 효능을 가져야 한다. 상징의 이와 같은 실천적 기능을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의미에서 예술 작품은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된다.&lt;br /&gt;&lt;br /&gt;예술작품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것일까?예술작품이란 작가 예술적 전언을 물적 매체에 의해 직관적으로 구체화한것이다.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작과정은 예술가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서 지탱된다. 이러한 행위는 턴재적 재능이나 고도의 숙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자연현상고 같이 결정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관해서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요인을 배태한 불확정적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예술의 묘미이며 일률적인 법칙에 지배되지 않으며 인간의 자유로운 행동으로서 나타난다.&lt;br /&gt;&lt;br /&gt;기호정보를 몰은 그 하나는 의미정보(information semantique) 다른 하나를 미적정보(information esthetique) 라고 부르고 있다. 의미정보는 논리구조에 의해서 명료한 의미표현을 하고 수신자에게 지식을 전달 한다. 그에 반해 미적 정보는 특정의 해석자에만 고유의 레퍼토리를 갖기 때문에 번역이 불가능 하고, 그 컴퍼지션은 우연한 부호의 유회에 탐지되어 수신자에게 어떤 종류의 정서적 반응을 불러 일으키려 한다.&lt;br /&gt;&lt;br /&gt;&lt;br /&gt;● 기호 상징 체계에 의한 사진분석&lt;br /&gt;&lt;br /&gt;시각 예술인 미술고 사진에서의 논리구조 즉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함으로서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분석이 좀 더 객관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요될지는 좀 더 많은 연구 작업이 필요하다.시각언어의 문법적 구성은 크게 미적 정보와 의미정보라는 측면에서 분석해 보자.&lt;br /&gt;작가의 미적 체엄으로 형성된 미적지각으로 표현된 일정한 방식을 미적정보라 하고 화면안에 담고 있는 figure관념적 의미 판단을 의미정보라 한다.&lt;br /&gt;&lt;br /&gt;&lt;br /&gt;● 미적 정보의 분석&lt;br /&gt;&lt;br /&gt;㉠ Figure의 Tone분류(Low, N, High)&lt;br /&gt;&lt;br /&gt;㉡ Figure의 조형요소(점, 선, 면)&lt;br /&gt;&lt;br /&gt;㉢ 심도단계(얕다← N→ 깊다)&lt;br /&gt;&lt;br /&gt;㉣ Ground(단수, 복수, tone depth)&lt;br /&gt;&lt;br /&gt;㉤ Figure의 Ground에 면적비 (%)&lt;br /&gt;&lt;br /&gt;㉥ Figure의 상한위치(Ⅰ Ⅱ Ⅲ Ⅳ )&lt;br /&gt;&lt;br /&gt;㉦ Figure의 방향정 각도( Ⅰ↗ Ⅱ↖ Ⅲ↙ Ⅳ↘ ↔ ↕ )&lt;br /&gt;&lt;br /&gt;㉧ Visual Angle( 상좌 ↑ ← , 하좌 ↓ ← , 상우 ↑ → , 하우 ↓ →, 상 ↑중 ↔ 하 ↓ )&lt;br /&gt;&lt;br /&gt;㉨ 사선 이미지&lt;br /&gt;&lt;br /&gt;㉩ Figure의 수 (1, 2, 3, 다수)&lt;br /&gt;&lt;br /&gt;㉠ 그외...&lt;br /&gt;&lt;br /&gt;&lt;br /&gt;● 의미 정보의 분석&lt;br /&gt;&lt;br /&gt;㉠ 중심 Figure의 의미&lt;br /&gt;&lt;br /&gt;㉡ 배경과 Figure의 연관성&lt;br /&gt;&lt;br /&gt;㉢ 제 1 Figure + 제 2 Figure 효과&lt;br /&gt;&lt;br /&gt;&lt;br /&gt;● 사진은 구체적 형상으로부터 추상성으로 전개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예술이다. 다음은 일상적 의미와 개념적 의미를 알아보자.&lt;br /&gt;&lt;br /&gt;㉠ 일상적인 주제를 일상적인 표현기법으로 전달(브르스 데비슨)&lt;br /&gt;&lt;br /&gt;㉡ 일상적인 주제를 개념적, 추상적 표현기법으로 전달(난 골딘, 메플도프)&lt;br /&gt;&lt;br /&gt;㉢ 개념적인 주제를 일상적인 표현기법으로 전달(에머트 고윈)&lt;br /&gt;&lt;br /&gt;㉣ 일상적인 주제를 개념적, 추상적 표현기법으로 전달(데비드 호크니,요셉코주드) &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26 May 2010 03:43: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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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시#D, 알렉스 웹(Alex Web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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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여행, 사진 프로젝트 - Chapter 2. 전문작가 별, 예시 #4&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알렉스 웹(Alex Webb)누구?&lt;/span&gt;&lt;/strong&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간략하게 그를 소개한다면 웹은 매그넘 소속사진가이며, 이전 사진경력으로는 사진기자에 해당되는 일을 해 왔다. 지금은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사진가라기 보단 포토 다큐멘터리/여행사진가에 가깝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워낙 유명한 사진가라~ 그의 프로필을 일일이 꺼내서 열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간략하게 그를 표현한다면 여행을 통해 제3국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생활상을 담아내는 생활사진가라 할 수 있다. 또한 웹은 미국에서 일어난 뉴 다큐멘트 사진경향의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경향은 당시 사진판이 보도/전쟁 저널리즘사진으로 정점에 올랐던 시기이며 그런 기존에 사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자 비관/회의적인 입장을 들어내는 경향이며, 가장 미국다운 것 우리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전재가 깔려있다.(참고:&lt;/span&gt;&lt;a class=&quot;con_link&quot; href=&quot;http://blog.naver.com/kardsim/10075486979&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b0a2&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적인 은유&lt;/span&gt;&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개인적인 것) 그 시기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도 사회분위기가 혼란스러운 격동기의 시기이기도 하다.&lt;/span&gt;&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id=&quot;20100427_246/kardsim_1272361834315qLeIo_jpg/par112447_kardsim.jpg&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eight=&quot;329&quot; src=&quot;http://postfiles7.naver.net/20100427_246/kardsim_1272361834315qLeIo_jpg/par112447_kardsim.jpg?type=w2&quot; width=&quot;505&quot; /&gt;&lt;br /&gt;&lt;span class=&quot;Value&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HAITI. Cite Soleil. 1986. / &lt;/span&gt;&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Copyright &lt;/span&gt;&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Alex Webb/Magnum Photos&lt;/span&gt;&lt;span class=&quot;Value&quot;&gt;&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id=&quot;20100427_191/kardsim_1272368093806D9bwt_jpg/nyc28151_kardsim.jpg&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eight=&quot;332&quot; src=&quot;http://postfiles16.naver.net/20100427_191/kardsim_1272368093806D9bwt_jpg/nyc28151_kardsim.jpg?type=w2&quot; width=&quot;505&quot; /&gt;&lt;br /&gt;&lt;span class=&quot;Value&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TURKEY. Istanbul. 2001. Bus stop in Bostanci.&amp;nbsp; / &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Copyright &lt;/span&gt;&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Alex Webb/Magnum Photos&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id=&quot;20100427_63/kardsim_1272368094093BCsHs_jpg/nyc28195_kardsim.jpg&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eight=&quot;342&quot; src=&quot;http://postfiles16.naver.net/20100427_63/kardsim_1272368094093BCsHs_jpg/nyc28195_kardsim.jpg?type=w2&quot; width=&quot;505&quot; /&gt;&lt;/p&gt;
&lt;div class=&quot;CT Label CaptionLong&quot; id=&quot;a1.1.3.1.4.1:CaptionLong&quot;&gt;&lt;span class=&quot;Value&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TURKEY. Istanbul. 2001. Vendor&apos;s cart in Ayvansaray.&amp;nbsp;&amp;nbsp; / &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Copyright &lt;/span&gt;&lt;span class=&quot;Lbl&quot; style=&quot;FONT-FAMILY: Arial&quot;&gt;Alex Webb/Magnum Photos&lt;/span&gt;&lt;/span&gt;&lt;/div&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lt;/strong&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trong&gt;내 맘대로 본, 알렉스 웹의 시각세계&lt;/strong&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에 사진들은 웹의 사진시각의 대표스타일을 정의하고자 사진들이라 몇 장의 사진을 추려 보았습니다. 우선 부연설명으로 아래의 곽윤섭 기자님의 짧은 토막글로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 믿고 아래에 첨부해 놓겠습니다.&lt;/span&gt;&lt;br /&gt;&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ffaa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알렉스 웹 인터뷰 / 이야기&lt;/span&gt;&lt;br /&gt;&lt;br /&gt;“내가 아는 유일한 현장 접근 방식은 걷는 것밖에 없다. 거리의 사진가라면 모름지기 늘 걸어라. 그리고 보라. 그리고 기다렸다가 말을 건네고 또 보고 또 기다려라.”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진을 “시각적, 육체적, 정서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볼 때 탐험 그 자체”라고 부른다. &lt;br /&gt;중요한 사진 취재에 앞서 그는 가야 할 곳의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 ‘조금만, 너무 많지 않게’ 읽고 간다고 한다. &lt;br /&gt;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많이 알고 가면 자신의 지식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려는’ 사진을 찾아 헤매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lt;br /&gt;다시 말해 자신은 직관에 주로 의존하며,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에 즉흥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lt;br /&gt;웹은 “사진을 다 찍은 뒤 프로젝트의 마무리 단계, 혹은 편집과정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상황을 숙지해 보완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lt;br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ffaa00&quot;&gt;그의 사진은 구성의 측면에서도 대단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사진은 그림과 달라 작가가 맘먹은 대로 그리지 못하고 존재하는 세상의 한 단면을 네모 안에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따라서 사진에 들어가는 요소가 많을수록 전체의 통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사진 찍기는 세상과 더불어 노는 것이다. 사진은 훈육이자 놀이이며 구조적 작업이자 혼란인 것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사진엔 대단히 많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깔끔한 프레임 구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ffaa00&quot;&gt;“내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든지 나는 순수한 사진적 의미에서 발견의 여지를 늘 남겨둔다”&lt;br /&gt;&amp;nbsp;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ffaa00&quot;&gt;곽윤섭 기자&amp;nbsp;&lt;/span&gt;&lt;br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에 첨부된 글은 웹의 구체적인 작업프로세스 의중/인터뷰등을 통해 얻은 글이다. 웹의 즉흥적 세계가 가볍게 보이지만 가볍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럼 웹을 사진작가로 바라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 &apos;웹의 시각세계&apos;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넣고자한다. 사진작가로써 알렉스 웹의 특징을 들자면 바로 그의 관철된 시각세계일 것이다. 그런 부분은 그가 매번 프로젝트마다 일관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웹의 시각세계를 다른 비슷한 작가들과 미술시각의 연결고리를 통해 풀어 보도록 하겠다. 보통 사진감상에서 현대사진을 읽으려면 네러티브+스토리텔링을 읽으면 된다고 한다. 현대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사진방식은 날고 별 볼일 없거나, 소위 어렵지 않게 작가의 의중이나 시각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어 시시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마련다. 사실 저널리즘에 입각한 사진이나 현대사진이 아닌 일반다큐멘터리사진은 보는 그대로 읽을 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웹의 사진은 그 안에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웹이 한 결같이 장난 혹은 시각놀이라는 가벼운 메시지 끝에 남겨진 목은 관객이 판단하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정적인 사진가계열의 대표급인 브레송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찰나의 거장’, ‘결정적인 순간’ 이라 부른다. 웹은 브레송과 같이 서정적사진가 계열에 속한다. 웹이 즐기는 시각놀이에는 찰라, 캔디드한 순간에 기인하고 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보통 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을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깊은 지식과 함께, 해당 대상의 삶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디테일하게 사진스토리를 만들기를 원한다. 하지만 웹은 주제 대상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표면적으로 들어나지 않는 도시의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거리의 모습 등 유형적인 모습을 담아내어 하나의 사진부터 시작해 프로젝트의 모든 사진을 합치게 되면 사회적 요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웹의 시각 또한 재미있는 점이 광각렌즈로 대상을 보다 넓게 많은 것들을 담아내면서 마치 프레스코의 벽화처럼 인물들의 배치하며 대상을 부조화시킨다. 거리나 건물에 어울려진 사람들을 네모프레임 안에서 인공구조물을 이용해 피사체(사람들을)를 나누고, 자르고, 가두고, 병치시키고 때로는 중첩되게 구성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시각심리학을 바탕으로 순간 프레임을 결정짓는 서정적사진가계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모든 것은 순간/찰나에 기인하고 있지만 웹의 사진을 보면 좀 더 심화되어 나타나며, 이런 시각은 보다 이중적인 시각이며 대상을 표현을 보다 추상적인 사고로 접근하며, 사진/프레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소요소마다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위에 몇 장의 사진을 보면 언뜻 마치 팝아트 작가들이 잡지에서 텍스트나 사진들을 캔버스 안에 오려 넣는 행위/콜라주의 결과물과 비슷하기도 하다. 웹과 가장 흡사한 시각놀이를 즐기는 사진가는 많이 있겠지만, 데이비드 앨런 하비 등의 예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비는 사진집이나 프로젝트의 대상/유형 등을 크게 보면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비는 웹에 비하면 프레임이 보다 단순화되어 표현된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img id=&quot;20100429_232/kardsim_1272549038032pkmHF_jpg/nyc64403_kardsim.jpg&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eight=&quot;128&quot; src=&quot;http://postfiles9.naver.net/20100429_232/kardsim_1272549038032pkmHF_jpg/nyc64403_kardsim.jpg?type=w2&quot; width=&quot;153&quot; /&gt;&amp;nbsp; &lt;img id=&quot;20100429_29/kardsim_1272549038249iw3RT_jpg/nyc20704_kardsim.jpg&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height=&quot;128&quot; src=&quot;http://postfiles14.naver.net/20100429_29/kardsim_1272549038249iw3RT_jpg/nyc20704_kardsim.jpg?type=w2&quot; width=&quot;127&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럼 웹(2001 Istanbul)과 하비(1999 Cuba) 두개의 사진집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는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마도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제3국에 대한 이국향, 매력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비가 촬영한 쿠바의 어느 도시나 웹이 보여준 이스탄불의 모습 등을 통해서, 우리가 그렇게 느낀다면 작가도 비슷한 의도로 최대한 도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진작업을 진행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하비의 쿠바사진은 한번쯤이라도 본 사람들은 하비가 그린 쿠바를 상상하며 여행을 꿈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계획화된 현대의 도시 안에서는 그런 아기자기한 예정취가 남아있는 거리나 골목들 거기에 어울려진 사람들을 찾아 볼 수가 없겠죠. 배낭을 메고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 중에는 옛정취가 물신풍기는 인도의 바라나시골목이나&amp;nbsp; 이국적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의 거리와 골목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두 작가는 생활사진가이며 여행사진가답게 그런 매력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겠죠. 보통 여행사진가와 다른 점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 여행사진가들이 착각하는 한 가지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다. 사진가는 그런 모습들을 담아내기 위해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거나 다시 여러 번 찾아와 도시의 진수를 담아 낼 때까지 작업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lt;span style=&quot;COLOR: #ffaa00&quot;&gt;결과물을 만들다. 사진집/사진전시&lt;/span&gt;) 그에 반해 여행사진가는 일정에 맞추어 여러 곳을 방문하기위해 그럴 겨를이 없다는 점이죠. 꼭 그런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령 비교를 해 보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기존 전문작가나 사진교육자는 고작 방학 때 여행 다니며 담은 사진가지고 어디에다 내미나! 그런 경우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여행작가/사진가라는 신종직업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이글에서 간략하게 모두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여행사진가 기존 사진작가 그런 부분은 이 시대에 조금 무의미한 선나누기라 해도 좋겠지요. 하지만 보통 여행사진가는 기존의 기성사진가/대가처럼 되기를 꿈꾼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겠죠.&lt;br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결과적으로..&lt;/span&gt;&lt;br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번 글은 어쩌면 ‘여행사진 프로젝트 전문작가별 예시’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amp;nbsp;스냅사진가나 여행사진가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는 사진가 대상이기에, 조금 분석해 보고자 올리게 되었다. 여행사진가들은 보통 자신의 하는 행위에 대해 자신감이 결여되거나 보다 전문적이지 않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소위 말하는 대가-유명하신 선배사진가도 대상을 접근하는데 있어서 그 가벼움을 기반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꼭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저널리스트의 포토에세이 방식과 그것이 다루는 어둡고 무거운 소재/이슈/고발/비판적시각등 만이 정석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여행사진가는 이런 특정 직업적인 사진작가처럼 잡지나 언론사에 프로젝트 단위의 스케줄에 쫏겨 사진원고를 기고하는... 획일적/단일성등을 피해 갈 수도 있기도 하며, 보다 시간적인 여유와 자유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사진프로젝트를 성취 할 수 있다. 현대사진작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사진집을 출판하거나 사진전시회를 가지는..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위에 두작가 알렉스 웹, 데이비드 엘런 하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퍼스널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pos;단순한 기록 사진가가 아닌 작가의 개념&apos; , 하지만 원론적인 여행사진가 직업의 개념 즉 여행잡지(기타 언론 출판 관련 일)를 위해 일을 수행하는 일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작가는 직업적인 사진가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이 글은 &apos;전문작가 예시&apos;를 통해 작가의 성향으로 풀어 보며.. &apos;작가로 변모하기&apos; 하는 목적이 있는 글이다. (쉽게 표현하면.. 여행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우리는 사진교육의 현장, 워크샵을 통해 저널리스트/다큐멘터리의 전문작가들의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교육을 받는 것이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부 미비한 교육현장에서는 심지여 구도는 어떻게 잡아라.&amp;nbsp;그런 방법론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것이 모범답안이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혹은 오히려 시각의 자유로움을 가두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결과적으로 사진작가를 구분짓는 단위 또는 사진스타일 분류만 보더라도 다양하고 각각의 작품마다 모두 다 다르지 않는가! 결국 최종에는 작가를 구분 짓거나 결정짓는 것은 창조성이 다르다. 그 개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좀 어이없는 말장난 같지만, 모두가 똑같은 시각놀이를 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프로젝트를 반복한다면 사진이 만들어 내는 결과 또한 얼마나 재미없고 무의미한 일인가!? 생각해 본다. &lt;br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여행사진가 &quot;성취와 자존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quot;에 관해.. 다음편에 쓰고자 한다.&lt;/span&gt;&lt;br /&gt;
&lt;div class=&quot;autosourcing-stub&quot;&gt;&lt;/div&gt;
&lt;p&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May 2010 03:47:1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예시#C, 마틴 파의 여행(Martin Parr)</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link>http://www.croquis.net/zbxe/?document_srl=206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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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전문작가 별, 예시&lt;span&gt;#3&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사진가 마틴 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Martin Parr, 1952~),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파의 여행&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문명사회의 소비를 풍자&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행이 동반되는 사진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사진가를 선정하다 보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시대의 사회적인 관점에서 여행 의미를 되짚어 보자는 의미 하에 마틴 파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파의 프로젝트 마지막 휴양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The Last Resort, 1986),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삶의 비용&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The Cost of Living, 1986-1989),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은 세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Small World, 1995),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ommon Sense)&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등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우리가 무심코 행동하는 대형마켓에서 쇼핑을 하는 모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품위유지와 어울리는 파티의 모습&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휴가를 보내는 풍경이나 여행과 패키지관광을 즐기는 모습 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최근 작품인 상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ommon Sense, 200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는 일상적인 물건들을 접사렌즈와 소형플래시를 통해 클로즈업시켜 이미지의 컬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일상적인 물건들이란 여행에서 쉽게 접하는 정크푸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조잡한 기념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패키지 휴일여행 등 통속적인 것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런 포착을 전세계를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대체로 그가 선택한 주제는 특히 영국적인 것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체크무늬테이블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노인용납작모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국인이 이주한 나라면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파는 이런 사진으로 사라져가는 문화적 특이성들을 보여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이러한 상징적인 잡동사니들을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상징적인 아이콘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러한 방법은 팝 아트 작가들이 키치적인 오브제를 배열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를 뛰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품의 내러티브 구성방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편집기술에서 유래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는 자신의 사진을 통속적인 시각적 기록인 비방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엽서모음처럼 다루면서 여러 사진을 묶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병치해서 재빠르게 연작으로 편집한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조합하여 세상에 대한 하나의 역동적이고 주관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뒤범벅 사진의 축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시리즈를 전시하는 방식은 전시장과 외부 공공장소에 격자모양으로 전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파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를 취하는 사진가들의 집단인 매그넘의 맴버로써 조금 의외의 인물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가 취하는 사진방식은 컨템퍼러리 사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contemporary photography),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대사진가에 속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밖에 현대사진가와 여행을 매개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컴템퍼러리 사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대사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과 여행이란 키워드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작가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 중에서도 현대사진에서 대표급인 에글스턴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l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로스알라모스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66&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부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1974&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까지 친구인 월터 홉스와 함께 도로여행을 하면서 뉴멕시코주 산타페 근처에 위치한 로스알라모스의 핵 실험실에 주목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00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의 사진을 스무권의 사진집으로 출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스티븐 쇼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l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마릴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텍사스의 작은마을에서 주요건물들과 대중적인 관심사를 촬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특이한 점은 쇼는 이 사진들을 인쇄한 뒤에 판매하지 않고 방문하는 곳마다 옆서꽃이를 만들어 배치해두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파와 쇼의 공통점은 팝아트 관심과 일상적인 사진양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즉 사진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 찍은 듯한 느낌을 주는 시각을 보여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두 작가가 조금 다른 점은 대상을 보는 방법이 다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l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마릴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쇼는 유형적인 특성을 미묘하게 관찰하는 스타일이라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파는 빠르고 직관적인 촬영스타일로 순간포착의 캔디드함과 우스꽝스럽고 장난스런 사진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 한가지를 들자면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이나 평범한 사물을 임의로 프레이밍하여 포착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앞서 말했던 파의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l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식&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0&am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시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쇼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lt;197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35mm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스트매틱 카메라로 찍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2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점의 사진을 격자식으로 나열하여 전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전시가 비슷한 방식을 갖추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미국 젊은 사진가 에릭소스는 에글스턴과 쇼의 족적을 따라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면서 연작을 남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행 중에 만난 사람과 장소를 찍은 것인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것은 분명 에글스턴의 유산을 계승한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실제로 소스는 미국남부를 여행하면서 에글스턴의 집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스의 사진은 무표정한 미학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19&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기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2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기 초에 초상사진의 전통적인 요소를 계승하고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컨대 그의 사진은 현대예술사진 그 자체의 역사를 인정하는 한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예술적이고 통속적인 다양한 시각문화의 전통성을 반영하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단순히 그 전통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gt; &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지막으로 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소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파의 경우만 보더라도 보통 사진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배작가 새로운 예술운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술사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대상&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회적인 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외부에 영향을 받았기 마련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무리 독창적인 예술이라 하더라도 시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세상의 모든 것에 왔고 또 반복되기마련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보통 시대의 아이콘의 되는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대적 사조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틴 파가 현대사진사의 시대적 사조가 되지는 않지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결과적으로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평범한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여기에서 소개한 다른 작가의 작품보다는 파의 사진이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는 방식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상 현대사진을 취하는 사진가는 어떻게 여행을 통해 작업을 하는지 알아봤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참고&lt;span&gt;: &lt;/span&gt;일부 내용은 샬럿코튼의 책 인용&lt;span&gt;, &lt;/span&gt;기타 예술사진관련 잡지를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lt;/span&gt;&lt;/span&gt;
&lt;p&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May 2010 03:45: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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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예시#B, 사진가 박종우, 나의 사진 프로젝트</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link>http://www.croquis.net/zbxe/?document_srl=2061</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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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여행, 사진 프로젝트 - Chapter 2. 전문작가 별, 예시 #2&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amp;nbsp;&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사진가 박종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나의 사진 프로젝트&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어떻게 사진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가장 쉽게 예시가 되는 내용이라 작가의 에세이에서 글을 추려봤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아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건 보기만해도 알 수 있듯이 사진작가는 어떻게 사진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얼마의 시간과 공을 들여 작업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로 아시아권이 본 프로젝트이고 각각의 주제를 보면 작가의 주제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여행사진이라는 입장에서 얻는 부분은 가까운 지역을 묶음으로 작업하기에 용의 하다는 점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즉 서로 인접된 나라 아래의 예처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티베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네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프로젝트를 하기에 편리하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러 개의 사진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이 가능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보통 여행사진가나 전문사진가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에 경비절약상 지역적 이점을 이용해야 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관심을 갖는 주제가 거기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고 한 지역을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기 나름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 일반적인 여행을 통해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에 충격을 받거나 매료되어 우연의 일치로 새로운 사진프로젝트로 이끄는 경우도 있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br style=&quot;mso-special-character: line-break&quot; /&gt;&lt;br style=&quot;mso-special-character: line-break&quot; /&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하루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베를린의 자전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일주일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럽의 쇼윈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서울 성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몬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차마 고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불국기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마스크&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년 동안의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히말라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평생 프로젝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몽골리안 루트&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May 2010 03:42: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예시#A, 사진가 성남훈, 유민의 땅 내밀한 진실</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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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medium&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돋움&quot;&gt;여행, 사진 프로젝트 - Chapter 2. 전문작가 별, 예시#A&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 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사진가 성남훈&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유민의 땅 내밀한 진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x-small&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대표가 되는 사진작가를 뽑자면 두말할 것 없이 성남훈 작가를 뽑겠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의 간단한 이력사항으로는 월드프레스포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999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연화지정 &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 FONT-FAMILY: &apos;바탕&apos;,&apos;serif&apos;&quot;&gt;蓮花之井&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맑은 고딕&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09)&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서 두 차례나 수상함&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가의 프로젝트 중에서 루마니아 집시의 시간을 촬영한&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민의 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quo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을 뽑을 수 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가의 다른 좋은 사진프로젝트도 많지만 이 사진프로젝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가 다큐멘터리를 몰랐고 사진작가로 다져지지 않았을 프랑스 유학시절에 담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민의 땅의 사진들은 작가가 그 후에 작업한 사진보다는 시각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보이지만&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히려 둔탁하고 무뎌 보이는 시각이 꾸임 없는 집시들의 삶을 잘 표현해 준다고 생각한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작가는 피사체의 내밀한 삶을 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거라 추측해 본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나는 사진을 보면서 작가 혹은 내 자신을 거울로 비춰보는 듯한 묘한 감동과 내면적인 공감을 느껴본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여기서 유민의 땅 사진프로젝트를 예를 들은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각적으로 뛰어난 사진만 보려 하지 말고 내 앞에 진실을 보라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진가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런 부분을 깊게 사색하면서 자기자신에게 반문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span&gt;&lt;a class=&quot;con_link&quot; href=&quot;http://photo.naver.com/forum/article/100&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b0a2&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민의 땅&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에세이 링크&lt;/span&gt;&lt;/span&gt;&lt;/a&gt;
&lt;p class=&quot;MsoNormal&quot;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lt;div class=&quot;autosourcing-stub&quot;&gt;&lt;/div&gt;&lt;/span&gt;&lt;/span&gt;&lt;/span&gt;
&lt;p&gt;&lt;/p&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div&gt;</description>
                        <pubDate>Mon, 24 May 2010 03:35: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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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objec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gt;&lt;param name=&quot;movie&quot; value=&quot;http://www.youtube.com/v/9rzhtRDFeM4&amp;amp;hl=ko_KR&amp;amp;fs=1&amp;amp;rel=0&quot;&gt;&lt;param name=&quot;allowFullScreen&quot; value=&quot;true&quot;&gt;&lt;param name=&quot;allowscriptaccess&quot; value=&quot;always&quot;&gt;&lt;embed src=&quot;http://www.youtube.com/v/9rzhtRDFeM4&amp;amp;hl=ko_KR&amp;amp;fs=1&amp;amp;rel=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85&quot;&gt;&lt;/object&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Wed, 07 Apr 2010 23:41: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재활용보드</title>
            <dc:creator>croqu!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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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RC410L/800-M 문제 메모, 어쩌다 문제의 보드를 재활용 컴에 쓰게 됐는데..ㅡ,ㅡ&lt;/p&gt;
&lt;p&gt;CPU점유율 무한상승 컴 다운, 도스상에서도&amp;nbsp;시피유 오버플로워가 뜸..&lt;/p&gt;
&lt;p&gt;바이오스2 설치하면 2기가 해결된다고 하는데 거의 뻥임.. 맞는 메모리카드가 따로 있슴&lt;/p&gt;
&lt;p&gt;해당메모리가&amp;nbsp;&amp;nbsp;맞지 않거나, 하드결함 사타1로 변경, usb 2.0까지 지원이 안되는 경우가 있슴.&lt;/p&gt;
&lt;p&gt;완전사망... 아래보드는 그와 비슷한 보드임-일명재활용보드(중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음&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15629542&quot;&gt;&lt;strong&gt;ASRock i865PE ConRoe865PE&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1100162062&quot;&gt;&lt;strong&gt;ECS ATI-Xpress200 RC410L/800-M&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44901310&quot;&gt;&lt;strong&gt;ECS VIA-P4M800Pro P4M800PRO-M3 V3.0&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46076425&quot;&gt;&lt;strong&gt;ASUS P965 P5B Premium Vista Edition&lt;/strong&gt;&lt;/a&gt;이건 좋긴한데 좀 값이나가구요,&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44319300&quot;&gt;&lt;strong&gt;ASRock i865G 775i65G [Rev 2.0]&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27941660&quot;&gt;&lt;strong&gt;ASUS P965 P5B-E PLUS&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26361020&quot;&gt;&lt;strong&gt;인텔 i945G D945GCL&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15631965&quot;&gt;&lt;strong&gt;ECS VIA-P4M890 P4M890T-M&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38687650&quot;&gt;&lt;strong&gt;ECS VIA-P4M900 P4M900T-M&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35756524&quot;&gt;&lt;strong&gt;기가바이트 P965 GA-965P-DS3P&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12409170&quot;&gt;&lt;strong&gt;ASUS i945G P5LD2-VM SE&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19752185&quot;&gt;&lt;strong&gt;ASUS P965 P5B-E&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4009271549&quot;&gt;&lt;strong&gt;기가바이트 P965 GA-965P-DS3 [Rev 2.0]&lt;/strong&gt;&lt;/a&gt;&lt;/p&gt;
&lt;p&gt;&lt;a class=&quot;b&quot; href=&quot;http://shopping.naver.com/detail/detail.nhn?cat_id=01020500&amp;amp;nv_mid=1100197548&quot;&gt;&lt;strong&gt;ECS VIA-P4M800Pro P4M800Pro-M2 V1.0&lt;/strong&gt;&lt;/a&gt;&lt;/p&gt;&lt;/div&gt;</description>
                        <pubDate>Thu, 01 Apr 2010 10:52: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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